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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학살하는 우리는 모두 ‘나치’ 다

입력 : 2014-09-05 19:57:20 수정 : 2014-09-12 14: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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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기계’ 돌아가는 도축장
유대인 학살 아우슈비츠와 같아
동물 홀로코스트/찰스 패터슨 지음/정의길 옮김/휴/1만5000원
동물 홀로코스트/찰스 패터슨 지음/정의길 옮김/휴/1만5000원


“동물과의 관계에서 모든 사람은 나치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이기도 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아이작 싱어의 말이다. 책은 이 명제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다양한 방향에서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검토한다.

인간이 동물을 다루는 ‘나치’식 방식을 가장 직관적으로 깨닫게 해주는 곳은 바로 도살장이다. 한 역사학자는 20세기 초 미국 도축장에 대해 “기념비적 규모의 광경과 소음, 냄새에 압도당하고 있었다”고 적었다. 죽음의 기계 소리와 죽어가는 동물들의 소음이 끝없이 귀를 때린다. 꽥꽥대는 소리 속에서 장비들은 돌아가고 동물 사체들은 연이어 쿵쿵거리며 떨어지고, 큰 칼과 도끼들은 뼈와 살을 발라낸다.

이 비정한 광경을 나치도 연출했다. 나치는 살인을 도축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사람들을 동물처럼 다뤘다. 완전히 발가벗기고 옹송그리며 같이 모여 있게 했다. 이런 비인간화는 희생자들을 사살하거나 가스로 죽이는 것을 더 손쉽게 했다. 독일 유대인 철학자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가 사람들이 도살장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곳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흥미로운 건 이 도살장과 아우슈비츠 사이를 직접적으로 잇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바로 ‘포드 시스템’으로 유명한 자동차 제조업자인 헨리 포드. 그는 자서전에서 젊은 시절 미국 시카고의 한 도살장을 방문했을 때 일관식 조립생산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한 정육업체가 소고기 정육을 위해 작업자들의 머리 위에 설치된 가공 카트를 다루던 방식이 곧 ‘포드 시스템’의 시초라 볼 수 있다.

포드는 미국 내에서 잔악한 반유대주의 운동의 시작에 서 있던 인물이기도 했다. 그의 주간신문인 ‘디어본 인디펜던트’는 1920년 갑자기 신문 형식을 바꾸고 유대인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히틀러는 포드를 아예 전우로 간주했는데, 독일 뮌헨 나치 중앙당사 집무실 벽에는 포드의 실물 크기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자서전 ‘나의 투쟁’에선 포드를 미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내세우고 격찬하기도 했다.

종종 히틀러가 채식주의자에 동물을 굉장히 사랑한 인물로 묘사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는 히틀러를 금욕주의자로 포장하려던 선전장관 요제프 괴벨스가 만들어낸 작품일 뿐이다. 히틀러는 개, 특히 독일 셰퍼드를 좋아했다. 그러나 그는 기다란 채찍을 들고다니며 잔인하게 개를 때리곤 했다. 히틀러가 채식을 한 것도 동물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였다. 민감한 위를 진정시키기 위해 고기 섭취를 줄이려 했지만, 자신이 좋아하던 바바리안 소시지, 리버 덤플링(동물 간으로 만든 만두 요리), 사냥한 동물의 배 안에 각종 재료를 넣고 구운 요리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현대 사회에서 동물과 사람의 관계는 ‘산업화된 대량학살’로 요약된다. 책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이 이런 대규모 도축업과 긴밀한 관련을 맺는다고 설명한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홀로코스트를 자행한 히틀러는 동물과의 관계에서 철저한 복종 관계를 고수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잔인한 만행은 여러 생존자들을 열렬한 동물권 옹호론자로 만들기도 했다. 그 끔찍한 경험이 타자의 고통에 대해 유달리 민감하게 받아들이도록 만든 것이다.

“어린 시절 경험은 나에게 억압받는 자들을 위한 정의를 평생 추구하게 했습니다. 나는 지구상 대다수 피억압체들이 인간이 아닌 동물이며,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가장 극도로 억압받는 동물이 농장동물임을 금세 알게 됐습니다.”(미국 동물권 운동 지도자 알렉스 허샤프트)

이 책을 읽고 나면, 거의 매일 무심코 먹던 고기 앞에서 젓가락질을 조금은 망설이게 될 듯싶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가진 않는다. 사람들의 무관심과 관습은 동물에 대한 ‘나치’식 학살을 강화하고 조장한다. 동물들은 자신들을 무자비하게 죽이고 잡아먹는 사람들에 맞서 싸우지도, 방어하지도 못한다. 전망은 어둡다. 그러나 책의 마지막 문장처럼, 우리의 잔인하고 폭력적인 삶의 방식이 빨리 종식될수록, 가해자·방관자·희생자인 우리 모두가 더 좋은 미래를 꿈꿀 수 있다는 말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김승환 기자 hw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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