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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조선 영조 때 '흥학비' 발견

입력 : 2014-09-03 09:46:48 수정 : 2014-09-03 09:4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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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녕에서 조선 영조 때 창녕현의 유학교육을 밝혀줄 단서가 발견됐다.

이 단서는 2003년 현감정동기흥학비에 이어 10여 년 만인 지난달 1일 창녕 박물관 인근 논 어귀에서 현감이후성순흥학비가 발견된 것이다.

이곳은 이문재라 불리는 고개로 선대부터 경작해오던 논 어귀에서 주민 서봉상씨가 발견해 창녕향토사연구회에 제보해 연구회에서 창녕박물관에 신고했다.

비의 규격은 120cm×32cm로 전면에는 현감이후성순흥학비로 창녕현감 이성순이 학문을 진흥시켰다는 비석이다.

이문재는 조선 정조 12년(1788년) 10월 상순 이성순 현감이 지은 이문재기(以文齋記)와 대한제국 고종 38년(1901년) 3월 이범선 군수가 쓴 이문재중수기에 의하면 이문재는 최소 113년 이상 창녕향교와 더불어 창녕현의 중심 교육기관이다.

또 조선 영조 때 창녕현감 정동기(1783~1786년)가 창건 직후 거창으로 떠나자 이어 부임한 현감 이성순(1786~1788년)이 인재 육성에 힘을 쓴 곳으로 한일 합방 전후에는 보통학교 또는 중등학교 과정의 학교로 쓰이기도 했다.

한일합방 후 일제강점기 조선교육령을 제정하면서 기존의 향교와 서원, 서당은 없어지고 일본식 교육제도로 개편됐다.

이때 창녕군에 인가된 학교는 1905년 이문재 자리에 남창학교가 설립됨으로써 이문재는 없어지고 그 후 공립 창녕보동학교로 현재 창녕초등학교로 이어졌다.

이 비석은 10여 년 전 발견된 현감정동기흥학비와 더불어 조선 후기 창녕현의 교육에 힘썼던 기록으로 창녕현의 교육사에 중요한 사료로 여겨진다.

한편 박물관은 "충분한 연구와 고증으로 기록을 남기고 정동기흥학비가 있는 만옥정공원 석비군으로 옮겨 고이 모셔야 할 귀중한 역사적 자료"라고 밝혔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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