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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푸틴의 야망 어디까지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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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9-02 21:23:16 수정 : 2014-09-02 21:2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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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패권 약화 틈타 영향력 확대
러 공세적 정책 마땅한 대응책 없어
국제사회의 우려대로 우크라이나 사태가 중대한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분리주의 반군에 대한 배후 지원을 넘어 군사개입을 노골화하고 있는 것이다. 서구는 추가 경제제재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군 투입을 경고하지만 푸틴은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우크라이나 동남부 영토에 대한 군사공세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크림반도에 이어 우크라이나 동남부지역도 결국 러시아의 수중에 떨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홍완석 한국외대 국제지역대 학장·국제정치학
그렇다면 푸틴의 거침없는 행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제국적 부활을 억제하는 지정학적 급소라는 점이 그 중요한 이유이지만 그것만으론 설명이 불충분하다. 푸틴이 강공책을 ‘택’하고 이것이 ‘통’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과거에 비해 러시아의 힘이 많이 ‘세’졌다는 점이다. 소련의 해체 이후 초강대국 지위에서 하루아침에 국제질서의 피동적 관객으로 전락했던 러시아의 국력과 국제적 위상은 2000년 푸틴의 등장 이후 지난 14년 동안 몰라보게 달라졌다. 푸틴시대 러시아는 권력수직화 작업을 통해 정치적 안정을 이루었고 국제 에너지가격의 고공행진에 힘입어 세계 국내총생산(GDP) 8위 규모의 경제 강국으로 성장했다.

푸틴은 이를 바탕으로 ‘위대한 강대국 러시아의 재건’을 외쳤고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국제무대에서 힘과 영향력의 외부투사를 서서히 강화해 나가고 있다.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러시아의 공세적 파워게임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다음으로 미국 패권의 약화를 들 수 있다. 최근 워싱턴이 즐겨 사용하는 ‘전략적 인내’는 헤게모니 쇠퇴의 또 다른 표현이다. 집권 이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국제문제에 대한 과도한 무력사용이 미국의 쇠락을 가속화한다는 판단하에 군사적 개입을 자제해왔다. 2008년 러시아의 조지아 군사공격 시에도, 지난 3월 크림반도 병합 시에도, 또 이번 우크라이나 동남부 영토침략 시에도 워싱턴은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다. 미국이 재정적자와 무역적자에 시달리고 오바마케어(Obamacare·건강보험 개혁)와 시퀘스터(Sequester·연방정부 예산 자동삭감 조치)에 발목이 잡혀 있는 사이 푸틴은 그 틈을 영민하게 파고들었다.

푸틴의 도박심을 자극한 또 하나의 요인은 서구의 분열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다양한 대러 제재안을 내놓았지만 그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또 제재의 강도와 수위를 놓고도 이해당사국 간 견해차가 크다. 에너지, 교역, 안보문제 등에서 러시아와 이해관계가 밀접히 교직돼 있는 EU의 핵심 구성원들은 대체로 경고성 대응과 더불어 협상을 통한 해법을 선호한다. 반면 미국과 공러(恐露)의식이 강한 동유럽 회원국들은 고강도 경제제재와 함께 군사적 대응도 불사해야 한다는 강경론을 펼친다. 얽히고설킨 유럽의 지정학적 현실은 강온 세력 간 합의점 도출을 어렵게 하고 공고한 단일 대오 형성을 방해한다.

비(非)서구연합 중국의 비호도 푸틴의 저돌적 질주에 한몫했다. 오늘날 중·러관계는 전략적 협력 수준에 있어 최고의 밀월기를 구가하고 있다. 실제로 양국은 북한·이란·시리아 문제 등 주요 국제적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찰떡궁합을 과시했다. 중국은 지난 3월 크림 주민 투표 무효선언과 크림 지위변경 불승인 촉구 등을 골자로 한 유엔안보리 표결에서 기권해 러시아와 함께 결의안 채택을 무산시켰다. 서구의 대러 경제제재를 헐겁게 하는 출구도 제공해주고 있다.

2008년 조지아에 이어 2014년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선제적 군사행동은 중요한 지정학적 시그널을 담고 있다고 본다. 그것은 EU와 나토의 동진팽창에 대한 전면 강압수비에서 러시아의 전통적 세력권을 복원하고자 하는 공세적 정책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문제는 러시아의 야망을 제어할 뾰족한 묘안이 없다는 점이다. “러시아는 세계 최강의 핵보유국”이라는 푸틴의 겁박에서 모스크바의 사활적 이해가 걸린 국익에 대해서는 결코 양보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1차 세계대전 발발 100주년을 맞이하는 2014년이 데자뷔처럼 심상치 않게 여겨지는 이유다.

홍완석 한국외대 국제지역대 학장·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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