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기자가만난세상] 라운드 인터뷰, 어떡하라는 겁니까

관련이슈 기자가 만난 세상

입력 : 2014-08-31 23:37:21 수정 : 2014-08-31 23:49:15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새 영화 한 편이 나오면, 주연 배우는 시사회를 마친 뒤 보통 3일 내내 인터뷰에 응한다. 4개 매체를 한 팀으로 묶어 1시간이 할애된다. 45분 동안 질문에 답하고 10분간 사진촬영에 응하며, 화장을 고치고 의상을 바꿔 입는 데 5분을 쓴다. 오전에 두 차례와 오후 다섯 차례, 하루 일곱 번에 걸쳐 28개 매체와 만난다. 강행군이지만 3일간 80여개 매체와 인터뷰할 수 있으니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 이를 라운드 인터뷰라고 한다.

라운드 인터뷰에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따른다. 획일성이다. 마치 벽돌 찍어내듯 똑같은 기사가 양산된다. 분석력이 돋보이는 질문을 할 수 없고 홍보성 질의·응답만 오가는 상황이 연출된다. “출연 배우들 간의 호흡은 어땠는가”라는 빤한 질문을 건넸을 때 “사실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아 참아가며 촬영했다”고 답하는 배우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돌아올 답은 뻔하다. “척척 잘 맞았다”, “눈빛만 봐도 서로 알 수 있었다” 등이다. 누군가 핵심을 건드린 ‘빛나는 질문’을 던질 경우, 그는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날 때쯤이면 이미 인터넷에 공유된 자신의 ‘빛바랜 질문’을 접하는 피해를 입는다.

배우도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인터뷰 기간에 비슷한 질문을 받고 비슷한 대답을 되풀이한다. 사실 배우들은 이 같은 인터뷰가 달갑지 않다. 의식도 개념도 없는 배우로 비치기 때문이다. 배우와 매체들이 서로에게 ‘못할 짓’을 하는 셈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인터뷰를 진행하는 홍보대행사는 매체 수의 급증과 매체들 간 형평성을 이유로 꼽는다. 기대를 모으는 영화 시사회에는 250여개 매체에서 취재기자와 사진기자, 카메라기자 등 600여명의 기자가 참석한다. 1대 1 인터뷰가 불가능해진 데다,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고’로 구별할 수 없는 탓에 라운드 인터뷰가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라고 설명한다.

김신성 문화부
속보 경쟁도 원인이다. 차별화된 기사보다 먼저 쓰는 기사를 중시하는 세태 때문이다. 울림 있는 기사를 제치고 가십성 기사가 인터넷 포털사이트 메인 화면에 쉽게 노출되는 탓에 알맹이 없이 호기심만 자극하는 기사가 대세를 이룬다. 신인 배우들은 인터뷰가 원래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것이라고 여길 정도다.

매체와 배우 사이에 낀 홍보대행사의 고충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결국 이들 모두가 새로운 대안에 목마른 실정이다. 투자·제작·배급·상영을 거머쥔 대기업만 조용하다. 심도 있는 기사보다는 낚시성 기사가 홍보에 더 효과적이어서 굳이 나서려 하지 않는다.

획일성은 문화의 독이다. 투자 대비 효과와 수익성만 따지면 재미있는 영화는 쏟아져 나오겠지만 예술성을 지닌 ‘작품’은 설 자리를 잃고 만다. 이는 한국 영화를 절름발이로 만들어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독자들은 인간 냄새 나는, 날것 그대로의 진솔한 인터뷰 기사를 원한다. 대기업이 앞장서서 전반적인 시스템의 변화를 꾀해야 할 이유다.

김신성 문화부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
  • 오마이걸 유아 '완벽한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