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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日 외무성 원본에도 을사조약 제목없어… 날조 반박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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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8-29 06:00:00 수정 : 2014-08-30 00:5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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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인권법 권위자 日 도쓰카 에쓰로 (上)
104년 전인 1910년 8월29일 한국이라는 나라가 역사에서 사라졌다. 이른바 경술국치(庚戌國恥)이다. 일제에 의해 ‘한국병합 조약’이 발효되면서 당시 대한제국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세계일보는 경술국치 104년을 맞아 국제사회와 일본에서 1905년 을사조약과 1910년 한국병합 조약이 불법으로 무효라고 용감하게 주장해온 도쓰카 에쓰로(戶塚悅朗·72)를 만났다. 그는 일본 내에서 저명한 국제인권변호사이자 국제인권법 권위자로 꼽힌다. 우리에겐 처음으로 유엔에서 ‘일본군 위안부는 성노예’라고 주장한 인물로 알려져 있는 그에게서 ‘을사조약’과 ‘한국병합 조약’의 불법성, 안중근 재판과 ‘동양평화론’,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한·일 협정 등 한·일 간 여러 현안에 대해 의견을 들었다. 인터뷰는 2회에 걸쳐 싣는다.

“유엔 인권위원회(현 인권이사회)의 차별방지·소수자보호 소위원회는 1993년 8월 전시 노예제에 관한 결의를 채택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국제 공론의 장으로 이끌어 냈다. 이는 1년 전 실무그룹에서 그가 ‘위안부는 성노예’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지난 7월27일자 1면과 3면 기획기사에서 도쓰카 변호사를 ‘일본군 위안부가 성노예’라는 말을 처음 만든 사람으로 지목하며 이렇게 규탄했다. 신문은 “인권위원회나 실무그룹 결의안이나 권고문 작성 과정뿐 아니라 위원회 운영에도 깊숙이 침투했다”고 꼬집었다.

신문기사에서 시작된 그와의 인연은 지난 20일 사이타마현 아키가세공원의 인터뷰로 연결됐다. 인터뷰내내 더위가 턱밑까지 차 올랐지만 진실을 향한 그의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한국 병합이 무효라고 주장해왔는데.

“1910년 병합에 대해 법률적으로 살펴보기 위해서는 2단계로 나눠 봐야 한다. 1905년 체결된 을사조약을 살펴보고 다시 병합조약을 봐야 한다. 왜냐하면 1905년 체결된 을사조약으로 한국은 외교권이 박탈되는 한편 조선통감부가 만들어지는데, 통감부가 바로 일본 측 대표로 1910년 병합조약을 맺기 때문이다. 내 주장은 1905년 을사조약은 무효이기에 통감부도 무효가 되고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아 병합조약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을사조약이 불법이고 무효라는 국제적인 근거가 있는가.

“나는 유엔에서 위안부 문제에 관여하는 과정에서 재일 한국인 등으로부터 그 근저에 한·일 병합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1990년대 초 런던에 있을 때 2주간 관련 조약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1963년 유엔 국제법위원회(ILC)의 보고서를 접하게 됐다. 보고서는 국가 간 조약을 맺을 때 국가의 대표나 개인에 대해 강제하거나 협박한 경우는 조약이 효력이 없다고 규정했다. 나중에 정부가 추인해도 안 되고, 처음부터 아무런 구속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 보고서에는 그러면서 조약이 무효가 되는 4건의 사례를 제시했는데, 그중 하나가 1905년 을사조약이었다.”



―유엔 보고서가 알려지면서 한국에서도 관련 연구가 본격화하는데.


“유엔 보고서를 계기로 관련 연구가 본격화하지만, 당시 나의 연구는 많이 부족했다. 나중에 한국 이태진 교수는 1905년 을사조약 원본을 연구해 조약 제목이 없어 날조됐다고 주장했다. 실제 일본 외무성에 가 을사조약 원본을 확인한 결과 일문판 조약에도 제목이 없었다. 결국 한국이 날조라고 주장해도 일본은 반박할 수 없게 됐다. 또 1993년 일본 외무성은 국회 답변에서 을사조약 비준서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답했는데, 비준서가 없다는 건 조약이 무효라는 것을 증명한다. 당시 고종이 조약 주권자였지만 고종 사인은 없고, 대신 외무상 사인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1910년 병합조약도 무효가 되는데.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에 의한 것으로, 날조되고 비준도 되지 않아 불법 무효가 되면 이를 바탕으로 한 1910년 병합조약도 무효가 된다. 1910년 조약은 매우 중요한 조약이지만 당시 순종 사인도, 비준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당시 일본은 조선에서 많은 사람을 죽이고 군사적으로 점령한 그런 상황이었다. 따라서 한국인 의사로 일본 식민지가 된 사실이 없고, 조약과 병합은 법적으로 무효가 된다.”

―일본 정부는 아직 병합조약이 불법이나 무효라고 인정하지 않는데.

“한국민 의사에 반해 병합됐다는 것을 크게 인정한 것이 2010년 8월10일 나온 간 나오토 담화였다. 한국은 간 담화를 다시 평가할 필요가 있다. 1995년 ‘무라야마 담화’의 경우 병합조약에 대해 ‘부당하지만 합법하다’ 식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간 담화는 정치적·군사적인 것을 배경으로 일본이 한국으로 식민지화했고, 그것은 한국인들의 의사에 반한 것이었다고 밝힌다. 한국인들의 의사에 반한 것이라는 표현이 매우 중요하다. 이는 일본이 나라를 훔쳤다고 한 것이다. 조약이 무효라고 말했다면 좋았겠지만 단언하지 못한 것은 일본 국제법 학자들이 연구를 거의 하지 않는 상황에서 정치인만이 앞서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993년 ‘고노담화’도 사실을 인정하지만 법적 판단은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법적 효력은 법률가들이 판단하기 때문이다. 간 담화를 크게 평가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다.”

―을사조약이 무효가 되면 안중근 재판 등도 문제가 되는데.

“서울 남산 안중근의사기념관을 방문했다가 김호일 관장의 부탁으로 안중근 재판을 연구하게 됐다. 안중근 재판기록에 재판의 법적 근거 등이 논의돼 깜짝 놀랐다. 1905년 을사조약은 날조된 것으로 비준도 되지 않은 무효인데, 일본 정부는 을사조약을 근거로 재판을 관할했다. 게다가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한 15가지 이유 중에서 을사조약이 이토에 의한 일방적인 행위라고 비판했는데, 그 조약을 근거로 한 것이다. 또 안중근은 재판에서 ‘자신은 의군 참모총장으로 이토를 쐈다’고 주장했지만 일본의 국선 변호인은 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아 재판에서 전혀 논의되지 못했다. 변호인도, 검사도, 재판관도 1905년 을사조약 문제나 의군 문제 등을 논의하지 않은 것은 문제다.”



―일본에선 안중근을 테러리스트라고 하지 않나,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에 대한 견해는.

“안중근을 연구한 뒤에 그를 테러리스트라 말한다면 상관없겠지만, 연구해보면 좀 다를 것이다. 만약 안중근이 사형되지 않았다면, 한국이 광복됐을 때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처럼 한국 지도자가 됐을 것이다. 그의 동양평화론에서 한·중·일 3국이 서로 독립해 대등한 관계에서 협력해간다는 생각은 당시 혁명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유럽연합(EU)과 같은 관계가 될 수도 있다. 이를 위해 먼저 일본이 무엇을 했는가를 연구해 확실히 인정하고 사죄해야 할 것은 사과해야 한다. 독일은 그것을 했는데, 일본이 독일을 배우지 않는 한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은 실현되지 않는다.”

도쿄=김용출 특파원 kimgija@segye.com

■도쓰카 에쓰로(戶塚悅朗)는

▲1942년 1월22일 시즈오카 하마마쓰시 출생 ▲릿교(立敎) 물리학과(1964) 및 법률학과 졸업(1970), 리쓰메이칸(立命館)대학 국제관계학 박사(2007) ▲사법연수원 수료 및 일본변호사연합회 가입(1973) ▲런던대학 대학원(LSE) 객원연구원(1989∼1990) 및 워싱턴대 객원연구원(1998) ▲1992년 2월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일본군 위안부는 성노예’ 주장 ▲‘1905년 을사조약은 불법 무효’ ‘1910년 한일합병 조약 무효’ 등 주장 ▲국제인권법 정책연구소 사무국장 및 ‘한국병합 100년 시민네트워크’ 공동대표 ▲‘일본이 모르는 전쟁책임’(1999) ‘국제인권법 입문’(2003) ‘ILO와 젠더’(2006) ‘유엔 인권이사회’(2009) ‘일본 교육은 틀렸다’(2013) 등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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