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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선의 한 주의 시] 죽어서 비로소 ‘고요한’ 장애인의 삶

입력 : 2014-08-28 21:59:02 수정 : 2014-08-28 21:5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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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날개다 / 문인수

뇌성마비 중증지체·언어장애인 마흔두 살 라정식씨가 죽었다.
자원봉사자 비장애인 그녀가 병원 영안실로 달려갔다.
조문객이라곤 휠체어를 타고 온 망자의 남녀친구들 여남은 명뿐이다.
이들의 평균 수명은 그 무슨 배려라도 해주는 것인 양 턱없이 짧다.
마침, 같은 처지들끼리 감사의 기도를 끝내고
점심식사 중이다.
떠먹여 주는 사람 없으니 밥알이며 반찬, 국물이며 건더기가
온데 흩어지고 쏟아져 아수라장, 난장판이다.

그녀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정은씨가 그녀를 보고 한껏 반기며 물었다.
#@%, 0%·$&*%ㅒ#@!$#*? (선생님, 저 죽을 때도 와 주실 거죠?) 그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왈칵, 울음보를 터트렸다. $#·&@\·%, *&#……(정식이 오빤 좋겠다, 죽어서……)

입관돼 누운 정식씨는 뭐랄까, 오랜 세월 그리 심하게 몸을 비틀고 구기고 흔들어 이제 비로소 빠져나왔다, 다 왔다, 싶은 모양이다. 이 고요한 얼굴, 일그러뜨리며 발버둥치며 가까스로 지금 막 펼친 안심, 창공이다.

그림=화가 박종성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인과 함께 행복한 100시간을 보내고 떠난 뒤 우리들 마음속에 여운이 오래 남는다. 도착하는 날부터 소형차를 타고, 특별히 가난하고 소외받는 사람들, 장애와 아픔이 있는 사람들의 곁에 서서 그들과 소통하고, 그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강복하고, 그들의 볼에 입을 맞추고 눈을 맞추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깨달음을 얻게 된다.

방한 둘째 날 충북 음성 꽃동네를 찾아간 교황이, 상태가 어려운 환자일수록 더 많이 두 손으로 어루만지고 껴안고 이마에 입을 맞추는 장면을 보았다.

우리들 가까이에도 많은 장애인이 하루하루 힘겨운 삶의 시간을 견디고 있으며, 교황님처럼 아름답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많은 분들이 그들의 곁에서 헌신적으로 보살펴주고 있다.

‘뇌성마비 중증지체, 언어장애인’ 라정식씨는 ‘오랜 세월 그리 심하게 몸을 비틀고 구기고 흔들어’ 나이 마흔두 살에, 죽어서 비로소 ‘고요한 얼굴’이 되었다. 살아남은 이의 부러움을 받으며 ‘아수라장, 난장판’을 죽어서야 겨우 빠져나왔다.

아무 죄 없이 평생 동안 견뎌내야 하는, 죽는 것이 더 나은 그들의 아픔에 대하여, 곁에서 그들을 보살피는 이의 노고와 숭고함에 대하여 새삼 마음 깊이 새기는 시간을 가져본다.

이혜선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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