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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학자 강상중 첫 소설 ‘마음’으로 본 生과死

입력 : 2014-08-21 20:33:42 수정 : 2014-08-21 20:3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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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너머, 생명을 보다 일본 규슈에서 재일 한국인 2세로 태어나 귀화하지 않고 한국 이름을 고수해온 강상중(64). 그는 한국 국적을 지닌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도쿄대 교수를 역임했고 올봄에는 역시 재일 한국인 최초로 대학(세이가쿠인·聖學院) 총장에 취임했다.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고민하는 힘’과 ‘사랑할 것’ 등 다양한 인문서와 에세이를 펴내면서 일본 사회의 비판적 지식인으로 각광받아온 그가 지난해 봄에는 첫 소설을 펴냈다. 

죽은 아들이 촉발시킨 작업이었다. 일본에서 30만부 넘게 팔려나간 이 소설 ‘마음’(노수경 옮김·사계절)을 국내에서 출간하면서 최근 방한한 그는 “개인적인 영역의 죽음을 소설이 아니면 소화할 수 없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아들의 죽음은 동일본 대지진이 불러온 참혹한 사태를 배경으로 삶과 죽음, 자연과 대결하는 인간의 숙명 속에 녹아든다.

소설은 니시야마 나오히로라는 아들 이름의 청년과 시종 편지를 주고받으며 대화하는 과정을 축으로 전개된다. 사인회에서 강상중에게 편지를 던지고 사라진 청년 나오히로. 그는 친한 친구 요지로가 백혈병으로 죽자 죽음의 의미에 대한 혼란스러운 심정을 편지에 토로한다. 작중에서도 대학 교수인 강상중은 청년에게 “과거는 그저 없어지는 게 아니라 분명히 ‘있는’ 것이기에 요지로의 죽음은 무의미한 허무 그 자체가 아니라 영원을 담보하는 삶의 이면”이라는 맥락의 답장을 보낸다. 나오히로가 강상중의 조언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는 건 직접 쓰나미로 실종된 주검들을 바닷속에 들어가 건져내면서부터다.

“죽은 이의 몸은 시간이 지나면 썩습니다. 망가집니다. 밀랍과 비슷한 황색의 치즈 같은 물체가 되거나, 가스가 가득 차서 퉁퉁 부어오른 덩어리 같은 것으로 전락해버리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은 이는 존엄을 지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단순한 물체로 전락해 버린 그 하나하나에, 죽음 바로 직전까지 그 사람만이 간직하고 있던 ‘과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을 해도 죽은 이는 살아 돌아오지 않고, 가족이나 육친의 슬픔이 덜어지는 것도 아니라고 사람들은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고인의 과거야말로 죽은이에게 영원의 시간을 주는 것입니다.”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엄청난 재난을 불러일으킨 인간의 탐욕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고민하는 맥락과 더불어 이 소설은 청춘남녀의 사랑도 함께 보듬어준다. 나오히로가 대학 연극부에서 만난 여성 모에코와 나누는 감정은 죽음의 이면, 삶의 가장 빛나는 부분이다. 괴테의 작품 ‘친화력’을 쓰나미로 원전 피해를 입은 동북지방의 한 도시를 배경으로 번안해 무대에 올리는 과정은 엄청난 죽음과 재난을 철학적으로 성찰하고 치유하는 맥락이다. 

첫 소설을 펴낸 재일 한국인 학자 강상중. 그는 “한국 사회는 분단 상황에서 안전을 위한 국가의 에너지가 안보 문제에 소비돼 왔다”면서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이야말로 정신적 선진사회의 척도라고 볼 때 한국은 지금 분기점에 서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강상중은 방한 간담회에서 “이 소설이 마치 한국의 세월호 사고를 암시하는 듯한 느낌이어서 놀랍고 두려웠다”면서 “성장만을 추구해온 한국 사회에서 허탈에 빠져 국가란 무엇인지, 행복이 무엇인지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이나 한국 모두 특별한 이벤트나 경제를 앞세워 이 사태를 서둘러 잊으려고만 한다면 죽음의 의미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라면서 “일본에서는 동일본 재난 이후 진재문학이 생겨났는데 한국에서도 세월호 사건에서 촉발된 문학이 나오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정치인이나 경제인의 말이 공허할 수밖에는 상황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고 형태를 만드는 건 결국 문학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나오히로는 강상중이 재직하는 대학의 졸업생으로 쓰나미 피해 현장에서 주검을 인양하는 자원봉사자로 일한 실제 모델이라고 한다. 그는 나오히로를 보았을 때 아들이 연상돼 한순간 숨이 막혔다고 소설 말미에 썼다. 정신질환을 앓던 그의 아들은 “살아 있는 모든 이여, 언제까지고 건강하길”이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아버지 강상중 또한 문득 나쁜 마음에 사로잡히면 순간적으로 아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을 정도였지만, 이 세계에 매어 둔 줄을 끊지 않았다고 술회한다. ‘세월호’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는 이 소설의 마지막 대목을 그는 이렇게 썼다.

“지금의 저는 아들의 말이, 대지진으로 세상을 뜬 2만명에 달하는 사람들, 그리고 원전 사고로 절망하거나 유랑 끝에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유언이 아닐까 여기게 되었습니다. 살고 또 살아서, 끝까지 살아 낸 끝에 아들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아버지는 너의 말을 멋지게 지켜냈다고 보고하고 싶습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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