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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국내 가정의 인테리어를 이해하는 열쇳말은 ‘유럽’이다. 프로방스·앤틱에 이어 최근 몇년간 북유럽풍 장식이 집안을 휩쓸고 있다. 알록달록 꽃이불과 노란 장판으로 대표되는 ‘한국적 방’에 질린 이들은 때를 벗기듯 집안을 북유럽풍 미니멀리즘으로 갈아입힌다. 북유럽 접시·행주·액자 등을 사모으는 ‘해외 직구족’도 늘고 있다. 삶터에서 오랜 세월 자생한 고유의 인테리어는 찾아보기 힘들다. 주거문화의 기본 틀이 해외에서 이식됐으니 당연한 현상이다. 그렇다고 잡지에 실린 거창한 ‘한옥 인테리어’를 따라하기에는 돈도, 시간도 여의치 않다. 최근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의 ‘공예, 공간에 스며들다’ 전시를 기획한 최웅철 웅갤러리 대표는 이런 현상에 대해 “집 구석이나 방 하나 정도부터 한국적 공간으로 가꾸려 노력해보라”고 조언한다.


대나무발을 걸고 낮은 가구를 놓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한국적 공간이 완성된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제공
최 대표는 “외국에서는 가죽 장인이 명품 에르메스로 이어졌지만 우리는 일제강점기 36년을 지나오면서 전통 공예품이 생필품으로 변화되지 못했다”며 “오랜 세월 일상에서 사용해온 전통 공예가 자생하려면 한국적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최 대표로부터 전통 인테리어의 필요성과 우리 공예를 활용한 집안 장식법에 대해 들어봤다. 

대나무발 쳐놓고 아래엔 낮은 가구 배치 한국적 공간 완성
◆한국적 공간은 철학적


‘우리 것이 좋은 것’이라며 전통 인테리어를 찾자고 하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최 대표는 전통에는 삶의 지혜가 녹아있다거나 자연 친화적이라는 쉬운 설명 대신 “전통 공예는 우리가 대대로 영유해온 역사 자체”라고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너희 고유의 옷·칼·바구니가 있는가’라고 물어오면 뭐라고 답하겠는가”라며 “지금 세대에 전통 공예가 불필요하다고 없애는 게 아니라 존속·발전시켜 후세에 물려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한국적 공간’을 꾸미려면 철학적 개념에서 접근해야 한다. 집 안에 절구나 항아리 하나 갖다놓고 한국적이라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 낮고 열린 공간, 반투명성, 가변성 등 한국적 공간에 대한 감수성을 먼저 익혀야 한다. 실생활에서 적용할 만한 전통 인테리어로 최 대표는 사방탁자, 대나무발, 낮은 탁자, 옹기 등을 제안했다.

탁 트인 사방탁자 좁은 방에 놓아도 답답해 보이지 않아
◆사방탁자의 열린 공간… 대나무발·갓의 반투명성


사방탁자는 전통적 열린 공간을 보여준다. 수납·장식용 가구인 사방탁자는 사방이 틔어 있고 기둥과 바닥만 있다. 막힌 곳이 없어 좁은 방에 놓아도 답답함을 주지 않는다. 존재감도 작다. 유교 사회에서는 작은 방을 쓰는 것이 선비답다고 여겼기에, 사방탁자가 제격이었다.

사방탁자를 만드는 기법인 결부짜임은 1년에 기온이 40도 안팎으로 오르내리는 우리 자연환경에서 고유하게 발전했다. 결부짜임으로 만든 사방탁자는 혹독한 기온 변화에도 틀어지지 않고 사계절을 견뎠다. 최 대표는 사방탁자를 옆으로 눕혀서 테이블장으로 쓰면 현대적 공간에도 훌륭하게 어울린다고 조언한다.

그가 꼽는 한국적 공간의 또 다른 특징은 반투명성이다. 문짝에 한지를 바르면 공기는 통하고 황사는 막힌다. 창살을 통해 오동잎 사이로 달이 지는 모습을 보는 것도 반투명성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머리에 쓰는 갓은 반투명해서 내 얼굴은 감춘 채 상대를 볼 수 있게 해줬다.

대나무발은 이런 반투명성을 보여주는 공예품이다. 문에 발을 걸치면 방안에서는 밖을 볼 수 있어도 밖에서는 안이 안 보인다. 최 대표는 “집안에 발을 쳐놓고 아래에 낮은 가구를 놓으면 충분히 한국적 공간이 완성된다”고 밝혔다.

1500년 역사 지닌 숨쉬는 그릇 ‘옹기’ 앞접시·찻잔으로
◆낮은 공간의 편안함… 병풍의 가변성


한국적 공간의 특징 중 하나는 낮은 공간이다. 최 대표는 “방에 낮은 찻상을 들이고 방석을 놓는 것만으로도 한국적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고 조언한다.

가변성도 한 특징이다. 한반도는 여름·겨울이 분명해 막히면서 막히지 않은 공간이 필요했다. 들문은 이런 필요에서 나왔다. 여름에 들문을 접어올리면 정자, 겨울에 내리면 방이 됐다. 실내에서는 병풍으로 가변성을 살렸다. 병풍을 벽에 놓아 찬바람을 막고 물건을 가렸다. 가정에서도 현대적으로 변형된 병풍을 활용하면 얼마든지 한국적 공간을 만들 수 있다.

최 대표가 마지막으로 사용해볼 것을 제안한 공예품은 옹기다. 그는 “옹기 역사는 1500년이 넘는다”며 “옹기는 숨을 쉬기에 저장품을 썩히지 않고 숙성시킨다”고 설명했다. 과거 옹기에 빗물을 일주일간 받으면 불순물이 없어졌고, 숨 쉬는 그릇이라 처음 산 옹기에 간장을 넣으면 간장이 밖으로 새어나왔다는 것이다. 그는 옹기를 앞접시나 찻잔, 국그릇으로 쓰면서 오랜 세월 살아남은 옹기의 힘을 느껴볼 것을 제안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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