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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피리’ 향한 추악한 아귀다툼

입력 : 2014-08-21 22:29:42 수정 : 2014-08-21 22:2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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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만파식적 도난 사건의 전말’
국립극단 가을마당의 문을 여는 화두는 ‘삼국유사’다. 1000년의 고서이자 한국 사상의 정수를 담고 있는 삼국유사를 통해 우리만의 고전을 새로운 창작극으로 만들자는 뜻에서 ‘삼국유사 연극만발’ 시리즈를 마련, 좀 더 젊은 연출가와 작가들의 작품을 모았다. 실험·독창적인 작품을 발굴해 삼국유사를 바탕으로 한 지속적인 작품 제작의 가능성을 시험하고 나아가 고유의 레퍼토리로 정착할 수 있는 단단한 토대를 마련하자는 취지다.

첫 작품은 ‘만파식적 도난 사건의 전말’(김민정 작, 박혜선 연출·사진). 만파식적 설화에 현대와 과거를 넘나드는 판타지를 가미했다. 만파식적은 신라 신문왕 2년에 용으로부터 대나무를 얻어 만들었다는 전설의 피리다. 삼국유사에는 효소대왕 때 화랑 부례랑의 실종과 함께 만파식적을 도난당했고 이후 부례랑의 귀환과 더불어 다시 찾게 되지만 다음 원성왕 때까지 보관되다 자취를 감추었다고 쓰여 있다. 

조화와 치세의 상징 만파식적을 현대인이 갖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극은 전설의 피리를 갖기 위해 욕망의 정쟁을 벌였던 신라의 인물들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의 욕망에 충실한 현대인의 모습을 병치하면서,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반추하고 현재에 투영된 과거의 진리를 캐낸다. 신라의 혼란스러웠던 정국 상황은 현대 사회의 아비규환으로 이어진다.

대금 연주자 길강은 우연한 기회에 ‘만파식적’을 불게 되어 신라 시대와 현대를 넘나들게 된다. 극은 설화 속 인물들과 그들의 현대판 인물들을 교차시키면서 과거이든 현재이든 다를 바 없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그려낸다. 피리를 차지하려는 권력의 아귀다툼 속에 주인공 길강이 있다. 길강은 든든한 배경도 없고 대책도 없지만 특유의 낙천적 기질과 정의감이 살아 있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현대와 과거의 교차, 평범한 주인공이 절대 권력을 상징하는 물건을 갖게 된다는 설정, 피리의 행방을 쫓는 이들의 이야기 등이 흥미롭게 전개되지만 그 속에는 짙은 우수의 분위기가 깔려 있다. 인간의 세계로 내려온 만파식적은 권력과 탐욕의 상징일 뿐이다. 얻고자 하는 욕망에만 충실한 인간은 피리가 지닌 조화로운 소리와 평화를 가져오는 치세에는 눈이 멀어 목적을 상실한 채 질주한다. 권력에 무력한 무자비한 인간들과 그 권력을 견제하려는 평범한 소시민의 정의가 대립하며 복합적인 인간의 본성을 그린다. 고전 서사를 해석하는 다양한 연극적 상상력이 과거와 현대의 간극을 뛰어넘어, 동시대의 감각을 입고 인간과 세계에 대한 날카로운 화두를 던진다.

영화로도 제작된 연극 ‘해무’로 데뷔한 김민정 작가는 고전 각색과 창작 작업을 두루 병행하며 이야기꾼으로서의 탁월함을 드러내 보인다. 풍부한 상상력으로 경계를 모르는 독창적인 서사를 창조했다. 현대인과 사회의 단면을 제대로 포착해내는 특유의 감각이 묻어난다.

김수현 성노진 오민석 김주완 장선우 채윤서 강현우 정현철 강대진 김대순 장찬호 출연. 9월5∼21일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관객을 맞는다. 1688-5966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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