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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뜩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우리가 매일 걸어다니는 땅조차 안심할 수 없는 거구나! 수도 서울 곳곳에서 땅바닥이 꺼지는 싱크홀을 보고 문득 떠오른 단상이다. TV 뉴스에선 주민들의 불안한 하소연이 연일 귓전을 울린다. “땅만 보고 걸어요.” “혹시 땅이 꺼질까 천천히 걷기까지 해요.”

사람은 때론 어리석기 짝이 없는 존재다. 험한 일을 숱하게 겪고서야 자기 존재를 돌아보니 말이다. 분명한 위험조차 그냥 잊고 외면하는 우리가 아니던가. 사실 우리가 딛고 선 딱딱한 대지도 믿을 건 못된다. 지구를 둘러싼 지각은 얇은 살갗에 불과하고, 그 밑엔 섭씨 수천도의 용암이 끓어오른다. 지구별은 우주선보다 4배나 빠른 속도로 달린다. 우리 삶을 안고 매 순간 위험한 질주를 계속한다. 46억년 무사고 운전의 기적이 놀라울 따름이다.

세상은 기적의 연속이다. 인도 성자의 일화는 기적을 보는 혜안을 넓혀준다. 어느 날 한 성자가 갠지스강에서 명상을 하고 있었다. 건너편에선 수도승이 하산해 자신의 초능력을 과시했다. 그 수도승은 강물 위를 걸어서 건넜다. 그는 히말라야 설산에서 12년간 고행한 끝에 초능력을 얻었다고 성자에게 자랑했다. 그러자 성자가 응대했다. “그걸 배우려고 생고생을 했단 말이오. 돈 몇 푼만 내면 뱃사공이 태워주지 않소?”

애써 기적을 구할 필요가 없다. 우리 삶은 하루하루가 기적 아닌가. 일찍이 중국의 임제 선사가 말했다. “기적은 물 위를 걷는 일이 아니라 땅 위를 걷는 이 일이다.”

인생은 한 번뿐이다. 우리의 만남은 생애 단 한 번이다. 우리가 보는 꽃과 나무들도 일생에 한 번뿐이다. 매번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람과 같은 꽃을 대할지라도 어제와 오늘의 그것이 다르다. 햇빛이 다르고 바람이 다르고 모습이 다르다. 세상 모든 풍경은 일생에 단 한 번 맞는 기적이다.

동화작가 정채봉은 생전에 ‘오늘 내가 나 자신을 가장 슬프게 한 일들이 뭐가 있을까’ 하고 생각해 봤다고 한다.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이랬다. ‘꽃밭을 그냥 지나쳐 버린 일, 새소리에 무심하게 응대하지 않은 일. 밤하늘의 별들을 헤아리지 못한 일….’

순간순간의 일상에 감사하자. 삶의 기적을 가슴으로 느끼자. 새소리, 꽃향기가 더없는 기적이다. 늦여름 매미 소리가 오늘은 그냥 들리지 않는다.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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