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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수학을 예술 가르치듯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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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8-20 21:32:13 수정 : 2014-08-20 23:0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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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위주 교육으로 무늬만 수학강국
발견의 즐거움 느끼도록 바꿔야
이순신 장군은 임란왜란 당시 옥포해전에서 ‘학익진’ 진법을 썼다. 조선 수군은 부채꼴로 왜선을 포위해 속전속결로 26척을 격침했다. 대승이었다. 이순신이 조정에 올린 장계에는 “(적선을) 양쪽으로 에워싸고 대포와 화살, 살탄을 쏘아 대기를 마치 바람처럼 천둥처럼 했다”고 돼 있다. 학익진은 지상에서 적을 양쪽에서 에워싼 채 공격하는 진형을 응용한 것이다. 학이 날개를 펼친 듯한 모양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이 진법은 다른 해전에서도 활용됐다.

원재연 논설위원
학익진 사용에는 전제 조건이 있다. 아군 배와 적선 사이 거리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아군 대포 사거리도 고려해야 한다. 어림짐작해 포탄을 발사하면 아군 배를 맞히는 낭패를 볼 수 있어서다. 당연히 아군 함대와 적선 사이 거리를 측량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이광연 한서대 수학과 교수는 ‘수학, 인문으로 수를 읽다’에서 옥포해전 승리의 숨은 공신으로 도훈도(都訓導)를 꼽는다. 도훈도는 각 수영(水營)에서 산학(수학)과 관련된 일을 처리하는 하급관리로 유사시엔 전투에도 참여했다. 이들은 망해도술(望海島術)을 이용해 화포의 사거리와 적선까지 거리를 쟀다. 망해도술은 두 쌍의 닮은 직각삼각형을 이용해 거리와 높이를 구하는 방법이다. 이를 통해 화포 공격 정확도를 높일 수 있었다.

이순신은 임진왜란에서 불리한 상황을 뒤엎고 일본 수군을 무찔렀다. 그의 뛰어난 전략과 탁월한 통솔력, 거북선 같은 병기가 있어 가능했을 것이다. 수학적 원리도 보이지 않는 비결이다. 학익진은 수학으로 구현한 진법인 셈이다.

수학은 실생활과 동떨어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천만의 말씀이다. 수학은 우리가 손만 뻗으면 어디에서든 만날 수 있다. 음악에도, 건축물에도, 영화에도, 컴퓨터에도 수학이 숨어 있다. 심지어 슈퍼마켓 안에서도 수학이 활용된다.

우리 현실은 어떤가. 한국 학생들에게 수학은 골치 아프고 따분한, 왜 배워야 하는지 모르는 과목에 불과하다. 단순히 좋은 대학 가고, 나중에 취업을 잘하기 위한 현실적인 필요만으로 공부에 매달리는 탓이다. 세상 만물을 움직이는 질서와 논리를 찾아가는 수학의 진정한 즐거움을 알 리 없다. 학생들 수학 성적은 늘 세계 최상위권이지만 ‘수학의 노벨상’인 필즈상 수상자는 아직 한 명도 없다. 수학올림피아드에서 우승한 수학 영재들은 의대로 몰려간다.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이명박정부는 2012년 1월 수학 선진화 방안이란 걸 발표했다. 문제풀이 기계를 양산하는 수학교육을 획기적으로 바꿔보겠다는 취지였다. 교육 당국은 스토리텔링 교과서를 만들고 체험·탐구 활동이 가능한 선진형 수학교실을 설치하겠다고 했다. 수학의 참 재미를 느끼게 해주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용두사미로 끝날 모양이다. 3년 동안 150개를 만들겠다던 선진형 수학교실 사업은 흐지부지됐다. 주무 부처인 교육부 수학교육정책팀은 정권이 바뀌면서 해체됐다고 한다. 정부는 수학이 국가 경쟁력 원천이라고 목청을 높이지만 실천이 따르지 못하니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이다.

수학은 모든 학문의 언어이자 기초다. 인류 문명 발전은 과학기술을 토대로 하고, 과학기술은 수학을 기반으로 한다. 근대 과학의 눈부신 성과도 수학 발전 없이는 불가능했다. 인간을 달에 보낸 것도 수학의 힘이다. 오늘날 정보화시대 또한 수학적 토대에서 나왔다. 신기술 발전은 수학의 뒷받침 없이는 기대하기 어렵다.

올해 필즈상 수상자인 만줄 바르가바 미국 프린스턴대 석좌교수는 “수학은 예술인데 가르치는 방법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풀이 과정을 이해하고 발견의 즐거움을 느끼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얘기다. 과정은 도외시하고 공식만 외우게 하는 교육 방식을 비판한 말이다. 우리 청소년들도 그런 즐거음을 알게 해야 한다. 더 나아가 기초 학문의 탄탄한 축적과 이를 존중하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한국 경쟁력도, 미래도 크게 달라질 것이다.

원재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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