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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칼럼] 도서관과 문화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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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8-18 00:03:58 수정 : 2014-08-18 00:0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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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문화행사 통해 주민과 호흡
소외계층에게도 가깝게 다가가야
어린 시절 대관령 아래의 아주 작은 산골학교를 다녔다. 아침에 학교로 갈 때면 강릉시내에 연탄아궁이 대신 아직 장작아궁이를 가지고 있는 집들에 필요한 나무를 해다 팔기 위해서 매일 아침 100명도 넘는 나무꾼들이 지게에 톱과 낫을 얹고 마을로 들어왔다. 그런 산골마을의 작은 학교였는데도 학교에 교실 절반 크기만 한 도서실이 있었다.

강소천, 이원수, 조흔파 선생의 동화집과 ‘소공자’, ‘소공녀’, ‘어린왕자’, ‘보물섬’, ‘갈리버 여행기’, ‘아라비안 나이트’ 같은 세계명작동화를 학교에서 빌려 읽었다. 그때 교장선생님은 지금 도서관의 사서제도처럼 도서실 담당 어린이를 정해 누가 어떤 책을 언제 빌려 가서 언제 반납했는지를 아이들 스스로 기록하게 했다. 그것은 시골초등학교 학생들 사이에서도 매우 긍지로운 일이었다. 책을 종류별로 분류할 줄 알아야 하고, 대출과 반납 기록도 까다롭고 꼼꼼하여 아무나 할 수 없었다. 도서실은 책을 보관하는 곳이 아니라 책하고 함께 노는 곳이라는 생각이 어릴 때부터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이순원 소설가
그 생각이 조금 흔들렸던 것은 정작 도서관이 더 많은 시내의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이었다. 시험 때가 되면 아이들이 학교 도서관과 시립도서관 열람실에 가서 아예 책가방으로 자기 자리를 맡아놓고 공부를 했다. 책과 관계가 있는 공간이 아니라 오직 시험공부와 관계 있는 공간처럼 보였다. 도서관 열람실에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도 꽤나 치열했다.

그러더니 시간이 지나서는 전국의 도시 곳곳에 책 한 권 구비하고 있지 않은 ‘말로만 독서실’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름은 독서실이고 쓰임새는 입시지옥 속의 칸막이 공부방이었다. 동네에 몇 개씩 있는 그런 독서실까지 포함한다면 우리나라야말로 청소년기부터 세계에서 가장 독서를 많이 하는 나라일지도 모른다.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다음 각 도시의 도서관과 문화센터도 크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주민의 직접선거로 당선된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자신의 임기 때 이런 시설을 확보했다는 것을 눈으로 보여주듯 처음엔 각 지역의 북한 인민궁전처럼 시청건물을 필요 이상으로 요란하게 지어대고, 또 그 도시의 이름을 딴 ‘문화센터’라는 대형 건물을 경쟁적으로 지어댔다. 연간으로 따져도 문화행사 몇 번 하지 않는, 거의 공동화된 문화센터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쓰임새를 찾아 자리를 잡아갔다. 그러면서 지역 곳곳에 내실 있는 도서관들이 속속 지어지고, 시민들과 책과 함께, 또 각종 문화행사와 함께 호흡하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나라에 여러 형태의 공공시설이 있지만 아마 지역 문화센터와 도서관만큼 시민들과 밀접하게 유대하는 기관과 시설도 많지 않을 듯싶다. 지역 문화센터는 말 그대로 국가가 관리하고 책임져야 할 국민의 문화복리시설이다. 우리는 이걸 국가가 처음 시작했던 것이 아니라 어느 백화점이 처음 시작했다. 물론 그것 역시 백화점 영업의 한 방편이었는지 모르지만 어쨌거나 국가가 맡아야 할 국민의 문화복리 시스템을 사기업이 먼저 시작하고 그걸 국가가 뒤늦게 따라갔던 것이다. 그런 학습의 효과로 지역사회에 정착도 아주 잘 되었다.

지금은 작은 동네의 주민센터들도 저마다 지역특색에 맞게 문화교실을 운영하고, 지역의 도서관들 역시 책으로만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도서관에서 할 수 있는 각종 문화행사를 어린이에서부터 노인까지 전 계층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다. 이만큼 좋은 문화복리도 없다.

최근 전국의 각 도서관이 지역주민을 상대로 실시하고 있는 ‘길 위의 인문학 기행’ 같은 것도 그 지역의 문화를 주민들에게 다시 알려주고 자기가 사는 곳에 대한 이해와 긍지를 높인다. 그러나 아직도 이런 문화적으로 좋은 프로그램과 행사에 소외된 사람들이 많다. 먹고살기에 바빠 여전히 그런 일들이 먹고사는 데 문제없는 사람들의 한가한 여가처럼 보이는 것이다. 지역의 작은 문화센터와 도서관들이 이런 소외계층을 더 가깝게, 이것이 남들의 놀이가 아니라 사는 것은 비록 바쁘고 각박할지라도 그 속에 나와 나의 여유를 찾게 하는 문화놀이로 더 가깝게 접근하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이순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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