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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병원·학교·카페 … 남미 첫 ‘도시의 흔적’ 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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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8-14 22:31:15 수정 : 2014-12-22 17: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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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미의 올라 카리베] 〈27〉 ‘성스러운 일요일’ 산토도밍고
산토도밍고는 ‘성스러운 일요일’이라는 뜻이다. 가톨릭의 나라에 걸맞은 수도 이름이다. 이곳에는 아메리카 대륙 최초의 성당이 있다. 이 도시를 돌아다니다 보면,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은 곳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물론 남아메리카와 북아메리카를 합친 지역에서 ‘최초’라는 의미다. 처음으로 지어졌다는 의미가 그렇게 중요할까.

‘최초’ 시리즈 중 첫 번째로 간 곳은 성당이다. 건물이 커서 입구를 찾으려고 한 바퀴를 돌아야 했다. 입장료를 받는 관광지이지만, 사람들은 미사를 드리기도 한다. 성당 안에 들어가면 웅장함이 느껴진다. 누군가는 기도를 드리고 있고, 누군가는 헤드셋을 끼고 관람하고 있다. 벽쪽의 작은 칸들에는 각각의 이야기가 있다. 나도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게 됐다. 종교에 상관없이 각자의 신에게 드리는 기도다. 

산토도밍고에 남아 있는 아메리카 대륙 최초의 성당.
성당 앞에는 콜럼버스 동상이 세워져 있는 공원이 있다. 비둘기와 사람들로 가득 찬 공원에서 잠시 앉아서 여유를 갖는다. 비둘기를 날리는 아이들, 의자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연인들, 카메라를 메고 돌아다니는 여행자들이 있다. 그리고 나에게 다가온 한 친구가 있다. 그의 이름은 프랭크이며,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 이때 잠깐 만났던 프랭크는 그 후에도 몇 번을 더 만났다. 어디를 가든 프랭크가 나타나서 그에게 ‘너 혹시 두 명 아니야?’라고 묻기도 했다. 아침에 만나고 저녁에 다시 만난 날도 있었다. 프랭크는 걸어서 여기저기를 잘도 다니는 친구다. 한번은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여주기도 했고, 나를 그려주기도 했다. 잘 그린다고는 할 수 없지만, 재미있는 그림이었다.

프랭크와는 굳이 동행을 하지 않아도 같이 걷게 된다. 수많은 카페 중 한 곳에 들어갔는데, 그곳이 또 최초의 카페란다. 작은 카페로, 일부러 찾아서 들어오지 않는다면 그냥 지나칠 만한 곳에 있다. 카페에서는 에스프레소와 간단한 요기거리를 주문했다. 더운 나라, 더운 카페 안에서 뜨거운 에스프레소를 마시려니, 땀이 난다. 커피는 맛있지만 더위 때문에 여유가 없어진다. 컵에 얼음을 시켜 부어 마시니,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이제야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된다. 이 카페는 주인이 여러 번 바뀌며 대를 이어왔단다. 이 작은 카페에서는 유럽과 중남미의 문화가 함께 느껴진다.

성당 앞 광장에서는 비둘기들과 함께 아이들도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이런 카페 말고도 어디를 가더라도 처음 도시를 세웠을 때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현대적인 건물들 사이에 버티고 서 있는 예전 건물도 눈에 띈다. 1600년대 말 발생한 큰 지진으로 많은 건물이 무너졌고, 그 후 새로 지어진 건물이 많다고 한다. 그때 무너진 채로 그대로 둔 곳이 최초의 병원이다. 병원의 흔적은 전혀 없고, 건물 기둥과 뼈대만 남아 있는데, 당시의 돌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지금은 노숙인이 누워서 비둘기 똥을 맞으며 잠을 청하는 곳으로 변해 버렸다. 이곳은 최초의 성당 같은 관광지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 병원은 예전에 성당이자, 병원이었다. 최초의 병원이라고 하는 곳이 두 군데가 있고, 한 곳에는 성당 표지가 많이 남아 있다.

콜럼버스가 처음 와서 배를 묶었던 나무도 그대로 남아 있다. 그 나무를 찾는 일은 어려웠지만, 결국엔 찾았다. ‘세이바(seiba de colon)’라고 불리는데, 길에 큰 나무가 있을 뿐, 아무런 안내판조차 없다. 바로 옆을 지나쳐도 이 나무가 세이바인지는 전혀 알 수 없다. 세이바는 죽은 지 오래 돼서 더 이상 형태가 으스러지지 않도록 조치를 해 놓았고, 세이바 옆에 더 큰 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이웃 중에 아나라는 이름을 가진 대학생과 친해졌다. 대학교에 다니는 아나는 그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숙식을 제공받고 있었다. 그녀의 집은 산크리스토발에 있다고 했다. 아나가 학교를 구경시켜주겠다고 해서 그녀를 따라 나섰다. 지나가면서 보던 대학교였는데, 명문대라고 한다. ‘universidad autonoma de santo domingo’가 이 학교의 정식 명칭이다.

아메리카 대륙 최초의 병원은 지진으로 무너졌는데, 지금도 그 상태 그대로 남아 있다.
이 학교 또한 최초로 지어진 대학교란다. 학교 내에는 유명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건물은 새로 지어진 게 많다. 수업 시작 한 시간 전에 도착해 아나가 학교 이곳저곳을 구경시켜 주고, 그녀가 수업받는 교실까지 따라갔다. 교수님과 친구들도 소개해 줘서 인사도 하고 헤어졌다. 나는 학교를 더 돌아보고 집으로 돌아왔고, 아나는 수업이 끝나고 늦은 시간에 돌아왔다. 아나는 낮에는 아이들을 돌보고, 저녁에 학교를 다닌다. 알고 보니 이렇게 일을 하며 대학에 다니는 학생이 많았다.

라틴아메리카의 발상지인 도미니카공화국은 남미의 다른 국가들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원주민의 후예가 남아 있고, 그들의 흔적이 스페인·아이티 문화와 섞여 독특한 문화를 낳았다. 산토도밍고라는 이름처럼 성스러운 일요일에는 성당을 가고, 스페인의 후예들이긴 하지만 새로운 인종을 탄생시켰다.

극과 극이 분명히 나뉘어 어떨 때는 불편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빈부 격차가 극심하고, 피부색과 인종이 극명히 차이가 나며, 날씨 또한 쨍쨍한 날과 천둥번개가 치는 날이 오락가락한다. 특히 심각한 빈부 격차의 실상을 직접 접하게 될 때는 마음이 좋지 않다. 길거리 아이들이 구두닦이를 하고 있는데, 건물 유리 안쪽에서는 부유한 사람들이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호사스러운 음식을 먹고 있다. 미국의 부유한 도시처럼 보이는 곳이 있는가 하면, 슬레이트 지붕 아래 두세 평 남짓한 곳에서 살아가는 빈곤한 마을이 있다.

광고처럼 붙여 놓은 표어 중에 ‘우리는 왜 가난할까?’라는 문구가 있을 정도로 빈부 격차는 이 나라의 심각한 고민거리다. 주변 사람들에게 국가에서 이 같은 표어를 내건 이유를 물어봤다. 국민들이 빈부 격차 문제를 심각하게 자각하게 만들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라고 한다. 몇 년 후에는 이 나라가 달라져 있을까.

강주미 여행작가 grimi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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