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문화산책] 바흐를 좋아하세요?

관련이슈 문화산책

입력 : 2014-08-01 21:52:13 수정 : 2014-08-01 22:00:08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여름밤 대관령 휘감은 바흐의 선율
산골주민들에 잊지 못할 감동 선사
좋아하는 작곡가가 바흐라고 하면 경건한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여기기 쉽다. 그러나 오히려 그 반대일 경우도 많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상의 삶이 비루하면 비루할수록, 바흐의 음악은 듣는 이의 영혼을 더 높이 더 멀리 비상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특히 출퇴근길에 듣는 바흐는 각별하다. 생존이나 성공을 위해 스스로와의 맞닥뜨림을 유보, 또는 회피하는 사람들이 자동차 안에서 듣는 음악으로서 매우 적절한 선택이다. 자동차의 네 바퀴가 지면을 구르며 내는 마찰음과 초월적인 존재로 향하는 마음을 부추기는 경건하고, 신비롭고, 때로 비통한 음악의 부조리한 조화는 세속과 피안의 세계를 뚜렷하게 대비시켜주기 때문이다. 

김무곤 동국대 교수·커뮤니케이션학
십여 년 전 어머니를 산등성이에 묻고 돌아오는 길에 무심코 누른 오디오에서 흘러나온 곡이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 d단조(Toccata and Fugue in d minor, BWV 565)’였다. 엎친 데 덮친다고, 하필 그날 흘러나온 곡이 원곡인 오르간 연주곡이 아니라 스토코프스키가 편곡한 관현악곡이었다.

수십 대의 현악기와 관악기가 번갈아 내는 도입부의 아다지오는 내 가슴을 세차게 두들겨 팼고, 타악기까지 가세해서 폭풍같이 몰아치는 절정의 프레스티시모는 내 영혼을 하늘에 거의 맞닿게 해버렸다. 그렇다. 바로 그 음악이 자동차를 몇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달리게 했고, 부산 청사포 해변에서야 멈추게 만들었던 것이다. 때마침 노을이 수평선을 물들이고 시나브로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사라지려는 참이었다. 시동을 끄지 않은 자동차 안에는 푸가가 다시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그때 나는 갑자기 어머니가 바로 옆에 있다는, 아니 자신의 몸속에 함께 있다는 경험을 했다. 사물의 경계선이 모두 없어진 남동해의 밤바다에서 나는 온몸을 떨었다.

개인적인 취향이나 경험만을 쓸 수 없는 이 칼럼에서 바흐에 관해 쓸 계기가 없을까 하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참에 드디어 기회가 왔다. 지난 7월 15일부터 오는 5일까지 강원도 평창군 알펜시아, 용평리조트, 강원도 내 시·군에서 열리고 있는 대관령국제음악제의 하이라이트가 바흐의 음악이다. 지난해에는 세계적 첼리스트들이 바흐의 무반주 첼로곡을 연주한 바 있는데, 올해는 국내의 실력파 피아니스트들인 손열음·김태형·김다솔이 하프시코드와 오르간, 바이올린을 위한 곡을 각각 피아노 편곡 버전으로 연주하는 ‘오마주 투 바흐’를 꾸몄다. 또 이 음악제의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씨가 ‘찾아가는 저명연주가 시리즈’ 공연의 일환으로 작은 시골성당에서 지역주민들에게 들려줄 음악으로 선택한 곡도 ‘바흐’다.

지난달 27일 정경화씨가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주민들 앞에서 연주한 곡은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였는데, 그 선곡은 공연장 사정과 관계가 있다. 공연장은 150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대관령성당의 예배당이었는데, 피아노를 놓을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한다. 원래 있던 예배용 의자 외에 간이 의자 스무 개를 더 놓아서 아이들을 포함한 170여명의 청중이 입장할 수 있었다. 미처 입장하지 못한 사람들은 유아 예배실에서 유리창 너머로 보거나, 별관에서 TV화면을 통해 감상했다.

인구 4000명의 횡계에서 클래식 음악 공연이 열린 일이 처음이고, 주민들이 난생 처음으로 들은 클래식 음악의 레퍼토리가 바흐 음악이었고, 또 연주자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였다는 점에서 횡계리 주민들은 하늘에서 갑자기 별똥별이 떨어지듯 서양 음악의 진수를 한꺼번에 맛본 것이다. 횡계리 주민들에게 심심한 축하의 말씀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더 큰 축하를 받을 대상은 영문도 모르고 엄마 손잡고 연주장에 간 아이들이다. 그들은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그 순간의 감동을 두고두고 간직하리라. 일상의 생활이 팍팍해질 때마다 고향의 작은 성당, 가슴을 찌르는 바이올린 소리, 영혼이 비상하던 그 순간을 추억의 한켠에서 꺼내보리라. ‘바흐를 좋아하세요?’라는 물음은 ‘아직 삶의 이상(理想)을 포기하지 않았느냐?’라는 질문이라는 것을 그 아이들이 언젠가 알게 되기를 갈망한다.

김무곤 동국대 교수·커뮤니케이션학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아일릿 이로하 '매력적인 미소'
  • 아일릿 민주 '귀여운 토끼상'
  • 임수향 '시크한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