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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발해 도읍터엔 백일홍만 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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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7-30 21:07:47 수정 : 2014-07-30 21: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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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닝안(寧安)의 발해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 유적지는 온통 백일홍 천지였다. 발해 5경의 하나인 상경은 8세기 후반 도읍지가 된 뒤 926년 요나라에 멸망당할 때까지 수도 노릇을 했다. 228년 짧은 왕조의 흥망성쇠를 오롯이 곁에서 지켜본 셈이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언젠가 지고 마는 꽃처럼 발해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지금은 화산지대답게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으로 쌓아올린 성벽만 남아 이곳이 대제국의 궁궐터임을 알리고 있다.

김태훈 문화부 기자
한국평화연구학회가 하얼빈에서 연 국제학술대회를 취재하는 동안 학회원들과 발해 유적지를 답사할 기회를 얻었다. 하얼빈에서 닝안까지는 고속버스로 5시간 거리다. 동행한 남궁영 한국국제정치학회장은 유적지를 둘러본 뒤 “한국인으로서 한편으론 자랑스럽지만, 다른 한편으론 안타깝다”란 말로 착잡한 속내를 드러냈다. 한민족이 만주를 지배하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점은 자랑스러우나, 지금은 남의 땅이 되어 타국 역사의 일부로 다뤄지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뜻일 게다.

상경용천부 유적지 옆에는 중국 지방정부가 세운 ‘발해박물관’이 있다. 궁궐 인근에서 출토된 그릇과 기와 등 유물은 물론 초대 고왕 대조영에서 15대 애왕까지 발해 역대 군주의 초상화를 전시한 것이 퍽 신기했다. 국내에선 좀처럼 접할 수 없는 그림이라 학회원 모두 큰 관심을 나타냈다.

박물관 입구의 중국어 안내문은 한국인들의 마음 한편을 묵직하게 짓누른다. 300자 남짓한 글 곳곳에 ‘워궈(我國·우리나라)’란 표현이 등장한다. “당나라 시대에 우리나라 말갈족이 세운 발해는 ‘해동성국’으로 불릴 만큼 발전했으며, 중화민족 역사의 중요한 일부로 남아 있다”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말갈족은 오늘날 만주족의 조상”이란 문구에서는 주변에 있던 중국인들조차 “학교에선 만주족의 선조가 여진족이라고 배웠는데…”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요즘 일본이라는 ‘공동의 적’ 앞에 한국과 중국이 일치단결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한·중 간에도 과거사 문제는 엄연히 존재한다. 발해는 물론 고구려까지 몽땅 중국 역사에 편입하려는 ‘동북공정’이 그렇다. 1894년 조선 지배권을 놓고 중국과 일본이 충돌한 청일전쟁의 결과는 이후 반세기 동안 한민족의 운명을 좌우했다. 그로부터 120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을 사이에 두고 중·일 두 나라가 격렬히 대립하고 있다. 부끄러운 역사의 반복을 막으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웃나라와의 평화를 우선하되 할 말은 단호히 하는 성숙한 균형감각이 절실하다.

일행 중 박종렬 가천대교수가 유적지에서 시 한 수를 지어 읊었다. 흩뿌리는 안개비를 맞으며 발해의 서글픈 말로를 되새기니 가슴 한구석이 뻐근해져 온다.

“천년 만에 발해 고도를 찾아왔더니/ 으깨진 기왓장 파편과 백일홍 수만 송이만 반겨주네/ 대조영의 말발굽 소리 천하를 호령했건만/ 보슬비만 소리 없이 옷깃을 적시네/ 백일홍으로 피어난 발해여, 발해여.”

김태훈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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