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상대적으로 인구가 많고 국토는 좁다. 가용 토지 단가는 비싸다. 그렇더라도 식량안보의 간판 지표인 곡물자급률이 지난해 23.1%에 불과한 현실은 여간 걱정스럽지 않다. 곡물자급률은 식용 곡물에 사료용 곡물까지 합친 곡물의 국내생산 비율이다. 23.1%는 곡물의 4분의 3 이상이 해외에서 들어온다는 뜻이다. 안심해도 좋은지 의문이다.
지금은 돈을 주고 곡물을 사들일 수라도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대한민국이 북한과 다른 점이다. 그러나 국가와 국민을 온전히 지키려면 비상대책도 있어야 하는 법이다. 기상이변 피해가 번지거나 전쟁, 테러로 공급망이 끊길 경우 어찌 되겠는가.
정부가 수수방관한 것은 아니다. 적어도 생색날 일은 많이 했다. 정부는 1990년대 이후 지금껏 농가 지원 등에 200조원 넘는 자금을 쏟아부었다. 2015년 식량자급률 57% 달성을 목표로 2011년 수립한 식량안보강화대책도 있다. 국가곡물 조달시스템 구축, 해외농업개발 등의 청사진도 내놓았고 관련 예산도 확충했다. 하지만 모두 예산과 시간을 낭비한 탁상행정이었다는 중간 평가가 불가피하니 입맛이 쓰다. 국내 농가 형편도 좋아진 게 없다. 지난해 식량자급률이 47.2%에 머문 것이 단적인 물증이다.
식량안보 문제를 놓고 헛된 구호만 앞세우거나 비현실적 처방, 포퓰리즘 대책이나 내놓아서는 안 된다. 글로벌 식량 수급 체계가 원활히 작동되는 평상시와 그렇지 못할 비상시를 구분하는 지혜가 요구된다. 평상시의 정답이 비상시에도 통할 것으로 과신하는 것은 금물이다. 정반대의 접근도 삼갈 일이다. 국가적 현안인 쌀시장 개방 문제에 대해서도 현명하게 대응해야 한다. 무엇이 국가와 국민을 위한 최선의 선택인지를 중시해야 하는 것이다. 정부는 왜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하고도 식량안보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 것인지 근본부터 들여다봐야 한다. 곡물자급률은 국가의 사활이 걸린 일일 수 있다. 거듭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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