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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시각을 알리는 물시계… 中보다 앞선 기술에 자부심 돋보여

관련이슈 강상헌의 만史설문

입력 : 2014-07-27 21:00:00 수정 : 2014-07-27 21: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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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만史설문] 〈26〉 자격루(自擊漏) 장영실의 자격루가 1434년 7월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자격루’란 도대체 무엇일까. 역사에 나오는 말 중 상당수가 우리가 늘 쓰는 말과 달라 어렵다. 늘 쓰는 말로 바꾸거나, 그 말의 뜻을 알아야 한다.

‘자격루는 물시계다’라고 설명하는 요즘 방식은 두 개념(단어) 사이의 연관되는 점(이미지)을 찾기 힘들어 짐작하기도 어렵거니와 금방 잊기 십상이다. 늘 쓰는 말로 바꾸는 것은, 응당해야 할 일이지만, 전문가들의 논의가 더 필요할 것이다. 당장의 공부를 위해서는, 말의 뜻을 알기 위해 뿌리를 찾는 방법이 도움이 될 터이다. 힌트는 ‘세종대왕’이다.

문화재 전문가들이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된 자격루 모형을 둘러보고 있다. 그 기능을 유지하고 시각을 알리기 위해 사람이 항시 붙어 있어야 했던 중국의 물시계[루(漏)]와 달리 장영실의 물시계는,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시각을 알리는 장치까지 완전자동이었다. 그 장치가 정교하고 아름다워 우리 과학기술 역사의 상징적 이미지로 자주 활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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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을 만든 세종대왕은 월인천강지곡을 지을 때 ‘월月 인印 천千 강江 지之 곡曲’하는 식으로 훈민정음 글자[월] 곁에 한자[月]를 적든지, 석보상절을 ‘釋석 譜보 詳상 節절’과 같이 적는 방법을 택했다. 한자로 인해 뜻이, 훈민정음자 때문에 소리가 각기 더 명확해졌다.

참 기발하다. 소리도 뜻도 함께 한 글월(문장)에 담을 수 있으니 얼마나 편리한가. 또 ‘월인천강지곡’ 또는 ‘釋譜詳節’처럼 훈민정음자 또는 한자만을 적을 수도 있다. 되풀이되는 말이거나, 훈민정음자 또는 한자만으로도 의사소통이 가능한 경우다. 물론 그때까지 해왔던 것처럼 훈민정음 반포(頒布) 후에도 한문으로만 적은 문서도 함께 썼다.

창조적이다. 이로써 우리는 열린 말과 글을 갖게 됐다. 그 의미와 보람은 날이 갈수록 또렷해진다. 세종대왕이 가르쳐준 대로 능히 한국어가 한자를 부려 한글과 함께 쓰는 것처럼 영어 같은 로마자(字)도 한글 발음으로, 또 원래 철자로 자연스럽게 쓸 수 있다. ‘알파벳의 원래 글자는 alphabet이다’처럼 써도 크게 어긋나 보이지 않는다. 한자 공부하는 이들이 많다. 한자 급수(級數)도 ‘스펙’이란다. 그렇게 배운 한자를 잘 활용하는 방법이 바로 세종대왕이 570여 년 전에 제시한 위의 비결, 즉 ‘함께 쓰기’다.

자격루는 스스로 시각(時刻)을 알려주는 물시계, 즉 ‘자명종(自鳴鐘) 물시계’다. ‘자격루’의 어디에 그런 뜻이 있는지, 그 말의 뿌리를 생각해보는 게 ‘세종대왕식 공부법’이다.

자격루처럼 장영실이 만든 기기는 많다. 그런데 기기들 이름으로 쓰임새를 짐작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우리의 일상 언어가 그 이름의 글자(한자)와 다른 까닭이다. 이를 풀기 위해서는 번역이나 해석이 필요하다. 한자 지식은 이럴 때 유용한 연모다. 글자의 뜻을 알면 그 이름의 의미가 즉각 머리에 떠오른다. ‘자격루’ 글자를 풀어보면 실감할 수 있다.

스스로 자(自), 부딪칠 격(擊), 물 샐 루(漏)의 세 단어를 합체한 단어다. 自는 ‘저절로, 저 혼자’, 擊은 (시각을 알리려고) ‘때린다’는 말이다. 漏자는 물 수(水), 주검 시(尸), 비 우(雨)의 세 글자를 모았다. ‘삼(3) 수(水)’라는 뜻[훈(訓)]의 부수(部首) 글자인 ?[수]자는 글자의 왼쪽에 놓기 쉽게 水를 손질한 형태다. ‘점 3개’라 하여 ‘삼’이 붙었다.

수(水) 시(尸) 우(雨) 모두 그림을 다듬은 글자 즉 상형(象形)문자다. 그림이 글자가 됐다 해서 한자를 ‘상형문자’라고도 한다. 그 글자는 당연히 그 그림을 뜻한다. 그래서 뜻글자다. 소리글자인 한글과 다른 점이다. 그런 그림글자들이 모여 다른 의미와 소리를 갖는 글자가 만들어지는 원리가 3000년 역사의 한자의 묘미다.

시(尸)와 우(雨)가 만나 루(?) 글자가 된다. 尸는 원래 주검, 즉 시신(屍身)의 뜻이나 여기서는 지붕 모양으로 쓰였다. ‘지붕 안으로 비가 샌다’는 뜻의 새 글자다. 글자와 글자가 서로 뜻과 뜻으로 모인 형태, 즉 회의(會意)다. 뜻도 소리도 원래의 글자와는 거리가 있다. 사람[인(人 ?)]이 나무[목(木)] 곁에 있어 쉰다는 휴(休)가 되는 것과 같은 합체법이다.

글자를 모아 다른 글자를 만드는 또 다른 방법이 한자에서 가장 흔한 형성(形聲)이다. 수(水)와 루(?)가 만나 루(漏)가 됐다. 형성에서 형(形)은 뜻, 성(聲)은 소리(발음)를 각각 담당한다. 글자에 따라서는, 루(漏)처럼, 소리 요소도 일정 부분 뜻을 빚는 데 역할을 한다. 수(水)와 소리 요소인 공(工)이 합쳐져 물 흐르는 강(江)이 됐다.

세종대왕의 총애를 받았던 위대한 과학자 장영실. 등장할 때와 달리 퇴장할 때의 모습은 너무도 초라했다는 역사의 기록이 때로 화제가 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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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轉注) 또는 전(轉)이라는 한자의 활용 원리는 비유법과도 같다. 轉은 ‘구르다’, 注는 ‘물붓다’는 뜻, 원래의 글자를 비슷한 의미로 돌려쓰는 것이다. 바퀴는 굴러 모양이 좀 변해도 바퀴다. 물이 땅 모양을 따라 여러 풍경 이루며 흐르지만 본디는 물이다. 큰 범위에서 넉넉하게 뜻을 나눠 쓴 한자 역사의 묘미다.

한자사전의 ‘轉하여 ∼의 뜻’이란 풀이가 그것이다. 물이 새는 것, 즉 루(漏)의 현상을 이용해 옛 사람들은 시간을 쟀다. 漏자가 ‘전(轉)하여 물시계의 뜻’이 된 이유다.

‘자격루=스스로 시각을 알리는 물시계’로 외우는 것과 글자 뜻을 따지는 것, 무엇이 다를까. 자격루의 각각의 글자들은 다른 많은 단어들, 자연(自然)·격파(擊破)·누설(漏泄) 등의 부품이 된다. 빨리, 정확하게 글을 읽을 수 있다. 글 짓는 데에도 이 이점(利點)은 그대로 쓰인다. 한자 아는 사람의 경쟁력이다. 배운 한자는 이렇게 보람 있게 쓸 수 있다.

강상헌 언론인·우리글진흥원장 ceo@citinature.com

■ 사족(蛇足)

낮은 신분, 즉 천출(賤出)로 태어난 장영실(蔣英實)의 재주를 한눈에 알아보고 중국에 유학을 보내 한국 역사의 대표적 과학기술자로 키워낸 세종대왕의 안목은 훈민정음 창제만큼이나 극적(劇的)이다.

장영실은 원래 지방관청의 관노(官奴)였다. 장영실은 간의(簡儀)·혼천의(渾天儀) 같은 천체(우주)관측기, 앙부일영(仰釜日影)·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자격루 같은 시계, 비 오는 양(量)을 재는 측우기(測雨器)와 하천 물의 높낮이를 재는 수표(水標) 등을 만들었다. 새롭게 만든 것도 있고, 당시 중국 등에서 개발돼 쓰이던 것을 거의 발명 수준으로 획기적으로 개선한 것도 있다. 이런 뛰어난 ‘작품’들로 세종 시대의 ‘창조경제’에 기여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을 받은 것이 자격루다. 윗부분의 물그릇에서 흘러내려온 물이 아래의 그릇으로 들어가면서 부력(浮力)으로 그 안의 막대를 띄워 올리고, 그 힘이 지렛대와 쇠구슬에 전달되어 시각을 알리는 장치를 때리는 구조였다. 그 장치의 정교함과 기능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장영실은 높은 관직을 받았다.

세종대왕의 총애(寵愛)를 받았으나 그의 ‘퇴장’ 모습은 초라했다. 그가 제작 과정을 감독한 임금의 수레가 부서지는 바람에 곤장을 많이 맞고 파직(罷職)되었다는 1442년의 기록을 끝으로 그의 행적은 기록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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