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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애의 영화이야기] '납량특집' 진화하는 뱀파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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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7-26 08:55:00 수정 : 2014-08-02 18: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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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드라큐라'(감독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1992)
지난주 뮤지컬 ‘드라큘라’(연출 데이비드 스완)를 봤다. 브로드웨이 버전에는 없던 넘버도 추가되는 등 변화가 있었다는데, 이 뮤지컬에서 뱀파이어 캐릭터 계의 대표적 고전 캐릭터 드라큘라 백작은 한 여자를 400년 동안 기다려온 순정남이 되어 있었다. 무대는 역동적이고 묵직하고 어두웠지만, 특히 드라큘라와 미나가 부르는 노래들은 안타깝고, 아련했다.

드라큘라를 연기한 이는 그룹 JYJ 멤버이자 뮤지컬 배우로 활동 중인 김준수였다. 아이처럼 울면서 구애하는 순정남(게다가 김준수의 빨간 머리, 하얀 손목과 만난) 드라큘라를 만나고 온 후, 이 뮤지컬과 같은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했던 영화 ‘드라큐라’(감독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1992)를 비롯해 뱀파이어가 주인공인 ‘뱀파이어와의 인터뷰’(감독 닐 조단, 1994), ‘트와일라잇’ 시리즈 등의 영화들이 떠올랐다.

1990년대 이후 제작된 영화들을 떠올리다보면 오싹함이나 공포심보다는 안타까움, 아련함 등이 느껴진다. 뱀파이어는 이제 더 이상 공포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연민 혹은 선망의 대상이 되어버린 듯하다.

뱀파이어는 사실 연민의 대상이든, 선망의 대상이든 우리 편이기에는 큰 문제가 있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는 사람이든 짐승이든 피를 먹어야하는데, 이는 즉 살인이든 살생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뱀파이어는 소설에서든 영화에서든 삶과 죽음이라는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악마이면서,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저주 받은 존재’로 묘사되었고, 주로 공포영화 장르 속 악역으로 등장했다.

주인공이라고 해도 관객의 감정이입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척결의 대상이었다. 관객들이 약간의 동정심을 보낼 수는 있어도 꽤 오래 영화 속 뱀파이어는 인간을 위협하는 적이었다.  

이번 뮤지컬 ‘드라큘라’, 코폴라 감독의 ‘드라큐라’와 동일한 브램 스토커의 소설 원작을 바탕으로 한 1922년 독일 F.W.무르나우 감독의 ‘노스페라투’에서 드라큘라 백작은 섬뜩한 공포의 대상이었다. 

1920년대 초반은 이제 막 장편극영화가 대세가 된 시기로 독일에서는 소위 ‘표현주의 영화’라고 불리는 영화들이 제작되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기존 영화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명암대비를 통한 조명 효과, 카메라 앵글과 구도, 세트, 편집 등을 이용해 영화의 극적인 효과를 만들어냈다는 게 특징이다.

'노스페라투'(감독 F.W. 무르나우, 1922)
‘노스페라투’는 이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대표작이다. 한국영화 ‘여고괴담’(감독 박기형, 1998)에서도 우리를 식겁하게 만들었던 편집의 원조를 확인할 수 있기도 하다.

이미 원작 소설에서 확립해둔 스토리가 정해져있기는 하지만, 영화화되면서 이루어지는 수많은 선택들에 의해 영화의 메시지는 바뀔 수 있다. 물론 스토리 수정이 아예 이루어지기도 한다. 이런 선택과 수정들은 감독이나 제작자, 투자자 등 제작진들의 결정이기는 하지만, 영화가 만들어지는 사회, 문화적 분위기와도 무관하지 않다.

선악 구분의 모호함, 소수의 목소리를 향한 관심, 흑백논리에 대한 거부감, 다양한 시선에 대한 인정 등 사회·문화적 변화들은 당연히 악의 화신으로 다뤄지던 뱀파이어를 어쩌면 또 다른 희생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의 전환에 이른다.

뱀파이어들은 우리가 미처 몰랐던 아픔을 지닌 존재로 변화되어갔다. 간혹 초능력이나 미모를 겸비한 존재로 그려지기도 했다.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서 루이는 도저히 사람의 피를 먹을 수 없어 짐승의 피로 연명하는 고뇌하는 뱀파이어였다. 최대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숨어 지내는 은둔형 뱀파이어다.

스웨덴 영화 ‘렛미인’(감독 토마스 알프레드슨, 2008)에서 뱀파이어는 초등학생 나이의 여자아이로 등장한다. 현실적으로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연민의 대상이 된 것이다. ‘박쥐’(감독 박찬욱, 2009)의 주인공 상현 역시 살인하지 않고 인간들과 공존하고자하는 뱀파이어였다. 비록 태주와의 사랑으로 뱀파이어로서의 일상이 틀어지지만 말이다.

그러다 ‘트와일라잇’ 시리즈에서 뱀파이어를 악한 존재로 보는 관점 자체가 뒤틀어진다. ‘꽃미남’ 고등학생 뱀파이어 에드워드는 짐승의 피를 먹으며 사람들과의 공존을 위해 노력하지만, 자신이 저주 받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뱀파이어가 되겠다는 벨라를 처음에는 거부하지만, 결국 뱀파이어를 저주받은 존재로 보는 ‘인간 중심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행복하고 아름다운 (외모의) 뱀파이어 가족을 구성한다. 

'트와일라잇'(감독 캐서린 하드윅, 2009)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 몇 편의 영화만 봐도 확실히 많은 뱀파이어들이 영화 속에서 인간적이고, 친근하고, 매력적인 우리 편 캐릭터로 변화되어 온 것을 알 수 있다. 미모와 섹시함에 인간을 도와주는 초능력을 겸비하기도 한 그런 존재 말이다.

2013년 미드로 시작된 ‘드라큘라’에서는 서로 죽이려 쫓고 쫓기던 반헬싱과 손을 잡는 드라큘라 백작의 모습까지 등장했으니 앞으로의 변화가 궁금해진다.

한편, 한국영화 중에는 성인영화나 코미디영화로 뱀파이어가 등장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원래 귀신이나 좀비 등 공포의 대상이 우스꽝스럽게 등장하면 더 재미있는 법이니까. ‘흡혈 야녀’(감독 김인수, 1981), ‘영구와 흡혈귀 드라큐라’(감독 심형래, 1992), ‘드라큐라 애마’(감독 석도원, 1994),  ‘갈갈이 패밀리와 드라큐라’(감독 남기남, 정창욱, 2003), ‘흡혈형사 나도열’(감독 이시명, 2006) 등을 참조할 것.

공포와 척결의 대상에서 연민과 선망의 대상뿐만 아니라 웃음의 대상, 그리고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고 나약하기도 한 존재로 진화하고 있는 영화 속 뱀파이어들의 계속되는 변신을 기대해본다.

서일대 영화방송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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