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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2등 국민’서 주류로… 라티노는 누구인가

입력 : 2014-07-25 20:02:20 수정 : 2014-07-25 20: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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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영향력 커지며 중남미서 이주 늘어
1980년대 이후 주류사회 진입 시작
후안 곤살레스 지음/이은아 외 옮김/그린비/2만7000원
미국 라티노의 역사/후안 곤살레스 지음/이은아 외 옮김/그린비/2만7000원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 로버트 메넨데즈 상원 외교위원장, 힐다 솔리스 전 노동장관, 오마 미나야 전 뉴욕 메츠 단장은 각기 미국 법조계와 정계, 스포츠계를 주무르는 거물들이다. 이 4명은 미국 사회 주류인 영국계 백인이 아니고 ‘히스패닉’이란 점이 공통적이다. 흑인과 더불어 대표적 소수민족인 히스패닉 출신으로 정상의 자리에 오른 그들은 약 5500만명에 이르는 미국 내 히스패닉 주민들의 자존심이다.

저자는 우리한테 익숙한 히스패닉 대신 ‘라티노(Latino)’란 용어를 썼다. 그에 따르면 히스패닉은 ‘스페인어 사용자’라는 뜻이고, 라티노는 ‘미국에 거주하는 라틴아메리카인’을 통칭하는 표현이다. 영어 이외의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에 대한 인종적·문화적 편견을 담은 히스패닉 대신 요즘은 라티노를 널리 쓰는 추세라고 설명한다.

책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중남미와 북미가 왜 전혀 다른 사회로 발전했는지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영국인이 개척한 미국·캐나다가 앵글로색슨 문화를 받아들인 반면 스페인·포르투갈의 식민지로 출발한 중남미는 라틴 문화가 뿌리를 내렸다. 19세기 들어 신흥강국으로 떠오른 미국은 1823년 ‘먼로 선언’을 발표한다. “미국은 유럽 대륙의 일에 간섭하지 않을 테니 유럽 열강도 아메리카 대륙에 관여하지 말라”는 취지의 이 선언은 중남미를 미국의 ‘영향권’으로 간주하는 제국주의 속내를 드러낸다.

중남미를 자기네 ‘텃밭’이자 ‘뒤뜰’쯤으로 여긴 미국은 이 지역에 대한 정치적·경제적 진출을 가속화한다. 푸에르토리코의 사례에서 보듯 미국은 직접 중남미에 식민지를 거느리기까지 한다. 400년간 스페인 지배를 받다가 1898년 미국령이 된 푸에르토리코는 현재 독립국도 아니고, 그렇다고 미국의 한 주가 되지도 못한 채 ‘자치령’의 어정쩡한 지위에 머물고 있다. 소수민족의 아픔을 삼키며 ‘2등 국민’으로 살아온 라티노의 슬픈 운명과 정확히 닮았다.

1980년대까지도 미국 사회에서 거의 무시당한 라티노는 정·관계와 학계, 법조계 등에서 유력 인사를 배출하며 차츰 ‘존재감’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흑인과 라티노의 전폭적 지지에 힘입어 2008년 대통령에 당선된 오바마는 솔리스 노동장관과 켄 살라자르 내무장관 2명의 라티노를 입각시키는 파격 인사를 단행했다. 라티노의 약진은 2009년 소토마요르 대법관의 탄생으로 절정에 이른다. 가난한 푸에르토리코 이민자의 딸을 사법부 최고위직으로 받아들일 만큼 미국사회는 성숙해졌다.

하지만 책은 지금 라티노가 처한 여건을 ‘장밋빛’으로만 그리진 않는다. 라티노의 취업율은 여전히 영어 사용 백인보다 훨씬 낮고, 라티노 출신의 기업 최고경영자(CEO)를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상당수 라티노가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열악한 환경 속에 살아간다. 자유무역주의를 앞세운 미국정부는 중남미를 신자유주의 경제질서의 틀에 꽁꽁 묶으려 하고 있다.

책을 읽고 나면 한국에 거주하는 필리핀·베트남·중국 등 이민자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한국정부는 ‘다문화’의 이름 아래 그들을 포용하려 하나 사회적 편견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결혼과 취업을 위해 한국사회에 발을 내디딘 이들 대부분이 극심한 경제적·문화적 차별에 시달리며 ‘2등 국민’의 서러움을 감내하고 있다. 한국의 소토마요르, 한국의 오바마를 보려면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세월이 걸릴까.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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