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끝없는 증오와 욕구 인간본성 향한 추적… 처절한 핏빛 잔혹극

입력 : 2014-07-24 21:04:21 수정 : 2014-07-24 21:04:21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임성순 신작 장편 ‘극해’
임성순(38·사진) 신작 장편 ‘극해’(은행나무)는 지독한 소설이다. 세부에 대한 치밀한 묘사가 그렇고, 극한상황에서 인간의 본성을 끝까지 추적하는 태도가 그렇다.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포경선 유키마루호는 일본 해군의 식량 조달을 목적으로 시모노세키 항을 출발한다. 일본인은 물론 조선, 대만, 필리핀의 선원들이 함께 승선한다. 차출됐거나 착각해서 지옥의 배에 승선한 이들이다. 이 배가 미군의 폭격을 받아 표류하면서 남극의 노르웨이 기지로 향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사투를 벌이는 인간들의 처절한 핏빛 잔혹극이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두려움과 서글픔을 양념으로 치열하게 전개된다.

고래를 잡아 해체하는 일은 엄청난 노동이자 전문기술이 필요하다. 혹등고래를 앞에 두고 전문 칼잡이 해부장은 능숙한 솜씨로 장기와 내장을 분리하고 척추와 경추에 칼을 집어넣어 머리를 분리하면서 긴 시간 동안 거대한 고래를 고기 조각들로 만들어냈다. 그는 작은 단도로 뱃살 한 줌을 잘라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으면서 막 잘라낸 생고기였던 탓에 피가 묻은 입으로 쩝쩝거렸다.

서두에 배치된 고래 해체 장면은 남극해에서 벌어지는 인육의 사육제 장면으로 연결되면서 인간의 근본 속성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매개로 작동한다. 잔인하고 오만하기 이를 데 없는 일본군인 상등병조, 그가 첫 희생자였다. 남극해에 당도한 뒤 조선인들이 선상반란을 일으켜 유키마루호를 장악한다. 이 과정의 중심인물은 일본 유학파 출신 ‘선생’이지만, 정작 이 배를 지배한 실체는 끝없는 증오와 생존을 향한 본능적인 욕구만 살아남은 짐승 같은 인간 존재의 서글픈 본질이었다.

2010년 1억원 고료 세계문학상에 장편소설 ‘컨설턴트’가 당선돼 문단에 나온 임성순은 그동안 ‘문근영은 위험해’ ‘오히려 다정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를 출간하여 이른바 ‘회사 3부작’을 완성했다. 시나리오 작업도 병행하고 있는 그는 “슬프게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는 타인의 인권 따위는 침해해도 상관없다고 믿는, 심지어 다른 사람들의 목숨조차 상관없다고 믿는 사람들을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다”면서 “너무나 비극적이게도, 이제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세상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작가의 말에 썼다.

유키마루호의 내부와 인물과 시대 배경을 놀라울 정도로 섬세하고 생생하게 직조한 작가의 공력이 각별히 돋보인다. 문장은 결연하고 단호하다. 일말의 감상이나 위로를 동반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핏빛 소설을 끝까지 읽어내면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연민과 슬픔 때문에 먹먹해서 따스해질 수 있다. 한국 작단에 이처럼 치밀하고 치열한 장편 하나 드물게 추가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갈채를 보낼 만하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