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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원칼럼] 개혁은 누가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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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7-21 21:18:39 수정 : 2014-07-21 21: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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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난에 시위벌인 韓銀· ‘청렴’ 내던진 법무부· 바뀐 것 없는 공조직
무엇으로 국론 모으고 무엇으로 국운 여나
나라가 부도난 1997년, 아픈 기억이 있다. 그해 11월 중순 한국은행 직원들이 ‘금융개혁 반대’ 머리띠를 두르고 거리로 뛰쳐나왔다. 수많은 기업이 쓰러지고, 수많은 가장이 일자리를 잃은 바로 그해다. 바닥난 외환. 그때 수십억 달러라도 남아 있었을까. 그 광경을 본 외국 투자자의 반응은 싸늘했다. “디폴트로 갈 수밖에 없다.” 두 주가 채 지나지 않아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백기투항했다. “모든 요구를 받아들일 테니 달러를 지원해 달라”고 했다.

강호원 논설실장
지금도 다시 묻고 싶다. 왜 그랬나. 나라 운명을 제쳐두고 거리로 뛰쳐나갈 사안이었나. 금융개혁을 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것인가, 금융이 망한다는 것인가. 그 후 어떻게 됐나. 은행감독원을 떼어내 문제라도 생겼는가. ‘독립’은 훼손됐는가. 문제가 있기는 하다. 금융감독원이 낙하산을 투하하는 본산이 되어버렸으니. 이전에는 그 본산 중 하나가 한국은행이었다. 금융개혁안에 도장을 찍은 이경식 총재, 퇴임 후 3년 동안 한국은행에 사진이 걸리지 않았다. 지금 기준으로 봐도 고액 연봉을 받았던 한국은행 직원들, 그들은 직장을 잃지 않았다. 망하지도, 민간기업과 같은 참혹한 구조조정도 없었으니. 국민의 안위보다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한 ‘못난 행태’가 아니던가.

17년이 지난 지금, 달라졌을까. 그런 것 같지 않다. ‘깨끗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법을 바로 세워야 할 법무부의 행태가 묘하다. 김영란법 원안에서 알맹이를 뺀 채 껍데기 법안을 국회에 넘겼다. 무슨 생각으로 그랬을까. 갑 중의 갑인 법무부와 검찰, 청렴도 평가에서는 꼴찌다. 국회는? “위헌 소지가 있다”고 하고, 적용 대상을 두고 논란만 벌였다. 법안이 국회에 넘어간 지 한 해가 돼가도록 결론이 없다. 한국공법학회는 무엇이라고 했는가. “김영란법 원안은 위헌 문제가 없다”고 했다.

공무원연금은 또 어떤가. 올해에만 2조5000억원의 적자를 혈세로 메워야 한다. 앞으로 8년 동안 46조원의 적자가 더 난다고 한다. 혈세를 또 퍼부어야 하나. 혈세로 깡통 연금을 유지시키겠다고 하니 공직자들이 걸어가야 할 길이 아니다. 등 떠밀려 마련하는 개선책이 또 허탈하다. 비슷한 일은 도처에 깔려 있다.

과거 한국은행의 못난 행태와 무엇이 다른가. 세월이 흘러도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나라를 걱정하기보다 자신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국론통합? 패덕(悖德)의 질서가 난무하는 판에 무엇으로 민의를 하나로 모을까.

관료, 정치인, 법조인. 모두 이 나라의 지도자들이다. 국민은 그들을 존경할까. 자신의 이익부터 생각하는 사람을 존경할 리 있겠는가. 이런 참담한 일도 없다.

국가개혁,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가 남긴 국가적 숙제요 화두다. 멀쩡한 어린 학생들은 왜 진도 앞바다에서 숨져야 했는가. 선장 이준석 때문인가. 썩은 관료집단의 잘못은 이준석보다 더 크다.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관(官)피아의 검은 결탁은 구조적인 부패를 이 나라의 유산으로 남기고 있으니 그렇다. 관피아뿐이던가. 법(法)피아, 정(政)피아는 또 어떤가. 똑같다. 그들에게 맡겨진 공권(公權)을 국민 안녕을 위해 쓰지 않으니 범죄집단에 붙는 ‘마피아’라는 이름이 붙었다.

국운? 무엇으로 열어 가겠는가. 지도자를 도둑처럼 바라보는 현실에서 국운이 열릴 리 없다. 그런 까닭에 국가개혁은 포기해서는 안 될 과제다. 역사 어느 시기에나 그 시대의 모순을 몰랐던 적이 있는가. 모순을 깨지 못하니 패망의 길로 들어섰을 뿐이다. 이사위감이다.

“국가혁신”을 외친다. 정홍원 총리는 이런 말을 했다. “반부패TF가 부패 요소가 어디 있는지 찾아 뿌리 뽑겠다.” 말이 쉽다. 결과 얻기는 말처럼 쉽지 않을 터다. 사면(四面)에 초가(楚歌)가 드높으니. 그렇다 해도 ‘반개혁의 벽’은 반드시 깨야 한다. 무엇으로? 국민의 박수를 업은 지혜로운 권력의 힘으로 깨야 한다. 성공할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있다. 험난하지만 ‘부패의 벽’을 깨고 또 깨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 속에 우리 아들딸의 미래가 있으니.

강호원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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