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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준모의세계시선] 이스라엘의 독선과 하마스의 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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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7-21 21:16:41 수정 : 2014-07-21 23:4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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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을 감행한 지 벌써 보름째다. 사망자가 이미 500명을 넘었고 부상자도 5000명을 헤아린다고 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하마스의 극한적인 투쟁은 독선과 아집의 충돌이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침공을 자신들을 지키기 위한 정당한 행위라고 항변한다. 따라서 어린이와 민간인 희생은 애써 외면하며 국제사회의 비난과 전쟁 중단 요구도 무시한다. 반면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 해제와 수감 재소자 석방, 이집트와 가자지구 국경 개방 등을 요구하며 휴전제안을 거부한다.

우준모 선문대 교수·국제정치학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을 사이에 두고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구로 분리되어 있다. 가자지구는 하마스 정부가 들어서 있으며 서안지구는 온건한 파타 정부가 통치한다. 양 세력이 지난달 통합정부 구성을 발표하고 국제사회에서 팔레스타인의 활로를 모색하자 이스라엘은 힘의 우위를 과시하고 이 지역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하고자 하마스 발본색원에 나섰다.

이·팔 갈등의 뿌리는 제1차 세계대전 때 영국이 취한 이중적 외교행태에서 비롯된다. 영국은 오스만제국과의 전쟁에서 아랍인들의 협조를 얻기 위해 1915년 맥마흔선언으로 전후 아랍국가건설을 약속했다. 그리고 1917년에는 전쟁자금 확보와 미국의 참전을 유도하려고 밸푸어선언을 했다. 외무장관 밸푸어가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의 민족적 고향을 만들도록 지원을 약속한 것이다.

1920년부터 팔레스타인을 위임통치하게 된 영국은 조직적으로 유대인 이주를 장려함으로써 아랍인과 유대인 간 분쟁을 촉발시켰다. 특히 1933년 독일에서 나치정부가 들어서자 유대인들은 대규모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은 문제를 유엔에 떠넘겼다. 유엔은 1947년 11월 총회에서 팔레스타인을 유대인 거주지와 아랍인 거주지로 분리하여 독립시키고 예루살렘은 국제관리 구역으로 남겨두기로 의결했다. 1948년 5월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건국을 선언하자 아랍 국가들은 이를 저지하고자 이스라엘을 침공했다. 제1차 중동전쟁이었다. 전쟁은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나고 팔레스타인인들은 토착지역에서 밀려났다. 이스라엘과 아랍국들은 그 이후로도 세 차례나 더 전쟁을 치렀으나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은 이스라엘의 입지와 군사적 우위는 더욱 공고해졌다.

1993년 이·팔 양측은 오슬로 협정을 통해 공존을 모색했다. 아라파트의 팔레스타인 해방기구는 테러를 포기하고 자치정부를 구성하여 유엔과 국제사회로부터 사실상 독립국가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1995년 11월 평화를 모색하던 이스라엘 라빈 총리가 극우파 청년에 의해 암살되고 뒤이어 팔레스타인에서도 하마스가 세력을 확장했다. 따라서 1996년 이후 이·팔 양측은 강경세력들의 독선과 아집에 계속 휩쓸리며 분쟁을 격화시켰다.

국제사회는 종교적 차이와 영토 할양 문제로 수십 년간 충돌한 이·팔 분쟁을 해결할 수 있을까. 지금은 이스라엘의 독선과 하마스의 아집을 누그러뜨리고 통제할 유엔평화유지군 파견이나 평화협상을 이끌어낼 강력한 중재자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우준모 선문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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