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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칼럼] 따돌림 당하면 다 총을 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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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7-17 20:44:59 수정 : 2014-07-18 10:4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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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부적합자’ 걸러낸 설리번 사례 반추하며
GOP 비극의 책임이 어디 있는지 성찰해야
고대 스파르타 이래 모든 군사강국은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을 중시했다. 정신 건강으로 초점이 넓어진 것은 20세기의 일이다. 모든 사람에게 정신신경증이 있다고 본 프로이트 학설의 영향이 컸다.

이승현 논설위원
해리 스택 설리번이란 정신의학자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 미군 정신감정관을 통솔해 ‘부적합자’를 걸러낸 인물이다. 징집 대상자 4명 중 1명은 설리번의 촘촘한 체에 걸러져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사유는 지적장애, 괴짜, 정서 불안, 부적응 등으로 다양했다. 여기서 동부전선 경계소초(GOP) 총기 난사 사건과 직결되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왜 우리 군엔 설리번이 없는가. 왜 관심병사 제도는 무력했는가.

임모 병장 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가 엊그제 공표됐다. 범행 동기는 대인관계로 집약된다. 따돌림, 놀림을 당한 것이 비극의 화근이었다는 것이다. 동정적 시각이 사회 일각에 엄존한다. 집단 따돌림 현상에 대한 공분이 깔려 있다. 임 병장을 탓하면 환영을 못 받는 인터넷 동네도 있다. 임 병장도 자살 시도 직전에 쓴 메모에서 “나에게도 잘못이 있지만 그들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했다.

범죄 가해자에게도 따뜻한 관심을 쏟는 것은 성숙한 사회의 지표일 수 있다. 많은 전문가가 구조적 환경에 집중하는 것도 얼추 같은 맥락이다. 군의 관심병사 분류·관리가 즉각 비판의 도마에 올랐고,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무거운 숙제로 간주되고 있다. 군이 비극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규탄의 목소리가 우렁찬 것이다.

‘본성 대 양육’ 논쟁은 해묵은 논란거리다. 본성, 즉 유전자가 모든 것을 좌우한다는 주장은 힘을 잃은 지 오래니 양육, 즉 환경의 중요성에 적절한 방점을 찍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이다. GOP 사건에서도 그렇다. 관심병사 제도와 같은 환경 변수를 유념하게 된다. 그러나 사건 후폭풍엔, 특히 인터넷 동네의 동향엔 거북한 구석이 없지 않다. 왜 그런가. 이런 상념을 지울 수 없어서다. 개인의 자유와 책임은 대체 어디로 간 건가. 따돌림을 당하면 다 동료에게 총을 쏘는가.

설리번 얘기로 돌아가자. 설리번 체제는 오래가지 못했다. 징집 대상자를 줄줄이 집으로 보낸 것도 그랬지만 설리번의 체를 통과했다고 다 멀쩡히 복무한 것은 아니었다는 점도 불신을 키웠다. 미 터프츠 의대 교수 나시르 가에미는 ‘광기의 리더십’에서 “1943년까지 11만2500명의 병사가 정신의학적 이유로 제대했다”고 강조한다. 조지 마셜 장군이 쐐기를 박기도 했다. “정신신경증 환자는 전문가들이 보기엔 병원에 있을 환자지만 보통 장교들이 보기엔 꾀병 환자에 불과하다.”

새 정신감정 지침은 명료했다. ‘아주 확실히 미친 병사만 솎아내라.’ 검증의 문턱은 턱없이 낮아졌다. 대다수가 통과할 정도로. 눈여겨볼 것은 그 변화가 빚은 역설적 결과다. 판정 기준 완화에 따라 군 복무를 하다 정신의학적 이유로 제대한 병사는 몰라보게 급감했다고 한다.

부적합 병사의 수는 보는 관점에 따라 늘 수도, 줄 수도 있다. 설리번 사례의 일차적 교훈이다. 현대 과학의 정신감정 능력을 과신하는 것 또한 금물이다. 환경 결정론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개인의 몫이 엄연히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관심병사 제도 등을 놓고 왈가왈부하는 GOP 사건 파장은 입맛이 쓰다. 방향 착오 가능성이 커서다. 어쩌면, 병력 자원 부족 추세에도 군복무 단축 공약과 같은 포퓰리즘 접근을 일삼는 정치권을 질타하는 게 환경 중시 관점에선 한결 나은 선택일 수 있다.

철학자 니체는 “당신을 죽이지 못하는 것은 당신을 더 강하게 만든다”고 했다. 역경 극복의 경험이 인간 능력을 키운다는 뜻이다. 임 병장은 그 이치를 몰랐다. 안쓰럽고 안타깝다. 그렇더라도 정오표는 분명히 해야 한다. GOP 사건 가해자는 임 병장이다. 그에 대한 따뜻한 관심은 좋지만 동료와 군, 세상으로 화살을 돌리는 일각의 반응은 황당하고 무모하다. ‘왜 우리 군엔 설리번이 없는가’라고 헛되게 묻는 것이나 매한가지다. 그렇게 백날 물어봐야 병영 문화를 개선할 답은 찾기 어렵다. 차라리 개인의 몫을 깊이 성찰할 일이다. 어린 세대를 어찌 가르칠지도….

이승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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