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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레게를 사랑한 나라 … 별을 가슴에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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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7-17 21:09:45 수정 : 2014-12-22 17: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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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미의 올라 카리베] <24> 자메이카를 떠나며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의 숙소에서 몇 발자국만 걸어 올라가면 ‘리버 하이킹(River Hiking)’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그 글귀만 믿고 하이킹을 시작한 건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다. 나는 물이 콸콸 시원하게 흐르는 계곡을 상상했다. 내려가는 절벽에는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그 계단 중간쯤부터는 더 이상 내려가지 못하도록 길을 막아 놓았다. 오른쪽으로 사람이 지나간 흔적이 남아 있어 그 길을 택했다. 하이킹을 처음 시작한 곳은 벌써 아득히 멀어져 갔다.

사람 자취가 있으니 걸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길은 점점 갈수록 희미해졌다. 되돌아가기는 아쉬워 계속 앞으로 나갔다. 엉켜 있는 수풀들이 길을 메우고 땅은 기울어져 있어 미끄러지기 일쑤다. 미끄러져도 붙잡을 나뭇가지 하나 없이 온통 가시넝쿨뿐이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는 물소리 때문이었다. 흐르는 물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 거의 다 왔다고 생각했으나, 이는 착각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조용한 산속에서 물소리는 크게 울려 퍼진다. 미끄러져가며 아슬아슬한 고비를 수차례 겪고 난 후, 결국 도착한 곳에는 시냇물만 졸졸 흐르고 있었다.

블루마운틴에서 밤하늘 별의 움직임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렇게 소박한 시냇물인데도, 그 물 소리는 큰 계곡물처럼 울려퍼졌다. 큰 협곡으로 둘러싸여 있어도 이 작은 시냇물은 아랑곳하지 않고 흐른다. 이 작은 시냇물까지 오며 흘린 땀을 식히려고 손을 담그는 순간, 어린 시절로 되돌아갔다. 어릴 적 강원도 산골의 시냇물에서 놀던 때, 그 시원하고 차갑던 물이 생각났다. 작은 시냇물은 아무 죄가 없다. 나의 지나친 상상력이 문제였거나, 입구 표지판의 표현이 과했던 것뿐이다. 발목이 겨우 잠기는 물이지만 그래도 발을 담그고 돌 위에 앉았다. 수풀 사이로 보이는 작은 하늘과 거대하게 보이는 산으로 둘러싸인 곳이다. 하지만 오래 버틸 수는 없었다. 달려드는 모기떼들에게 속수무책으로 피를 내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험난한 길로 오른다. 계단길이 보일 때쯤 다리에 힘이 풀렸다. 정말 하이킹을 했나 보다. 계단에 앉아 잠깐 쉰다. 저 아래로 보이는 것들이 아득하게 멀기만 하다. 내가 내려갔던 곳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밤마다 찾는 테라스에는 별빛들이 쏟아져 내린다. 이 별빛 가득한 밤하늘을 카메라에 담아 보고 싶었다. 장비도 없는데 무턱대고 찍기 시작했다. 리모컨도, 삼각대도 없었지만 별의별 도구를 다 사용해 셔터를 눌렀다. 휴지에 테이프를 붙여서 셔터를 눌러놨더니 그럭저럭 버텨준다. 자동 셔터처럼 몇 분 이상이 지나면 알아서 끝이 난다. 짧은 궤적이나마 촬영을 했다. 별이 움직이는 게 아니라, 우리가 그 시간만큼 움직인다는 자전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우리의 움직임을 별의 움직임처럼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산 위에서 보는 별은 친근하게 느껴진다. 가까워서 그런지, 밝아서 그런지, 쏟아질 듯 많아서 그런지는 모르겠다. 한참 시간이 지나니 별이 많이 이동했다. 지구가 그만큼 움직였다는 뜻이다. 우리 중심으로 생각하지만 않는다면, 별이 고정돼 보인다. 별 하나를 마음에 새겨 넣고 잠이 들었다.

누구나 여행을 좋아하진 않는다. 한때는 모든 사람들이 여행을 꿈꾼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아마도 여행을 가기 위한 자기 합리화였을 것이다. 여행을 꿈꾸지 않더라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여행에서 겪는 다양한 일들을 스트레스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경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있는데, 사람도 마찬가지다. 긍정과 부정이 결국 상쇄될 때도 있다. 시냇물로 내려가는 일은 힘들었지만, 그 시원한 물이 힘들었던 시간을 없애줬던 것과 같다. 산에 올라갈 때는 힘들지만, 그 산 위에서는 올라올 때의 힘든 일들을 보상받는다. 사람 관계도 비슷하다. 그 사람의 장점이 다른 단점을 상쇄시켜준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여행에서의 힘든 일들이 스트레스로 다가오지도 않는다. 모든 상황들이 여행을 심심하지 않게 만들어준다. 블루마운틴에서도 뜻하지 않았던 일들이 많았다. 이곳은 조용히 쉬기에도 좋고, 여러 일들을 하기에도 좋은 곳이다. 블루마운틴을 떠나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다는 것은 자메이카를 떠나야 한다는 의미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초록, 노랑, 빨간색은 자메이카를 상징한다.
자메이카는 아프리카 흑인들이 노예로 끌려와서 독립을 이룬 나라다. 자유에 대한 갈망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평화를 사랑하고, 레게라는 음악이 나오게 됐다.

‘야만’이라는 단어가 요즘은 한국 TV에서도 들려온다. ‘야만’은 영어 ‘Yes, man’에서 나온 말로 영어와 아프리카어가 공존되는 단적인 예다. ‘야만’은 기분 좋을 때 쓰는 말이다. 자메이카 사람들의 대화에서는 어디에서든 많이 들려온다. 나도 어느새 ‘야만’을 쓰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노란색, 초록색, 빨간색이 눈에 띈다. 이런 짧은 말로 자메이카를 다 표현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작은 부분이나마 들여다봤다.

숙소 주인 아저씨는 나에게 돈을 받지 않는다. 실제 돈 관리를 하는 사람은 매니저다. 주인 아저씨는 돈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자유인처럼 돌아다니며 아침에는 사람들에게 커피를 나눠준다. 떠나기로 한 날에는 모두에게 인사를 하고 차를 불렀다. 독일인 친구가 같이 가줬다. 그는 시내에 볼일이 있어서 내려가는 길에 공항까지 배웅을 해줬다. 짐도 옮겨주고 인사를 해줬다. 항상 혼자 가던 공항에서 누군가가 잘 가라는 인사를 해주니, 감회가 새로웠다. 

다시 도미니카공화국으로 돌아가려면 미국을 거쳐야만 했다. 직항이 없어서 미국을 거쳐서 도미니카공화국으로 갔다. 미국 공항에서 자메이카에서 온 나는 줄도 따로 서야 했다. 까다로운 짐 검사에 따른 대기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시간을 넉넉히 잡아 비행기표를 예매해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비행기를 놓칠 수도 있다. 도미니카공화국으로 다시 들어가는 길이 쉽지는 않지만, 결국에는 도착하게 마련이다.

강주미 여행작가 grimi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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