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자취가 있으니 걸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길은 점점 갈수록 희미해졌다. 되돌아가기는 아쉬워 계속 앞으로 나갔다. 엉켜 있는 수풀들이 길을 메우고 땅은 기울어져 있어 미끄러지기 일쑤다. 미끄러져도 붙잡을 나뭇가지 하나 없이 온통 가시넝쿨뿐이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는 물소리 때문이었다. 흐르는 물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 거의 다 왔다고 생각했으나, 이는 착각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조용한 산속에서 물소리는 크게 울려 퍼진다. 미끄러져가며 아슬아슬한 고비를 수차례 겪고 난 후, 결국 도착한 곳에는 시냇물만 졸졸 흐르고 있었다.
블루마운틴에서 밤하늘 별의 움직임을 카메라에 담았다. |
밤마다 찾는 테라스에는 별빛들이 쏟아져 내린다. 이 별빛 가득한 밤하늘을 카메라에 담아 보고 싶었다. 장비도 없는데 무턱대고 찍기 시작했다. 리모컨도, 삼각대도 없었지만 별의별 도구를 다 사용해 셔터를 눌렀다. 휴지에 테이프를 붙여서 셔터를 눌러놨더니 그럭저럭 버텨준다. 자동 셔터처럼 몇 분 이상이 지나면 알아서 끝이 난다. 짧은 궤적이나마 촬영을 했다. 별이 움직이는 게 아니라, 우리가 그 시간만큼 움직인다는 자전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우리의 움직임을 별의 움직임처럼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산 위에서 보는 별은 친근하게 느껴진다. 가까워서 그런지, 밝아서 그런지, 쏟아질 듯 많아서 그런지는 모르겠다. 한참 시간이 지나니 별이 많이 이동했다. 지구가 그만큼 움직였다는 뜻이다. 우리 중심으로 생각하지만 않는다면, 별이 고정돼 보인다. 별 하나를 마음에 새겨 넣고 잠이 들었다.
누구나 여행을 좋아하진 않는다. 한때는 모든 사람들이 여행을 꿈꾼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아마도 여행을 가기 위한 자기 합리화였을 것이다. 여행을 꿈꾸지 않더라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여행에서 겪는 다양한 일들을 스트레스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경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있는데, 사람도 마찬가지다. 긍정과 부정이 결국 상쇄될 때도 있다. 시냇물로 내려가는 일은 힘들었지만, 그 시원한 물이 힘들었던 시간을 없애줬던 것과 같다. 산에 올라갈 때는 힘들지만, 그 산 위에서는 올라올 때의 힘든 일들을 보상받는다. 사람 관계도 비슷하다. 그 사람의 장점이 다른 단점을 상쇄시켜준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여행에서의 힘든 일들이 스트레스로 다가오지도 않는다. 모든 상황들이 여행을 심심하지 않게 만들어준다. 블루마운틴에서도 뜻하지 않았던 일들이 많았다. 이곳은 조용히 쉬기에도 좋고, 여러 일들을 하기에도 좋은 곳이다. 블루마운틴을 떠나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다는 것은 자메이카를 떠나야 한다는 의미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초록, 노랑, 빨간색은 자메이카를 상징한다. |
‘야만’이라는 단어가 요즘은 한국 TV에서도 들려온다. ‘야만’은 영어 ‘Yes, man’에서 나온 말로 영어와 아프리카어가 공존되는 단적인 예다. ‘야만’은 기분 좋을 때 쓰는 말이다. 자메이카 사람들의 대화에서는 어디에서든 많이 들려온다. 나도 어느새 ‘야만’을 쓰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노란색, 초록색, 빨간색이 눈에 띈다. 이런 짧은 말로 자메이카를 다 표현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작은 부분이나마 들여다봤다.
숙소 주인 아저씨는 나에게 돈을 받지 않는다. 실제 돈 관리를 하는 사람은 매니저다. 주인 아저씨는 돈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자유인처럼 돌아다니며 아침에는 사람들에게 커피를 나눠준다. 떠나기로 한 날에는 모두에게 인사를 하고 차를 불렀다. 독일인 친구가 같이 가줬다. 그는 시내에 볼일이 있어서 내려가는 길에 공항까지 배웅을 해줬다. 짐도 옮겨주고 인사를 해줬다. 항상 혼자 가던 공항에서 누군가가 잘 가라는 인사를 해주니, 감회가 새로웠다.
강주미 여행작가 grimi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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