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나랏돈으로 연구해 장롱특허만…성과 형편 없어"

관련이슈 세계초대석

입력 : 2014-07-16 06:00:00 수정 : 2014-07-16 09:06:59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세계초대석] 박희재 산업부 R&D전략기획단장
박희재(55·사진) 산업통상자원부 연구·개발(R&D) 전략기획단장은 국가 산업기술 R&D의 비효율성이 연구자끼리의 ‘그들만의 리그’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한다. 국가 재정으로 조성된 R&D 자금을 지원받은 정부 출연연구소(출연연)의 연구원과 대학 교수들이 시장과 괴리된 채 논문 실적 쌓기에 열을 올리거나 기업은 거들떠도 안 보는 ‘장롱’ 특허를 생산하는 데 치중했다는 것이 박 단장의 지적이다. 그는 15일 “우리나라 국가 R&D 규모는 17조원을 넘어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로는 세계 1, 2등을 다투지만 그 성과는 형편없다”며 “엄청나게 많은 기술이 R&D를 통해 개발됐지만 상당수는 사업화로 연결되지 못한 폐단이 10여년 계속됐다”고 밝혔다. 사업화를 담당하는 기업이 국가 R&D 전략에서 상당부분 배제된 것이 이런 폐단을 불렀다는 게 박 단장의 설명이다. 그는 다른 요인으로 기업가 정신의 부재를 꼽았다. 정부의 R&D 지원으로 원천기술을 확보한 연구자가 직접 기업을 세워 이를 사업화하는 도전을 꺼린다고 개탄했다. 박 단장은 “똑똑한 젊은이일수록 도전하려 들지 않더라”며 “창조경제 시대의 최고 화두는 기업가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국가 R&D가 사업화에 이르는 성과가 저조하다는 지적이 빗발친다.


“그동안 정부는 보릿고개에도 허리띠를 졸라매 아이에게 등록금을 줘 대학을 보내는 심정으로 R&D에 투자하고 기대를 키웠다. 그러나 그런 R&D 전략에는 커다란 미스매치가 있었다. 제일 중요한 현장 즉, 시장과 기업을 소홀히 한 것이다. 그래서 R&D를 지원받은 출연연과 대학 교수 ‘그들만의 세상’이 됐다. 이들은 실제 물건을 만들어 시장에 나가 팔아본 경험이 없다. 시장이 어떻게 변하는지, 그래서 어떤 물건을 개발해 시장에 내놔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의지조차 없고, 동기 부여조차 안 됐다는 게 더 큰 문제이다. 그렇기에 ‘이 기술이면 될 것 같다’, ‘좋은 기술인 것 같다’ 하는 감으로, 즉 기술 위주로 R&D를 기획하고 집행했다. 이게 한국 R&D 인프라의 현주소이다. 그러니 사업화를 담당할 기업, 그 제품이 출시될 시장과는 유리·괴리될 수밖에 없었다.”

―국가 R&D 연구자들이 사업화에 소홀했던 이유가 궁금하다.

“지난 10여년 대학과 출연연에 불었던 소위 ‘논문 열풍’도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그 이전만 하더라도 대학이나 출연연에서 산학협력을 하면 기업체와 연계한 활동이 인정받는 인프라가 가동됐다. 그러다 논문 열풍으로 현장과 괴리됐는데, 기업과 가까운 공대조차 산업체와의 연계, 협력, 기술 사업화의 연결고리가 모두 붕괴했다. 이런 추세가 10년 정도 더 지속되면 대학과 출연연에서 산학협력을 얘기하고 산업체와 같이 활동하는 이들은 씨가 마를 것이다. 심각한 폐단으로 당장 치유되지 않으면 안 된다.

―해결책은 마련됐나.

“독일의 프라운호퍼 연구소를 비롯한 유럽의 강력한 산학협동을 해법으로 꼽을 수 있다. 유럽에 경쟁력이 탄탄한 강소기업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유럽 각국의 정책도 오랜 기간 국가 R&D에서 관련 기업과의 연계를 가장 중요하게 평가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유럽은 다른 나라와 어떤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함께 진행하고자 할 때도 기업의 이해와 참여를 가장 먼저 따진다. 현장과 시장, 기업에서 R&D 방향이 정해져 산학협력에 자금이 지원되는 구조이다. 산학협력 중심의 R&D는 유럽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다 그렇게 하고 있다. 우리도 이 방향으로 가야 한다. 진작 바꿨어야 했다. 이제 전환점은 마련됐다. 전략기획단은 산학협력 활성화, 공대 혁신, 기술 사업화를 위한 중소기업 중심 R&D에 중점을 두고 사업을 기획하고 있다.”

―프라운호퍼 연구소는 탄탄한 산학협력을 통해 글로벌 강소기업을 1000개를 육성했다고 한다. 한국 출연연의 현실은 어떤가.


“독일 인구와 경제규모는 우리보다 훨씬 크지만, 프라운호퍼 연구소 인력은 2만명으로 3만명인 우리 출연연에 미치지 못한다. 중소·중견기업의 제품을 세계시장에 올려놓을 수 있도록 경쟁력을 불어넣어 줄 R&D 인력은 대학과 출연연에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글로벌 강소기업 배출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기업과 유리된 채 사업화 연구에서 뒤지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부가 관리하는 국가 R&D 재정 17조원의 30% 정도가 출연연에 들어간다. 말이 R&D 자금이지 3만명을 먹여 살리는 인건비로 전락했다. 이렇게 먹고 살면서 SCI(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급 논문을 작성해 국제대회에 나가 발표한답시고 폼만 잰다. 장롱 특허나 만들면서 틈만 나면 대학으로 옮길 생각만 하고 있으니 심각성을 더한다.”

―중소·중견기업의 R&D 현실은 어떤가.

“중소·중견기업은 국가 R&D의 지원이 절실하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83%가 단 1달러도 수출을 안 해본 게 현실이다. 대부분 내수에 의존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중소기업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국제적으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R&D 인력이 부족해 세계시장에 진출하고 싶어도, 아니 진출해야 하는데도 못하고 있다. 이공계 석·박사 인력의 3% 정도만 중소기업에 있으니 사실 세계화를 얘기할 수준이 아니다. 반대로 말하면 중소기업 제품에 세계적인 경쟁력을 심어주고, 세계무대 진출을 할 수 있는 역량만 지원해주면 도약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이게 바로 전략기획단이 추진하는 글로벌 전문기업·강소기업 육성정책의 핵심이다. 원천기술이 있고,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기업에 세계적인 경쟁력이 있는 대학과 출연연의 R&D 인력을 붙여 팀워크를 꾸리고 성장을 지원하는 게 골자이다. 세계 1등의 ‘메이드인 코리아’ 제품을 확대하는 전략도 글로벌 강소기업인 ‘히든 챔피언’을 육성하는 길과 맞물려 있다. 중소·중견기업이 직접 국가 R&D 지원을 받아 세계 1등 상품을 만드는 기틀도 마련할 작정이다.”

―기업가 정신의 쇠퇴도 글로벌 강소기업 출현의 발목을 잡고 있다.

“국가적으로 보면 취업보다 창업이 먼저인데도 기업가 정신을 가진 이들이 우리 사회에서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특히 지난 10년 새 두드러졌다. 서울대 공대 기계공학부 교수로 21년째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쳐 보니 똑똑할수록 안일함만 추구하더라. 유능하고 실력 있는 우리 사회 리더들이 창업에 나설 수 있도록 이를 고취하는 ‘국민정신 대개조운동’이라도 벌이고 싶은 심정이다. 4년제 대학 졸업자가 해마다 60만명에 달한다. 그런데 공기업, 대기업, 고시, 은행권의 신규 일자리는 2만개이다. 취업하려면 어떻게 해서든 2만등에 들어야 한다. 그러니 경쟁률이 툭하면 100대 1씩 나온다. 2만개 자리를 놓고 경쟁할 게 아니라 나머지 58만개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대학 수업도, 교수도 바뀌어야 한다. 공대를 졸업한 학생이라면 논문만 쓸 게 아니라 간단한 물건이라도 손과 머리를 써서 만들 줄 알아야 한다. 또 그것을 팔아보고, 부족한 점을 다시 연구하면서 디자인도 할 줄 알아야 한다. 대학에서 이런 것들을 가르쳐야 한다. 훌륭한 능력을 지닌 대학교수도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 창업에 적극 나서야 한다.”

―1998년 반도체와 LCD(액정표시장치) 제조 장비 전문업체인 SNU프리시전을 창업해 대표이사 겸 이사회 의장으로 연매출 1000억원이 넘는 코스닥 상장사로 키웠다. 기업 경영에 어려움은 없나.

“창업을 통해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인을 최고 애국자로 대우하는 방향으로 정책은 물론이고 사회 분위기도 바뀌어야 한다. 특히 정치권은 기업가 정신을 말살시키는 대표적인 규제법령인 대표이사 양벌규정을 살펴 굳이 필요한지 따져보고, 국가 안보나 재난에 해당하는 사안이 아니면 빼줬으면 한다. 공장에서 겨울철 물이 흘러나와 주변 도로가 얼게 된 일이 있었는데 대표이사 양벌규정에 해당된다고 해 현장에 출두하느라 휴강까지 한 일이 있다. 툭하면 양벌규정이라고 해 기업인을 옥죄니 동네북 신세가 따로 없다.”

대담=최현태 산업부장, 정리=황계식, 사진=이제원 기자 cult@segye.com

◆ 박희재 단장은… ▲1961년 경기 김포 출생 ▲우신고 ▲서울대 기계설계학과 학·석사 ▲영국 맨체스터대 기계공학 박사 ▲포항공대 산업공학과 조교수 ▲서울대 공과대 기계항공학부 교수 ▲SNU프리시젼 대표이사 ▲한국생산성본부 전문위원 ▲서울대 산학연 연구센터장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 이사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장비협회 부회장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이사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아일릿 이로하 '매력적인 미소'
  • 아일릿 민주 '귀여운 토끼상'
  • 임수향 '시크한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