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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의청심청담] 폭력문화, 예절과 예술로 순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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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7-14 21:33:50 수정 : 2014-07-14 21:3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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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량적 실적주의 부작용만 초래
시대에 맞는 예의규범 만들어져야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행동양식은 음지 조폭들의 그것을 모방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힘 있는 강자나 상사에게는 절대복종을 하고 힘없는 약자나 부하에게는 역으로 절대복종을 강요하는 그런 분위기이다. 보스에게 절대 복종하고 충성경쟁을 하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오늘날 한국사회의 모습이다.

보통 제대로 된 사회, 안정된 사회는 하급문화가 상급문화를 흉내 내거나 본받으려고 하는데 우리 사회는 거꾸로 되어버렸다.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계급과 지위가 있고 보면 그 나름 상하 간의 예절과 태도가 있게 마련이다. 여기에는 직업적 특성과 오랜 관행에 따른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온통 깡패사회가 되어버렸다.

한때 ‘가문의 영광’ 시리즈가 우리 영화시장을 주름잡았고, 우리 모두는 그 풍자에 잠시 배꼽을 잡곤 했다. 그것을 모방하는 작품도 줄을 이었다. 역시 영화예술가들의 감각이 발 빠른 대처를 한 셈이다.

한국사회의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폭력성이 잠재되어 있다. 그 폭력성이 은연중에 수면 위로 드러나는 것이다. 위로는 행정부, 국회, 법원, 기업체, 대학, 병원, 어느 곳 할 것 없이 그 폭력성에 시달리고 있다. 고도성장에 따른 부작용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면 그만이라는 사고방식이 만연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자본주의는 천민자본주의가 되었고, 사회는 조폭사회가 되었다.

한때 군대문화가 상의하달, 수직문화의 전형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었지만 그보다 못한 조폭문화가 자리하고 말았다. 조폭문화는 겉으로 보기엔 군대문화와 비슷하지만 그들에게는 국가관도 없고, 반사회적인 무질서와 폭력과 불법을 일삼는, 나쁜 목적을 위한 효율의 극대화가 있을 뿐이다.

며칠 전 서울의 모 종합대학 교수인 친구를 만났다. 그가 만나자마자 내뱉은 말이 “이제 교수도 못해 먹겠어. 마치 총장이 뒷골목 깡패사회의 보스나 되고 교수는 그 부하처럼 되어버렸어. 너도나도 총장이나 보직교수에게 잘 보이려 하고, 연구는 뒷전이지. 특히 인문학과 기초학문은 망해버렸어. 정부의 인문사회대학 연구비 지원과 지방대학 특성화 지원 정책 때문에 도리어 대학교가 망하게 생겼어. 요즘 연구비 못 타는 교수는 얼굴 들고 다닐 수 없는 지경이야. 교수들도 연구비를 주지 않으면 연구를 안 하는 분위기이고….”

대학교수나 연구소 연구원을 상대로 하는 계량적 실적주의는 연구풍토 조성과 창의력을 높이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도입한 경쟁체제였지만 부작용만 남기고 있는 것이 오늘의 한국사회이다. 한 사회의 창조적 분위기와 창조문화의 달성은 자연스럽게 달성되는 것이지, 억지로 끌어당기면 그 부작용만 생기는 법이다.

재벌사회도 보면 돈의 위력으로 빌딩은 크게 짓고 사무실은 으리으리하게 치장하지만, 정작 재벌총수와 그 아래 간부 및 직원의 관계는 마치 조폭들의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목표 지향의 분위기와 함께 상하관계의 심한 경쟁과 스트레스, 조기퇴출의 억압적 분위기 속에서 저도 모르게 폭력적 요구와 노예적 비굴로 조폭사회를 닮아가고 있다. 하기야 재벌를 흉내 내는 기업조폭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일류 재벌들도 해외활동에 따른 견문도 있어서 겉으로는 품위와 행세는 있어 보이지만 실은 자신 있는 스스로의 예의규범이 없어 우왕좌왕하면서 선진국 흉내 내기에 급급하다. 흉내도 제대로 내면 좋지만 몸에 맞지 않는 까닭에 어색함만 드러난다.

예(禮)의 기본인 겸손과 상대방에 대한 존경과 배려, 낯선 사람과 시선이 마주치면 인사하기 등 아주 기본적인 것도 지켜지지 않는 나라이다. 곳곳에 무례와 오만과 권세와 힘자랑과 돈 자랑, 아니면 그 반대의 비굴과 아첨과 노예근성과 언어폭력이 만연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는 아직 제대로 근대국가에도 들어가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박정진 객원논설위원·문화평론가
이웃나라인 일본은 예의가 너무 형식적이어서 문제가 된다고 하지만, 그들은 적어도 남에게 폐를 끼치거나 손해를 주거나 무질서하지는 않다. 동방예의지국의 면모를 다시 찾아야 할 것이다.

한국의 예절이 국제사회의 수준으로 격상되지 않으면 우리 사회가 경제적 부를 축적하고 돈의 쓰임새를 늘린다고 해도 그만큼 대접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예절이 반드시 특정 선진국의 예절을 닮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저 나름대로 예절을 지키면 다른 나라들도 그 예절을 준수하게 되는 것이 상례이기 때문이다. 

가난에 시달려온 우리 사회는 경제력 있는 사회, 힘 있는 사회 건설을 위하여 지난 60여 년간 매진해왔다. 그런데 그러는 사이에 우리의 미풍양속은 온데간데없어졌고, 시대에 맞는 예절과 규범을 만들어 왔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경제제일주의에 밀려 미처 손을 쓰지 못하는 사이에 가장 비천한 조폭사회의 예가 거꾸로 오염되고 말았다. 예절의 하향평준화이다. 우리 사회는 흔히 평등은 평준화로 오해한다. 평준화를 하다 보니 저절로 하향평준화가 되어버렸다.

한 사회가 크게 변화하면 그 사회에 걸맞은 법체계를 마련하고 이어서 예의규범이 만들어져야 한다. 법으로만 사회를 운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조선조의 경우도 경국대전이 만들어지고 주자가례가 나라에 맞게 개량되면서 사회가 안정되었다.

크게 보면 우리 사회는 근대국가 수립 후, 아직 법체계도 우리 실정에 맞게 정비하지 못한 데다 예의범절도 집대성하지 못했다. 예절에 관한 한 우리 사회는 야만의 사회이다. 각급 사회는 저마다 자연스럽고 품위 있는 나름의 예절로 승화되어야 한다. 또 사회 전체가 예술에 대한 감각과 분위기를 키워야 저절로 순화될 것이다. 우리 시대의 예(禮)와 예(藝)가 아쉽다.

박정진 객원논설위원·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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