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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수단서 날 선 흉기로…도넘은 청소년 언어폭력

입력 : 2014-07-10 18:54:35 수정 : 2014-07-11 11:2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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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저주에 외모·부모 비하까지 비일비재
전문가들 “상처 깊고 평생 고통”, 언어 문화 환경개선대책 시급
# 초등학교 6학년 김모(13)군은 지난 6개월 동안 이모(13)군 등 동급생 3명에게서 ‘관심종자’라는 비아냥과 욕을 들었다. 김군은 자존심이 상했지만 혼자 당해낼 수 없어 속으로 끙끙 앓았다. 그러다 괴로움을 잠시나마 잊으려고 온라인 게임에 손댔다가 지금은 중독 수준이다. 김군은 “매일 학교에 가는 게 지옥 같다”고 토로했다. 

# 중학교 3학년 박모(16)군은 불안장애에 시달리고 있다. 한때 같은 반이었던 최모(16)군 때문이다. 최군은 올해 1학기 초 ‘미운 놈 때리기 게임’이라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에 박군 사진을 합성했다. 이후 쉬는 시간마다 박군에게 와서 “직접 못 때리니 이렇게라도 때리고 싶다”며 약을 올렸다. 최군은 최근 전학조치를 당한 뒤에도 동네에서 박군을 만나면 “나대지 말라”고 위협하거나 문자메시지로 ‘정신병자’ 등의 욕설을 날렸다. 급기야 박군은 ‘약물·상담치료가 필요하다’는 의사 소견까지 받았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엄두를 못내고 있다. 

소통의 주요 수단인 언어가 청소년들 사이에서 무서운 ‘흉기’로 변해가고 있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동급생들에게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이나 저주를 퍼붓는가 하면, 상대의 외모나 부모까지 비하하며 가슴에 비수를 꽂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언어폭력은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의 인격을 파멸시키고, 그 후유증이 오래간다는 점에서 청소년들의 언어문화환경 개선대책 등 다각적인 노력이 시급하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청예단)은 지난해 전국 초·중·고생 615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학교폭력 실태 조사에서 6.1%(약 370명)가 ‘재학 중 1회 이상 학교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고 10일 밝혔다.

피해 유형(중복응답)을 보면 ‘욕설이나 모욕적인 말을 들었다’(27.3%)와 ‘사이버 폭력을 당했다’(14.2%), ‘말로 협박이나 위협을 당했다’(10.8%) 등 언어폭력과 관련된 내용이 52.3%로 절반을 넘었다. 이어 집단따돌림(13.7%)과 폭행(13.3%), 괴롭힘(12.9%), 금품 갈취(6.4%), 성희롱·성추행(4.1%) 순이었다. 

청예단 김은지 팀장은 “물리적인 신체폭력이 줄어드는 반면에 지속적인 욕설과 협박, 따돌림 등 뚜렷한 증거가 남지 않는 폭력이 증가하는 추세”라며 “위 사례처럼 언어적·심리적 폭력에 시달리다 못해 고통과 해결책을 호소하는 상담문의가 많다”고 전했다.

친구의 외모나 가정환경까지 걸고넘어지며 차별적인 언사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2012년 말 초·중·고생 1941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친구들 간 키나 몸무게, 신체부위 장애 등 외모를 이유로 차별·편견의 말을 들은 적 있냐’는 물음에 응답자 10명 중 3명 꼴(34.7%)로 ‘그렇다’고 답했다.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는 응답률도 31.1%나 됐다. 또 “너희 집은 그것도 없냐”거나 “부모님이 (기껏) 그런 일을 하시냐”는 식의 가정환경 비하 발언을 들었다는 비율도 5.9%였다.

전문가들은 지속적인 언어폭력에 노출된 학생들은 그 상처가 깊고 오래가서 평생 고통을 겪을 수 있는 만큼 무엇보다 학부모의 관심과 조속한 대처가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김 팀장은 “자녀가 언어폭력 등을 당하면 즉각 부모에게 알리고 도움을 청하도록 평소 자녀와 밀착관계를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며 “또 부모가 사태 해결에 섣불리 나서기보다 공신력 있는 상담기관이나 청소년기관 등을 통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언어문화교육개발원 김수연 부장은 “전반적으로 우리 사회의 언어 사용 오염도가 심각한 상황인 데다 스마트폰 확산 등으로 청소년 사이에서 언어폭력은 물론 비속어와 은어가 남발하고 있다”며 “바른 언어 사용 문화 정착을 위해 정부와 지역사회, 학교 등이 동참하는 대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강은 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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