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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것의 느낌 주는 작품에 자석처럼 끌려요”

입력 : 2014-07-10 21:32:56 수정 : 2014-07-10 21:3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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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의 얼굴’ 배우 이은우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내가 정말 나다워질 수 있는지 아는 것이다. -몽테뉴 ‘수상록’-.’

 배우 이은우(사진)의 휴대폰 바탕에 뜨는 구절이다. 아침에 눈 뜨면 제일 먼저 이 글귀를 읽는다.

 “제가 저를 잘 지키고 키워나가야 연기도 잘할 수 있을 테고, 제가 온전히 서야 배우로서 바르게 살 수 있는 거죠.”

 김기덕 감독의 화제작 ‘뫼비우스’로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대어급 신인’의 출현을 세상에 알린 이은우는 그러나 단번에 떠서 화려한 인기부터 누리기보다는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배우를 택했다. 영화제에 다녀온 이후로 그는 결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칩거하며 ‘과연 이 길이 내 길이 맞는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난 어떤 사람인가부터 생각해 봤어요. 뭘 바라는지, 나중에 제가 교만해지지 않으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우란 게 단순한 직업이 아니잖아요. 연기를 계속할지 말아야 할지…고스톱으로 치자면 ‘고’냐 ‘스톱’이냐 였던거죠.”

 ‘파격’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니던 영화 속 그 강렬한 인물과는 달리 앙증맞도록 수줍게 웃거나 우스개 소리도 곧잘 한다. 하지만 전체적인 이미지는 신중하고 조심스러우며 얌전하다.

 “사실 ‘TV방자전’ 때 주변의 기대만큼 해내지 못했거든요. 쓴 약이 되었죠. 얼마나 마음이 아팠던지, 방영이 끝난 뒤에도 대본 봐가며 혼자 다시 공부했어요. ‘동물의 왕국’에서 보던, 죽은 새끼를 보내지 못하고 안고 있는 어미처럼 ….”

 ‘뫼비우스’를 만나기까지 마음고생하며 그야말로 와신상담했다.

 “지금도 틈만 나면 집에서 TV로 영화를 보며 배우들의 대사를 따라 쳐요. 집에서는 남 눈치 볼 것 없으니 거침없이 악도 써가면서…”

 순발력도 좋다. ‘영화배우로서’ 재치 있는 한마디를 잊지 않는다. “물론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죠.”

 그는 자신을 깨끗이 잊고 극중 배역에 완전히 몰입해야만 비로소 좋은 연기를 건져낼 수 있는 역할을 선호한다. 걷잡을 수 없이 광적이거나 비일상적인 인물에 자석처럼 끌린다.

 “‘뫼비우스’는 시나리오를 읽을 때 ‘날것의 느낌’이 몹시 강했는데, 싱싱한 그 느낌이 저를 붙잡았어요. 그런 점이 저와 맞아요. 연기를 설사 그만둔다해도 마지막 작품으로 간직하기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을만큼…. 세월이 지나고도 제 스스로에게 자랑스러운 작품으로 남을 것 같았거든요.”

 ‘뫼비우스’에서 그는 1인 2역을 맡았다. 극중 아들(서영주)의 엄마이자, 남편(조재현)과 아들 모두와 인연을 맺는 가게 여자로 나온다.

 “가게집 여자 역으로 촬영할 때는 나이 차이가 한참 아래인 영주를 보고도 설렜는데, 엄마 역일 때는 같은 영주인데도 완전히 다른 감정을 느끼는 저를 보면서, 제 스스로도 놀랐어요.… 영화 속에서 내 사랑하는 아들이 ‘남성성’을 갖는 게 너무 슬펐죠. 카메라가 다가올 때 슬픈 감정이 더 크게 밀려들더라구요.”

 이은우야말로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다. 조금만 표정을 바꿔도 얼굴에서 묻어나는 느낌이 확연히 달라진다. ‘뫼비우스’를 보는 내내 대부분의 관객들이 그가 1인 2역을 한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다는 점이 이를 입증한다.

 “영화가 개봉한 뒤에도 아르바이트하던 커피숍에 그대로 출근해 일했는데, 영화를 본 손님들조차 못 알아 보시더라구요. 제가 그렇게 달라보이나요?”

 일상적인 연기보다는 극한의 감정으로 몰아가는 ‘센’ 연기가 잘 어울린다고들 한다. 하지만 이제는 ‘뫼비우스’에서 놓아달란다.

 “저는 이미 떠났는데, 관객들이 아직도 붙잡고 있는 거 같아요. 이젠 ‘뫼비우스’ 속의 여자가 아니라 색이 입혀지지 않은 배우 이은우를 지켜봐 주세요.”

 그는 올해 장률 감독의 ‘경주’와 박정범 감독의 ‘산다’에 조심스레 얼굴을 내밀었다. 분량을 따지지 않고 감독이든 시나리오든 마음이 내키는 영화를 골랐다. 최근 개봉한 ‘경주’에서는 남편을 잃은 부인 역할로 장례식장에서 조문객을 맞는다. 2시간30분짜리 긴 영화에서 이은우는 짧게 두 번 나오지만, 그 특유의 ‘묘한 매력’을 발산하며 ‘어떤 여자일까’라는 상상을 펼치게 만든다. 관객은 보는 내내 이은우가 여주인공을 맡아 극을 끌어간다면 어떤 느낌일까, 어떻게 달라질까라는 생각을 지우지 못한다.

 검은 소복 차림의 여인(이은우)은 조문하러 온 남편 친구에 의해 ‘남편 잡아먹은 요부’로 그려진다.

 “야, 아까 절할 때 봤지? 저 깊은 눈 좀 봐라. …죽은 창희가 재혼한 뒤로 3년 동안 방에서 못 나왔다는거 아니냐. 친구들인 우리들과도 연락을 끊다시피하고…흐흐.”

 주인공 최현(박해일)에게는 선배의 부인이다. 최현의 환상 신에서 그녀는 남편의 자살에 대해 설명한다.

 “고승들이 입적할 날을 스스로 정하듯, …그이 몸은 세상에 있었지만 마음은 이미 떠나 있었던 거예요. 이해하시죠?”

 별다를 것 없는 것 같은데도 이은우는 어느새 소복이 주는 섹시함과 숙연함을 스크린 위에 모두 풀어놓는다.

 “요즘은 맷집도 키우는 중이예요. 댓글에 상처받지 않으려면. 사람은 약하지만 강하게 만들어 주는 게 사랑과 희망이래요.”

 이은우는 그냥 바라볼 때보다 함께 말을 나눌 때 더 예쁜 표정들이 나온다. 인터뷰를 끝내니 그에게 흠뻑 취했다가 깨어나는 기분이다. 헤어지기 전 잠시만 기다리라더니 근처 편의점에서 바나나 두 개와 초콜릿 한 개를 들고와 건네주며 가는 차 안에서 요기하란다. 내 누이같이 정다운 모습도 흘끔 보인다.

글·사진=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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