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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신의 한 수’ 이범수 “무조건 나쁜 놈이고 싶었다”

입력 : 2014-07-10 10:31:39 수정 : 2014-07-11 10:2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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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극장가에서는 할리우드에서 온 로봇들을 가볍게 제치고 패권을 차지한 한국영화가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내기와 바둑, 바둑과 액션을 한 데 버무려 탄생한 상업 오락영화 ‘신의 한 수’(감독 조범구) 이야기다.

이 영화에서 ‘절대악’의 축을 담당한 배우 이범수는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재미있겠다고 한 느낌 이상의 작품이 나온 것 같아 기쁘다”며 소감을 밝혔다. VIP시사회에서 가족이나 지인들을 초청하는 게 즐거웠다는 그는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4개월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생각들, 그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보상 받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도 말했다.

‘신의 한 수’의 개봉을 앞두고 이범수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봤다. 연기경력 25년차 배우, 대학 교수(신한대 공연예술학과), 화가, 그리고 두 아이의 아빠까지. 그 많은 직업들을 다 소화해내는 에너지가 어디서 나오는지도 궁금했다.

올해로 데뷔 25년차. 코미디, 멜로, 액션 등 다양한 장르에서 묵묵히 연기자의 길을 걸어왔지만, 그에게도 ‘흥행’은 늘 갈망의 대상이었다. 배우가 흥행만을 위해 연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관객들에게 많이 보이고 인정받는 건 누구나 바라는 일일 터. 이에 이범수는 “이번엔 괜찮을 것 같다”며 기대감을 한껏 드러냈다. 그러면서 ‘악역 연기의 한 수’도 살짝 귀띔했다.

“스크린에 비친 제 모습이요? 맘에 들었어요. 촬영하면서 내내 ‘악역답게 나쁜 놈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 번도 떨치지 않았어요. 그건 연기를 잘했다, 못했다의 차원이 아니었어요. 제가 시나리오에서 느낀 살수의 느낌을 긴장감 있게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해야 한다는 게 일종의 스트레스였죠. 영화에서 악역은 ‘짝패’(감독 류승완, 2006) 이후 8년 만인데, ‘짝패’의 필호와 똑같다는 얘기는 안 듣고 싶었어요. 전혀 다른 느낌의 악역으로 참신하게 다가가야 했으니까…. 감독님과 상의도 많이 하고, 더 집중하며 연기했죠.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시고 ‘나쁜 놈’이라고 해주시면 칭찬 같아서 기분 좋을 것 같네요.”

이렇게 딱 맞는 옷을 입은 느낌인데 왜 이제야 다시 악역을 맡았느냐고 묻자, 그는 “사실 기회가 많지 않았다”며 웃어 보였다. 그러면서 악역과 궁합 하나는 잘 맞는 것 같다고 자평했다. ‘신의 한 수’는 이래저래 여러 컨디션들이 잘 맞았고, 처음에 좋았던 느낌을 끝까지 이어갈 수 있었던 꽤나 만족스러운 작품으로 기억하게 됐다.

사실, 이범수가 분한 살수는 정우성이 연기한 태석과 달리 ‘히스토리’가 따로 등장하지 않는 인물이다. 일종의 ‘신비주의’로 해석할 수도 있는데, 영화 속 유일한 ‘절대악’ 캐릭터를 완성시키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영화에 살수의 사연을 좀 담아보면 어떨까. 아마 감독님 외에도 많은 분들이 고민했을 거예요. 그런데 결국 ‘묘한 놈’ ‘속을 알 수 없는 놈’으로 가기로 했어요. 살수의 사연을 구구절절 담아버리면 자칫 통속적인 스토리로 변질되지 않을까 우려한 거죠. 저는 여기에 덧붙여 ‘불길한 놈’이고 싶었어요. 이 영화는 오락액션이지, 리얼리즘 드라마는 아니니까. 다소 과감하게 이미지를 포장해도 관객분들이 별 거부감 없이 받아줄 거란 믿음이 있었죠. 그런 의도가 잘 표현된 것 같나요?”

잠시의 망설임이나 흐트러짐 없이 자신의 원칙을 수행하는 인물이 바로 살수다. 무표정한 얼굴, 자신의 아우라만으로 상대를 단숨에 제압해버리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범수는 ‘전신 문신’을 한 채 전라 뒤태를 공개하는 열의까지 보였다. 한 치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는 살수의 잔혹함을 보여주기 위한 연기적 장치였다.

“전신 문신은 제 아이디어였어요. 아쉬운 건, 그 문신 때문에 제 근육이 보이지 않았다는 거죠.(웃음) 살수란 인물은 옷을 입었든, 벗었든 그냥 나빠 보이고 싶었으니까. 조금의 온기도 안 보였으면 했어요.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그냥 얼음처럼 차갑기만 한 인물. 문신은 그런 점에서 관객들에게 이질감과 혐오감을 안겨 줄 거라고 판단했죠. 무려 22시간이나 문신을 하고 있었는데 정말 힘들더라고요. 홍대 미대 출신의 타투전문가들이 한 땀, 한 담 정성들여 그려줬어요. 서양보다는 동양 느낌의 문신이었고, 야쿠자 느낌도 좀 났죠.”

다양한 캐릭터의 개성이 살아 숨쉬는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캐릭터 하나를 꼽아달라고 했다. 이범수는 주저 없이 ‘주님’ 안성기의 연기를 선택했다.

“안성기 선배님 연기, 한 마디로 부러웠어요. 눈을 뜨고 있는 시각장애인 역할인데, 그게 결코 쉽지 않거든요. 시사회 때 영화가 끝나고 나서 바로 안성기 선배님께 달려가서 너무 감명 깊게 봤다고 말씀드렸어요. 저도 기회가 된다면 그런 연기를 해보고 싶어요. ‘여인의 향기’에서 알 파치노 같은 역할도 좋을 것 같아요.”

이제 드디어 흥행에 대한 갈증을 조금 풀 수 있게 된 것일까. 그에게 연기자로서 산다는 것, 그리고 대중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에 대한 생각을 마지막으로 들어봤다.

“야생마는 달리고 싶은 게 본능이듯, 배우 역시 한 작품에서 자신이 가진 능력을 십분 발휘하고 싶어 하죠. 시청률이나 흥행이 부진했다면, 하나가 아니라 여러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그런 결과를 만든 것일 거예요. 제가 아쉬웠던 건, 캐릭터적으로 활동공간이 좀 좁지 않았나 하는 거예요. 그런 면에서 갑갑함을 느꼈던 터에 살수를 만났고 모처럼 넓은 공간에서 맘껏 연기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결과도 좋지 않았나 생각되고 더 기쁜 거죠.”

현화영 기자 hhy@segye.com
사진=김경호 기자 stillc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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