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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인맥·파벌…최고의 지성 곪아가고 있다

입력 : 2014-06-17 06:00:00 수정 : 2014-06-17 20: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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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우물'을 깨자] (중) 탈피해야 할 폐쇄성·순혈주의
‘서울대생이라는 게 부끄럽다.’ 지난해 성악과 교수채용 비리 의혹이 불거지자 서울대는 충격에 빠졌다. ‘1등 대학’에서 시작된 교수들 간의 파벌 싸움은 성추행 추문과 잇따른 고소전으로 비화됐다. 국악과 교수가 성악과 학과장을 맡는 사상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지만 파벌 싸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에는 미대에서 교수 채용 비리 의혹까지 불거졌다. 반복되는 교수 채용 비리를 두고 일각에서는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 나온다. 서울대의 폐쇄적인 구조와 불투명한 교수 채용 과정 등이 비리 의혹과 논란을 키웠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서울대의 이 같은 구조를 뿌리부터 바꾸지 않으면 제2, 제3의 성악과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서울대 개혁이 시급하다는 의미다.

◆‘서울대 중심주의’… 순혈주의 논란

교수 채용 비리의 이면에는 서울대의 순혈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자신의 제자나 후배만 뽑으려고 하는 폐쇄성이 파벌로 고착화한 것이다.

16일 김태원 새누리당 의원실에 따르면 2012년 기준 서울대의 전임교원 중 본교 출신 비율은 84.7%에 달한다. 39개 국립대 평균(31.9%)의 두 배가 훌쩍 넘는 수치다. 지난해 상반기 뽑은 교수 48명 중 서울대 출신은 36명이었다. 미국 등 해외 주요 대학이 본교 출신 비율을 10%대로 엄격히 제한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 같은 학벌 ‘동종교배’는 서울대의 고질적 병폐로 꼽힌다. 교수 채용에서 학연과 지연 등 ‘인맥’이 중요한 잣대로 작용하면서 내부 비판에 자유롭지 못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학문 경쟁력을 해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미대 산업디자인학과 김민수 교수가 논문에서 선배 교수들의 친일 행적을 언급했다가 재임용에서 탈락한 사례는 이를 방증한다. 이후 대법원은 복직 판결을 내렸지만, 미대 교수들은 그의 복직을 반대하며 단체로 사표를 쓰겠다고 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서울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A(32)씨는 “지금 재직 중인 교수들이 다른 교수 채용에도 관여를 하기 때문에 ‘줄’을 잘 서야 성공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채용 시 자신의 제자를 잘 봐줄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며 “학과 교수들의 연구를 비판하는 것은 어려운 분위기”라고 말했다.

서울대가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려면 이 같은 폐쇄적 순혈주의부터 깨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논란이 커지자 서울대는 최근 몇 년간 다른 대학 출신 교수 채용을 늘리고 있지만 여전히 미미하다. 본교 출신 교수 임용률은 2007년 90.9%에서 2010년 88%로 아주 조금 낮아졌고, 외국인 교원의 경우 2009년 2.7%에서 지난해 4.3%로 늘어나는 데 그쳤다.

서울대의 한 관계자는 “아무래도 국내 대학은 서울대 출신 교수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며, 다른 대학도 서울대와 본교 출신 교수를 합치면 비율이 높을 것”이라며 “타교 출신 비율을 점차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기초학문 중심으로 공공성 회복해야

서울대는 2011년 12월 시행된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2012년부터 국립대학에서 국립대학법인으로 전환했다. 법인으로 바꾼 가장 큰 이유는 ‘경쟁력 강화’다.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탄력적인 예산 운용과 재정 확충 등이 가능한 법인화가 필수요건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법인화 후 2년여가 지난 현재까지 여전히 경쟁력은 제자리걸음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법인화로 재정 상황이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지만 별로 달라진 것은 없다는 게 내외의 평가다.

오히려 법인화가 기초학문 고사를 불러 대학 경쟁력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성과에 대한 압박이 커지면서 ‘시장 경쟁력’이 있는 응용학문에만 지원이 쏠릴 수 있다는 얘기다. 법인화 논의 당시 인문계열 중심으로 반대 의견이 나왔던 것도 이 같은 이유이다.

인문대의 한 교수는 “법인화 당시 취약학문 배제, 학문의 상업화 등의 우려가 높았다”며 “당장 성과가 안 보이더라도 순수 학문에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이야말로 서울대만의 경쟁력을 키우는 길”이라고 말했다.

◆공공성 반영한 입시제도 필요

서울대에 공공성을 요구하는 것은 그만큼 한국 교육계에 미치는 영향력과 파급력이 크기 때문이다. ‘서울대 입시가 변하면 대학 입시가 들썩거린다’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최근 서울대 입시는 사회적 책무를 다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크다.

서울대에 따르면 올해 합격자 3346명 중 특목고 계열 합격자 비율은 48.6%로 전년(41.9%)보다 6.7%포인트 높아지며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일반고 합격자 비율(49.9%)이 50% 밑으로 떨어진 것은 처음이다.

서울대는 2015년 정시모집에서 내신성적을 아예 반영하지 않기로 했다. 외국어고와 국제고, 과학고 등 그동안 내신이 불리했던 특목고생들을 싹쓸이하겠다는 발상이다. 전국 고교 진학 담당 교사들의 모임인 전국진학지도협의회도 올해 1월 서울대의 입시 정책이 공공성을 외면했다고 공개 비판한 바 있다.

이 같은 입시 개편은 상위권 학생들을 다른 대학에 빼앗기고 있다는 위기감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의 ‘아이비리그’ 등 해외 유명 대학과 국내 상위권 대학 사이에서 ‘샌드위치 위기론’까지 대두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대가 세계적인 대학으로 가기 위해서는 성적 위주보다는 오히려 학과별로 다양성을 고려한 입시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김유나·권이선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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