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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죽음 뒤섞이는 제의적 연극… 잔혹성 속 교감

입력 : 2014-06-12 21:41:28 수정 : 2014-06-12 21:4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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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정의 공연 돋보기]
올해 초부터 개인적으로도 유독 많은 죽음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런데 완연한 봄이 되자 장례식과 장례식 사이에 결혼식이 적잖게 끼어들게 되었다. 그러자 마치 하루에 여러 편의 공연을 관람했을 때처럼 상반된 감성이 뒤섞이며 혼란스럽기 시작했다. 사랑과 죽음의 통과의례가 뒤섞이는 감성이 잔혹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밀도 높은 감성이 오히려 삶에 대한 의지와 용기를 만들어 냄을 느꼈다. ‘잔혹극’을 통해 비인간화되어가는 문명 속에서 생명력을 일깨우려던 앙토냉 아르토의 의도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고나 할까.

하나의 생명은 다른 생명의 죽음 위에서 생겨난다. 이것이 아르토가 이야기한 ‘잔혹’이다. 그러고 보면 모든 죽음은 새로운 생명을 불러온다는 점에서 순교이다. 고전비극인 ‘오이디푸스 왕’이나 ‘햄릿’에서처럼 위대한 인물의 죽음이 집단을 직접 구원하지 않더라도 그러하다. 대표적인 현대비극인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소시민의 대표 격인 윌리 로먼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지만 이는 가족을 위한 비장한 결단이었다. 그리고 숱한 죽음을 되새기게 하는 공연이야말로 이와 같은 이름 없는 죽음들이 순교의 의미를 지니게 하는 진혼제이다.

특히 제의적인 성격이 강한 공연들은 삶과 죽음이 뒤섞이는 잔혹성 속에서 깊은 교감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올해 ‘씨어터 올림픽스’의 공식 참가작이기도 한 극단 자유의 ‘꽃, 물, 그리고 바람의 노래’(김정옥 작, 최치림 연출)에서 공주는 적군이 들이닥치는 상황 속에서도 죽은 부모와 백성들을 위해 진혼제를 올린다. 공주의 행위는 희생자들을 ‘기억’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희생자들뿐 아니라 산자들의 희망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 연극은 고대 한반도를 배경으로, 적국의 왕자와 공주의 러브스토리를 우화적으로 담았다. 이들은 서로를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사이임에도 속한 집단의 이념이 달라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이처럼 집단 간의 반목으로 슬픈 결말을 보여주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공연의 단골 소재이기도 하다. 분단국가인 만큼 우리나라의 무대에서는 이념의 갈등으로 인한 비극이 빈번히 다뤄지고 있다. 특히 제의적인 연극들에서 굿의 놀이적인 면을 통해 해원이 이뤄지는 과정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는 죽은 자의 혼이 흥겨움 속에서 섞여 놀며 산자들에게 도움을 주길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예를 들어 극단 목화의 ‘산수유’(오태석 작·연출)에서는 결혼과 제의가 뒤섞이며 축제 분위기를 띤다. 6·25로 인한 정신적 외상에 시달리던 가족이 제사와 ‘합장’ 의식을 통해 치유되기 때문이다.

지난주에 집시 음악의 대가인 고란 브레고비치의 밴드가 내한했었다. 밴드의 이름은 ‘웨딩 엔 퓨너럴’이고 콘서트 제목은 ‘집시를 위한 샴페인’이다. 작품의 분위기를 적절히 응축해서 담은 이름과 제목이다. 집시 음악의 구성진 멜로디와 흥겨움 속에는 삶의 잔혹성과 낙천성이 동시에 짙게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콘서트에서 희로애락이 뒤섞인 트랜스 상태에 빠져 나도 모르게 정체불명의 춤을 추다가, 이러한 혼합 감성이 ‘참 삶과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비극성과 희극성이 혼재된 것이 바로 삶이며 죽음 아닌가. 현대 비극이 관객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러한 삶의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현수정 공연평론가·중앙대 연극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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