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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명의 광주 시민들 ‘리얼 퍼포먼스’

입력 : 2014-04-24 21:22:58 수정 : 2014-04-24 21: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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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100% 광주’
“애들을 다 키우고 할 일이 줄어 심심해하는 주부입니다. 우울증이 오려나 봐요.” “여든 네 살입니다. 국민학교 6학년 때 일본 미쓰비시 제작소에 근로정신대로 끌려가 페인트칠을 했습니다. 일본은 지금까지 사과조차 안 하고 있어요. 마음이 아픕니다.” “기아 타이거스를 응원하는 서른 일곱 노총각이고요, 요리사입니다.”

한 사람씩 걸어 나와 짧고 인상적인 멘트로 자신을 기억시킨 뒤, 다음 사람에게 마이크를 넘기고 나서 천천히 회전하는 원형무대 위에 올라 둥글게 큰 원을 그린 형태로 줄지어 선다. 이렇게 배우가 아닌 일반 시민 100명이 무대를 채우고 나면, 이어 성별·나이·거주지역 등의 구분에 따라 무리짓기를 한다.

질의응답도 진행된다. ‘어릴 적 꿈꾸던 직업에 종사하고 있나요?’ ‘가사와 양육을 분담하시는 분?’ ‘미디어는 조작된 것이라 생각합니까?’ ‘한국에서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무대 위는 ‘예’와 ‘아니요’로 나뉘어 있다. 출연자들은 각 질문에 자신이 해당하는 답(예, 아니요) 쪽으로 걸어가 자리를 잡고 선다.

솔직한 답을 얻기 위해 무대 위 조명을 끄고 묻기도 한다. ‘다시 태어나면 다른 배우자를 선택하실 겁니까?’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통계쇼’다. 통계 수치나 결과로 이처럼 재미나고 이색적인 공연을 꾸밀 수 있다니 놀랍다. 세계적 명성의 창작그룹 ‘리미니 프로토콜(Rimini Protokoll)’이 100명의 광주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 낸 다큐멘터리 연극 ‘100% 광주’ 이야기다.

이미 2009년 국내에서 연극 ‘자본론’으로 ‘한국연극평론가가 꼽은 올해의 베스트 연극상’을 수상한 바 있는 ‘리미니 프로토콜’은 대안연극계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현실과 허구, 그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독특한 시각으로 전문 배우가 아닌 현실 속 생활인들과 함께 구체적인 상황과 특정 장소를 소재로 공연을 펼친다.

이번 ‘100% 광주’ 공연은 ‘리미니 프로토콜’의 ‘100% 도시’ 연작 프로젝트 중 하나다. 각 도시 구성원들의 통계학적 비율을 바탕으로 선별된 100명의 시민들이 이야기하는 대규모 사회 참여극으로, 2008년 베를린 헤벨극장에서 초연된 ‘100% 베를린’ 공연부터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런던, 파리, 브뤼셀, 멜버른, 도쿄, 밴쿠버 등 세계 주요 도시에서 공연했다. 광주는 18번째다.

‘100% 광주’ 역시 인구조사통계표를 기준으로 연령대와 성비, 출신지역 등에 따라 선별된 100명의 시민들을 통해 무대 위에 광주사회의 축소판을 구현해낸다. 2012년 광주 인구통계조사에 따르면 70대 이상 노인의 비율은 6%이고, 외국인은 1%, 기혼자는 46%를 차지한다. 이에 따라 ‘100% 광주’에 출연하는 시민 100명 중 6명은 70대 이상 노인이고, 1명은 외국인이며 46명이 기혼자다.

100명의 시민들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관객에게 들려준다. ‘내가 가장 아끼는 물건’, ‘광주를 설명할 수 있는 냄새’ 등 시민들의 소소하지만 친숙한 이야기를 통해 관객은 이제껏 숫자에 불과했던 건조한 통계 수치와 대중의 익명성 속에 숨겨진 우리 이웃들의 얼굴을 목격하게 된다. 통계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개인들을 발견하고, 그들의 삶에 주목하게 하는 것은 이 작품이 갖는 리얼리티의 힘이다.

극 후반부, 객석을 훤히 비추도록 극장 안 조명을 모두 켜고 관객에게 묻기도 한다.

“발명하고 싶은 기계는?”

“영어 잘하게 되는 약, 발 냄새 안 나는 양말, 누우면 다 되는 미용 침대….”

관람하는 내내, ‘나라면 어떻게 답을 할까’ 생각하면서 이미 재미에 빠져든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지난 19일 광주문화예술회관 공연을 언론에 공개한 데 이어 26일 오후 7시와 27일 오후 3시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서 관객을 맞는다. (062)410-3633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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