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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밭 사이 곳곳 조형작품 … ‘예술’이 된 시골마을

입력 : 2014-04-24 21:20:03 수정 : 2014-04-24 21: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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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군에서 만난 ‘또 다른 부산’
부산의 동쪽 해변은 외지인들이 여행지로 많이 찾는 남쪽 해변과는 전혀 다른 정취와 풍경을 품고 있다. 해운대·광안리·송도로 대표되는 남쪽의 해변은 고층빌딩, 카페, 식당으로 가득 차 있다. 도시, 젊음, 소비 등이 이곳의 정서를 상징하는 단어가 되지 않을까 싶다. 반면 대부분 기장군에 속해 있는 동쪽 해변은 고즈넉하고 한적한 어촌, 포구의 연속이다. 흔히 떠올리게 되는 부산의 이미지와는 판이한 ‘또 다른 부산’을 기장의 해변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은퇴 후 기장군에 전원주택 개념으로 새 둥지를 트는 부산 사람이 적지 않은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라고 한다.


부산의 남쪽 해안이 끝나는 해운대 동쪽의 문탠로드와 청사포를 지나 송정 해변에만 들어서도 부산 시내쪽 해변과는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부산 토박이들이 ‘가까운 바다에 간다’고 하면 송정을 말한다. 그들은 이젠 건물이 꽉꽉 들어차고 번잡한 해운대와 광안리에서는 바다의 정취를 느끼지 못하겠다고 한다. 그들이 자기네끼리 찾는 바닷가 횟집도 적어도 송정까지는 나가야 한다.

아직 해운대구인 송정을 지나 기장군에 발을 디디면 가장 먼저 만나는 명소는 해동용궁사다. 바닷가 바위에 들어선 절집 중에는 우리 땅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널리 알려진 곳일 것이다. 3대 관음성지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유서 깊고 풍광이 빼어나 1년 내내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해동용궁사를 넘어가면 본격적으로 한적한 포구의 풍경이 펼쳐진다. 도로변에는 낡은 저층 건물이 늘어서 있고, 햇볕에 말리는 생선이 곳곳에 눈에 띈다. 만약 하늘에서 뚝 떨어져 이곳에 도달했다면 부산의 바닷가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풍경이다. 
부산 기장군 장안읍 오리 대룡마을의 ‘아트 인 오리’ 곳곳에 세워진 예술작품들.


축산농가가 떠나며 황폐해진 시골마을을 예술인들이 정감 넘치는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해동용궁사에서 북쪽으로 4㎞쯤 올라가면 우리 땅의 최대 멸치 산지인 대변항이다. 대변항의 기장 멸치는 기장 미역과 함께 조선시대 임금에게 진상하던 특산품. 대변항은 전국 멸치 어획고의 60%를 차지하는 포구로, 이즈음 멸치잡이가 한창이다. 기장 멸치는 사철 잡히지만, 이맘때가 제철이다. 봄 멸치는 육질이 부드럽고 고소한 데다 씨알도 굵다. 그래서 국물 맛을 내는 보조 재료가 아니라 구워 먹고, 무쳐 먹고, 회로 먹는 요리의 주재료가 된다. 멸치 굽는 냄새가 진동하는 이즈음 대변항에서는 배에서 막 내린 선원들이 그물을 흔들어 멸치를 털어내는 역동적인 작업도 눈요깃거리가 된다.

다시 북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기장읍 죽성리인데, 해안도로가 끝나는 곳에 고산 윤선도가 6년 동안 유배 생활을 했던 두호마을이 나온다. 이 마을 바닷가 야트막한 언덕에 작은 성당과 등대가 서 있다. 원래는 드라마 ‘드림’의 촬영 세트장인데, 황금빛 갯바위와 쪽빛 바다를 배경으로 들어선 성당이 빚는 풍광이 더없이 이국적이고 낭만적이어서 기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가 됐다.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 두호마을의 드림성당.
드림성당을 지나 울산 방면으로 계속 올라가면 일광, 장안 등 이름도 낯선 마을에 접어든다. 이곳의 산자락에는 작지만 정감 넘치는 문화공간이 살포시 들어서 있다. 부산 시내에서 출발한 후 동선을 따라 나열하다 보니 가장 뒤에 내놓았지만, 감흥의 깊이로만 보면 맨 앞자리에 올려놓고 싶었던 곳이다.

장안읍 오리 대룡마을의 ‘아트 인 오리’(051-727-4364)는 작은 시골마을에 들어선 예술인촌이다. 원래 이곳에는 축산농가가 많았으나 1990년대 우유 파동사태를 겪으며 축산농가들이 폐업했고 마을은 황폐해졌다. 그러다 1990년대 후반부터 부산지역 예술가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 마을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낮은 임대료가 작가들을 불러들였다. 빈 축사와 곡물창고는 하나둘 작업실과 전시실로 탈바꿈했고, 이 마을은 예술인 창작촌으로 거듭났다.

대룡마을 작가들은 삼삼오오 모여 차를 마실 수 있는 공동 휴게실도 마련했다. 각자 작품 활동을 하느라 휴게실 관리자는 따로 없었다. 현재 대룡마을의 상징물로 불리는 무인 카페 ‘아트 인 오리’(Art in Ori)는 이렇게 탄생했다. 방문객도 카페 입구 작은 상자에 1인당 3000원을 넣고 커피를 마실 수 있다.

전시실로 탈바꿈한 대룡마을의 빈 창고.
마을 곳곳에는 그동안 이 마을과 인연을 맺은 작가들의 작품이 설치돼 있다. 산비탈이나 논밭 사이, 폐가 옆에 들어선 조형 작품들은 이 마을의 일부인 것처럼 녹아들었다. 고즈넉하고 푸근한 정취를 지닌 대룡마을은 입소문을 타고 외부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부산 시내를 빠져나와 1시간 이상 차를 몰아야 하는데도 찾는 사람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대변항 인근의 ‘토암도자기 공원’(051-721-22331)도 둘러볼 만한 곳이다. 이름은 도자기 공원이지만, 이곳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은 도자기가 아니라 흙으로 빚은 인형, 토우다. 비탈진 산책로 주변에 1400여개의 토우가 늘어 서 있다. 이곳은 대변포구가 한눈에 내려다보여 풍광도 그만이다.

대변항 인근의 토암도자기 공원.
이곳은 1997년 도예가 토암 서타원 선생이 암 수술을 받은 뒤 들어와 토우를 빚으며 공원으로 조성되기 시작했다. 토우들은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또 한결같이 바보의 얼굴이다. 귀도 없고, 머리도 열려 있고, 바닥도 열려 있다. 헛된 소리에 휘둘리지 말고, 스스로의 욕심과 마음을 모두 비우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부산=글·사진 박창억 기자 danie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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