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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리뷰] 봄꽃이 전하는 생명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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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4-23 21:43:06 수정 : 2014-04-23 21:4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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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 조기개화는 환경위기의 경고
생태중심 생명관 절실히 필요한 때
올 봄꽃은 예년에 비해 너무 빨리 피기도 했지만 많은 꽃이 앞다퉈 한꺼번에 피었다. 우리는 한꺼번에 많은 아름다운 꽃을 즐길 수 있어 좋았지만, 예상을 크게 벗어나 봄꽃이 피는 바람에 기상청도, 꽃 축제를 준비하던 지방정부도 많이 당황했을 것이다. 식물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생존전략 차원에서 꽃을 피우는 것이지 철없이 아무 때나 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올 봄꽃은 우리에게 어쩌면 인간욕망에 의해 초래된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경고하는 것일 수도 있다.

식물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생로병사 과정을 거친다. 싹이 트고 자라고 꽃피고 열매를 맺으면서 일생을 마친다. 식물이 꽃을 피우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종족보존이다. 식물은 꽃을 피우기 위해서 계절의 변화를 인지하고 밤낮의 길이, 온도 등 최적의 환경조건이 갖춰져야 할 정도로 정교한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

한반도처럼 사계절이 뚜렷한 온대지역에서 자라는 식물은 봄에 꽃을 피우기 위해 일정기간 추위를 겪어야 한다. 봄에 꽃이 지면 식물은 다음해에 피울 꽃눈을 만들기 시작해 가을에 낙엽이 지고 일정기간 추위를 겪은 다음 온도가 올라가면 꽃이 피게 된다. 노지에 자라는 개나리, 철쭉 등은 추위를 겪고 난 다음에 겨울철 따뜻한 실내로 옮겨 10여일이 지나면 꽃이 활짝 피는 것을 볼 수 있다.

곽상수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생명공학
봄날의 온도에 따라 봄꽃이 피는 시기가 결정되기 때문에 매년 벚꽃이 피는 시기가 달라진다. 예년에 비해 올봄에 꽃이 아주 일찍 피게 된 것은 날씨가 매우 따뜻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벚꽃이 작년보다 18일이나 빨리 피었는데 3월 하순 낮 최고기온이 20도를 상회하면서 평년보다 10도 안팎 높은 것이 주된 원인이다. 일찍 꽃이 피는 것은 봄 온도가 높은 것으로 설명되지만, 전국적으로 목련, 개나리, 벚나무, 라일락 등 봄꽃이 짧은 시간에 경쟁하듯 한꺼번에 꽃을 피우게 된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지난겨울과 과거 겨울의 큰 차이 중 하나는 여러 차례 발생한 ‘미세먼지’이다. 어쩌면 겨울철 우리를 괴롭혔던 미세먼지가 식물에게 생존을 위협하는 스트레스로 작용해 봄꽃이 일시에 피도록 한 것에 일조했다고 생각된다. 식물도 심한 환경스트레스를 받으면 종족보존 차원에서 서둘러 꽃을 피우기도 한다. 척박한 환경에서 자라는 소나무가 솔방울을 많이 맺고 송홧가루를 많이 날리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지난겨울 중국에서 한반도에 미세먼지가 유입됐을 때 우리는 마스크를 착용하거나 야외활동을 자제하면서 미세먼지의 피해를 줄이도록 노력했다. 그러나 구조적으로 이동할 수 없는 식물은 미세먼지의 피해를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다. 한반도의 식물은 지난겨울처럼 혹독한 미세먼지를 경험한 적이 없었기에 식물로서는 생존의 위험을 느끼면서 대응메커니즘을 가동했을 것이다. 식물은 중금속물질 등 오염물질이 포함된 미세먼지에 장기간 무방비로 노출됐을 때, 종족보존의 본능에 의해 따뜻한 봄 날씨에 경쟁적으로 한꺼번에 꽃을 피우게 했을 것이다.

대부분의 식물은 꽃을 피게 하고 꽃피는 시기를 조절하는 유전자를 갖고 있다. 첨단 유전체 연구에 의하면 인간세포에는 약 2만4000개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지만, 벼와 감자 세포는 약 3만8000개의 유전자가 있음이 밝혀져 생명의 본질인 유전자 수준에서 식물이 오히려 동물보다 생로병사가 복잡할 수 있음이 시사됐다.

최근 연구에서 일부 식물에서 꽃을 피게 하는 개화호르몬 유전자, 외부환경을 인식해 꽃피는 시기를 조절하는 유전자가 속속 밝혀지고 있어 머지않아 유전자 수준에서 개화메커니즘의 본질이 규명되길 기대한다. 식물은 기후변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산소, 식량, 의약품, 산업소재를 제공하는 고마운 생명체이다. 식물에 이상이 생기면 작물생산 피해, 생태계 파괴 등 우리에게 큰 재앙이 될 수 있다. 어쩌면 올 봄꽃의 이상 개화는 지구의 위기를 알려주는 경종의 메시지로 우리가 받아들이고 식물과 함께 잘 살 수 있는 금수강산을 만들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번 진도에서 일어난 ‘세월호’ 참사는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부족으로 일어난 것이다. 현재의 ‘인간중심의 생명관’에서 식물을 포함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종과 이들의 서식지 모두를 소중히 여기는 ‘생태중심의 생명관’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곽상수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생명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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