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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칼럼] 선거가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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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4-20 22:20:44 수정 : 2014-04-20 22:3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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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고’ 이용 선거운동 한심
희생자 가족·국민 마음 헤아려야
우리 속담에 ‘누울 자리를 보고 발 뻗는다’는 말이 있다. 어떤 일을 할 때 주어진 여건과 상황을 잘 살핀 후 행하라는 뜻이다. 아무리 우는 아이에게 먼저 떡을 준다 해도 떡을 달라고 말할 자리가 아닌 곳에서 떡을 달라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온 국민이 ‘세월호’ 침몰사고로 발을 동동 구를 때에도 어김없이 휴대전화로 돈 필요하신 분 대출 정보와 6·4 지방선거 예비후보자들의 문자 정보가 날아왔다. 어떤 예비후보자는 자기는 어느 당의 기호 몇 번 누구이며 ‘세월호’ 침몰 소식을 접하고 오늘 하루 선거운동을 하지 않겠다는 선거운동 문자를 보내왔다. 전 국민의 시선이 한곳에 모여 이 일을 어쩌나 걱정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뱀처럼 사악한 위장술로 자기 이름을 알리는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정도 되면 공해 차원을 넘어 사회악에 가까운 수준이다. 대체 이런 자(이 者자가 바로 놈자이다)들을 뽑아서 무슨 지역발전을 이루고 풀뿌리 민주주의를 이루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당장 내일 모레 코앞에 닥친 선거여도 희생자들의 가족과 국민들의 마음을 먼저 생각해야 할 판에 아직 한 달 반이나 남은 선거를 두고도 이토록 발 뻗을 자리와 발 뻗어서는 안 될 자리를 구분조차 못하고 있는 꼴이 아닌가. 어쩌면 그게 선거의 속성일지도 모르지만 예전에 고향 동네 어른들이 하던 말이 생각났다.

그런 말이 왜 나왔는지 모르지만 집안이 빨리 망하려면 선거에 나오고, 천천히 망하려면 자식 셋 대학을 가르치라고 했다. 아마도 인근 동네에 선거로 집안을 말아먹은 사람이 있었고, 또 나 어린 시절에 들은 얘기니까 1960년 대 그 시절 시골에서 서울로 대학을 보내는 게 얼마나 힘들고 돈이 많이 드는지를 얘기했던 것 같다.

우리 할아버지도 자주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할아버지의 사돈 한 분이 선거로 살림을 줄이고, 또 할아버지의 사위 한 사람이 이런저런 선거판에 본인이 나서거나 남의 선거운동으로 거의 반평생을 보낸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가장 신용하지 않는 사람이 자기 일을 뒤로 제쳐두고 남의 선거 뒷일을 봐주는 사람이었다. 그거야말로 따로 바라는 것 없이 하지 못할 일이고, 그렇게 바란다는 것이 결국 자기가 도와준 사람의 살림이 아니라 나라살림을 들어내는 일이라고 했다.

온 국민이 침몰한 배에 타고 있는 어린 학생들의 목숨 걱정으로 발을 구를 때 그 사고와 자기 이름을 연결해 선거홍보 문자를 보내는 사람들 수준이면 더 말할 게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까지 선거판에 꼭 이런 사람만 있었던 건 아니다. 때로는 ‘발 뻗을 자리’를 지나치게 조심하고 가려서 저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왜 선거에 나왔나 생각하게 한 사람도 있었다.

이순원 소설가
물론 종교의 이름으로 신앙과 정치활동을 접목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기는 했지만, 15대 대통령선거 때 어떤 후보는 군소후보들에게 모처럼 주어진 텔레비전 토론시간이 교회 예배시간과 겹친다는 이유로 텔레비전 토론에 참석하지 않기도 했다. 그런 지나침까지 본받아야 할 일은 아니겠지만 ‘세월호’의 침몰사고 중에도 자기 이름 알리기에 목을 걸고 숱하게 문자를 보낸 예비입후보자들은 반성하고 새겨보아야 할 대목이다.

아니, 후보자들이 새겨보아야 할 문제가 아니라 이번 선거에 임하는 각 정당들이 새기고 점검해야 할 문제이다. 아직 정식 후보를 내기 전이니 각 정당에서도 국민들 마음을 헤아리는 뜻에서 철저한 조사를 통해 최소한 이런 자들의 공천만은 막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과열된 선거판에 어쩌다 일어나는 작은 해프닝이거나 실수가 아니다. 이런 자들은 뽑아놓아 보아야 자신의 입신영달과 사리사욕에 눈먼 정치판의 벌레 노릇밖에 하지 못한다.

선거 때엔 궂은 자리에 찾아가도 욕먹고 찾아가지 않아도 욕먹는다는 말이 있다. 궂은일에 찾아가 진심으로 위로해도 이럴진대 온 국민이 슬퍼하는 자리에 자기가 누울 곳을 찾아 발을 뻗겠다는 자들이 무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꽃이 만개하여도 여러 일로 애통하고 심란한 날들이다.

이순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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