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작 '500일의 썸머'(2009)로 로맨스 영화의 새장을 열었던 마크 웹 감독은 레이미가 만들어놨던 그런 어두운 이미지를 단박에 벗겨냈다. 웃는 표정보다는 무표정이 어울리는 토비 맥과이어 대신 수다쟁이에다 행동거지는 가볍지만, 잘 생긴 앤드류 가필드를 내세웠다. 여기에 하이틴 로맨스를 떠올리게 하는 풋풋한 사랑을 배치했다. 화사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012·국내 485만 명 동원)은 '500일의 썸머판 스파이더맨'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어두운 '스파이더맨'과 일별했다.
웹 감독의 기대는 현실로 이뤄진 듯하다. 영화의 스펙터클은 전편을 크게 압도한다. 뉴욕 빌딩 숲을 이리저리 타고 다니는 스파이더맨의 모습은 곧 화면 속에서 튀어나올 듯 생생하다.
하지만 내용없는 공허한 액션이 이어질 때, 아무리 날고 기는 최첨단 할리우드 기술이라도 금방 물리기 마련. 그래서 웹 감독은 한 발 더 나갔다.
"세상은 훨씬 크고 오페라처럼 웅대하지만 그런 모든 스펙터클의 바탕에는 작고 친밀한 인간관계가 깔렸있다"는 통찰을 근간으로 액션 장면을 세공해 나간 것이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의 진짜 장점은 여기서 출발한다.
빌딩을 타 넘고 악당과 싸우면서 부상도 당하지만, 피터 파커(스파이더맨)의 가슴을 후벼 파는 건 육체적 고통이 아니라, 관계에서 비롯된 상처다. 여자친구 그웬 스테이시(엠마 톰슨)를 떠나 보내야만 하는 고통, 부모에게 버림받았다는 상처, 그리고 지인들의 죽음.
"딸의 곁을 떠나라"는 말을 남기고 죽은 그웬 아버지의 유언 때문에 늘 고통스러운 피터.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사람들을 도와주며 그 말을 잊으려 노력한다. 그러나 그웬 곁을 맴도는 그녀 아버지의 영혼 탓에 피터는 괴로워하고, 그웬은 그런 피터가 안쓰러워 눈물 속에 이별을 통보한다.
눈길 끄는 장면이 여럿 있다. 웹 감독은 역시 전공인 멜로에서 강한 모습을 보인다. 차이나타운에서 나누는 피터와 그웬의 이별 장면은 영화의 그 어떤 액션장면보다도 인상적이다. 후락한 뒷골목에서 솟아오르는 연기마저도 쓸쓸함을 자아낸다. 엠마 톰슨이 얼마나 멜로에 잘 어울리는지는 배우인지 그녀는 이 장면만으로도 자신의 존재를 충분히 증명한다. 시리즈에 새롭게 등장한 피터의 친구 해리 오스본 역의 데인 드한은 가필드보다도 더욱 강렬한 카리스마를 뿜어낸다.
로맨스에서 멜로로, 희극에서 비극으로 옷을 바꿔입은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는 전편보다 감정의 골이 더 깊어졌다. 이번에도 쉴 사이 없이 피터는 떠들어대지만, 비극에 밑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수다는 더욱 서글프다. 수많은 사람을 구한 스파이더맨의 거미줄이 결국 가장 중요한 사람에게는 닿을 수 없다는 역설. 그 패배의 기억은 관객을 숙연케 한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은 그런 점에서 '스파이더맨'으로 다시 돌아왔다. 조금은 밝은 에너지를 품은 채 말이다. 반갑다 '어메이징 스파이더 맨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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