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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죽인 자는 죽음으로 갚고, 남에게 상처를 입힌 자는 곡물로 배상하며, 남의 물건을 훔친 자는 노비로 삼는다. 고조선의 8조 법금 중 핵심 세 가지다. 기원전 1792년 바빌로니아시대 때 제정된 함무라비 법전은 의료사고를 낸 의사는 손을 자르고, 집이 무너지면 건축가에게 사형, 물건을 훔쳐도 사형, 아들이 아버지를 때리면 두 손을 자르도록 했다. 이른바 ‘눈에는 눈’ 법이다. 철두철미한 보복의 원리가 담겼다.

과연 당한 대로 앙갚음하면 피해자의 마음이 편해질까. 정당한 보복이란 말이 성립할까. 또 다른 보복을 부르진 않을까. 죄책감으로 새로운 고민에 휩싸이진 않을까. 보복의 원리는 이스라엘 율법서 레위기에도 “사람이 만일 그 이웃을 상하게 하였으면 그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할 것이니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을지라…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일지니”라고 나온다.

하지만 예수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 하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치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했다. 범부들에겐 쉽지 않은 경지다. 마하트마 간디도 “‘눈에는 눈’은 모든 세상을 눈멀게 할 것”이라며 반대했다.

자신의 외아들을 죽인 살인자를 용서해준 이란의 한 어머니가 화제다. 그녀는 아들을 죽여 교수대 위에 선 사형수의 뺨을 한 차례 후려친 후 올가미를 풀어줬다. 죄를 용서해준다는 의미였다. 용서는 기독교 개념으론 죄를 사하여 주는 것이고, 언어적으로는 단념(Verzichten)과 어원을 같이한다. ‘받은 만큼 돌려준다’는 이슬람 율법 샤리아의 ‘키사스’ 징벌보다 더 어려운 결단이자 용단이다.

교통사고 피해자, 일본군 위안부…. 우리 주변에는 이런저런 피해자들이 많다. 그들이 진정 바라는 건 용서를 통한 트라우마(정신적 외상) 탈출일 것이다. 용서는 가해자의 진정한 사죄를 전제로 한다. 더욱 어려운 것은 용서에 대한 훈련이다. ‘스탠퍼드 용서 프로젝트’ 설립자인 용서학의 대가 프레드 러스킨은 “용서는 배울 수 있는 것이며, 연습을 통해서 더 잘할 수 있다”고 했다. 용서 근육을 키우라는 말이다. 18세기 영국의 시인 알렉산더 포프도 “실수는 인간적인 일, 용서는 신성한 일”이라고 했다. 울화를 용서로 풀어보자.

조정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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