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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철의나명들명] 칭찬은 고래를 단명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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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4-18 20:58:18 수정 : 2014-04-18 20:5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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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일로 기억한다. 당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책의 광고가 꽤 오랫동안 신문지면을 장식했다. 저자가 어느 나라 사람인가는 유념해보지는 않았지만 평상시 칭찬에 인색하다는 평을 듣는 우리로서는 되돌아볼 만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칭찬의 정체를 알았다면 이런 폭언은 하지 않았을 텐데 하며 동의하기 힘들었다. 어떤 직원이 백의 가치의 일을 했는데 어깨를 툭 치며 ‘수고했다’라는 말 한마디가 과연 칭찬일까. 수십억, 수백억 원의 금전적 가치가 있는 발명이나 아이디어는 그에 적절한 금전적 보상을 해 주는 게 제대로 된 칭찬이다. 현실에서 우리는 회식 한 번, 내용 없는 표창장, 몇 푼의 보상, 일 계급 특진, 어깨 두드림 한 번 이런 정도로 칭찬을 다한 양 일을 끝맺는다. 그러고선 공적을 빼앗아 가는 것이 더 흔한 풍경으로 다가온다. 책의 저자도 3연(혈연, 지연, 학연)에 의한 불공정, 정실 인사나 상사에 의한 공적 가로채기를 지적했을지도 모르겠다.

제대로 된 칭찬―합리적 보상체계, 공정한 인사제도, 적절한 상벌 제도―등은 생각보다 어렵다. 이러니 그 무뚝뚝한 고래 녀석도 진정한 칭찬 한 마디에 어찌 춤을 추지 않겠는가? 극도의 경쟁사회인 현대사회에서는 칭찬은 구성원의 재능을 백 프로 발휘케 하는 묘약, 아니 마약이라 해도 과장된 말은 아니다.

문제는 칭찬이 사회와 조직을 적절히 작동하게 하는 비법, 비약이 아니라 마약 수준으로 효능을 발휘하게 될 때이다. 많은 이들은 칭찬과 격려의 겉모습을 한 닦달의 회초리에 맞아 힘들고 피 흘리고 있다는 엄혹한 현실이다.

조병철 객원논설위원
세계화, 지구촌화하면서 국경이 사라지며 경쟁은 범세계적으로 전개된다. 한국의 1위는 무의미한 존재로 전락하기 예사다. 국제사회에서 1, 2등 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칭찬의 마약에 중독된 이는 다음 칭찬을 목표로 선불 맞은 멧돼지로 변신한다. 어쩌다 한 번 칭찬은 들었지 그 뒤로 칭찬의 불화살에 쫓기어 황야를 질주한다. 돌고래의 육체는 병들고 정신은 한겨울의 낙엽 진 고목처럼 황량해진다.

현실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너와 나, 우리 98%는 무능하고 소심하고 저능한 인간임을 알아야 한다. ‘잘 한다’ ‘잘 한다’ 하는 추임새는 ‘너 나가 죽어라’ ‘너 나가 죽어라’의 저주의 악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무게 중심을 잡고 단단히 버텨야 한다.

문득 선인의 안분지족 인생훈을 떠올려 본다. 그 옛날도 정도야 덜했을지 몰라도 경쟁은 치열했다. 정치적 이념이 다르거나 학문의 계승이 다르기만 하여도 사생결단의 험난한 시스템이었고 패자는 처족, 외족 등 삼족을 멸해 오늘에 결코 뒤지지 않는 경쟁체제였다. 그들은 안분지족의 탈출구를 찾았다.

이제부터라도 나의 분수를 알자. 고래의 춤추기 묘기는 동물원의 구경거리로 충분하다. 공부만 하고 놀지 않는 잭은 바보가 된다는 격언은 ‘칭찬은 고래를 불행·단명케 한다’는 말과 동의어임을 깨쳐야 한다.

조병철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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