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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순열의경제수첩] 낡은 프레임, ‘환율하락=수출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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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4-18 20:59:36 수정 : 2014-04-18 20:5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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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 내려가면 긍정 효과도 많아
수출 파장만 부각 전체 오인 소지
‘관성의 틀’ 깨야 원화 국제화 이뤄
한국경제엔 환율에 관한 낡은 프레임이 있다. ‘환율하락=수출비상’이라는 등식이 그것이다. 환율이 좀 떨어진다 싶으면 이 등식이 매스컴을 도배한다. 버튼을 누르면 튀어나오는 자판기 음료처럼. 환율이 하락 흐름을 보이는 요즘 이 등식이 다시 애용되고 있다.

원론적으로 환율하락이 수출에 악재인 것은 틀림없다. 환율이 떨어지면 한국 기업의 수출가격경쟁력도 떨어진다. 같은 양을 수출해도 환율하락만으로 기업의 원화 표시 매출액은 줄어든다. 1만달러어치를 팔았는데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100원에서 1000원으로 떨어진다면 매출액이 11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10% 줄어드는 식이다. 반대로 환율이 뛰면 수출기업은 앉은 자리에서 힘 하나 안 들이고 환율 상승분만큼 추가로 돈을 번다.

그렇다 해도 ‘환율하락=수출비상’은 과장이고, 왜곡이다. 환율하락이 경제에 끼치는 영향 중 일부를 부각시켜 전체인 것처럼 오인케 하기 때문이다. 환율하락의 긍정적 효과도 엄연한데 이를 가린다는 점에서 공평하지도 않다. 환율이 떨어지면 수출기업은 수익 감소를 걱정하겠지만 혜택을 보는 경제주체들도 많다. 수입기업은 더 싼 값에 수입품을 들여올 수 있다. 자녀를 외국에 유학보낸 학부모는 학비 부담이 줄어든다. 해외여행을 떠나는 이들에게도 원화 구매력 강화는 반가운 일이다.

또 환율하락은 물가하락으로 이어져 가계의 실질소득을 늘려준다. 수출엔 악재이지만 내수엔 호재인 셈이다. 반대로 환율상승(원화약세)은 수출기업의 금고를 채워주는 대신 국내물가를 올려 가계의 지갑을 턴다. 외채 상환 부담도 키운다. 고환율 정책은 가계를 희생시켜 수출기업을 배불리는 정책인 셈이다.

환율이 수출에 끼치는 영향력도 과거와 같지 않다. 비가격경쟁력 강화, 해외생산 확대 덕분에 환율의 영향력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정부도, 업계도 모두 인정하는 사실이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원화강세로 수출에 비상이 걸렸다는 말은 관성적인 표현일 뿐”이라고 말했다. 대한상공회의소 임원도 최근 “환율변동이 수출에 끼치는 영향이 과거보다 줄어든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류순열 선임기자
환율에 기대 수출경쟁력을 유지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도 환율이 떨어지면 호들갑이 요란하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일종의 피터팬 신드롬”이라고 했다. 어른이 되고도 어른들의 사회에 적응하기를 두려워하는 피터팬 심리와 비슷하다는 비유다. 그는 “기술혁신으로 수익을 1∼2% 올리는 건 어렵지만 환율상승으로 10% 먹는 건 쉽다”고 말했다. ‘환율하락=수출비상’의 등식엔 이처럼 편한 환경에 안주하려는 심리, 치열한 승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환율은 한 나라 통화의 대외가치를 나타낸다. 그 나라 경제가 튼튼하다면 통화 가치는 상승하고 환율은 하락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 점에서 원화강세, 환율하락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작금 한국 경제의 위상을 감안할 때 1000원대를 유지하고 있는 원·달러 환율이 그렇게 낮은 것인지 의문이다. 경상수지 흑자가 36억달러에 채 미치지 못하고 외환보유액이 2400억달러였던 2006년 연평균환율은 955원이었다. 지난해 경상수지 흑자가 800억달러에 육박하고, 외환보유액이 3500억달러를 넘어선 지금의 원화가 오히려 약세인 것은 아이러니다.

환율하락 압력은 지속될 전망이다. 이승호 자본시장연구원 국제금융실장은 “지금의 균형환율은 900원대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균형환율이란 그 나라의 경제 기초체력을 온전히 반영한 환율을 말한다. 환율은 균형환율로 회귀하는 속성을 지닌다.

무역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에 환율은 여전히 중대 변수이지만 환율 움직임에 전전긍긍하는 모습은 시대착오적이다. 이런 관성의 틀을 깨지 않고는 ‘원화 국제화’도 이룰 수 없는 꿈이다. ‘강한 원화’를 두려워하면서 원화 국제화를 바랄 수는 없다.

류순열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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