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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책임도 안전도 동댕이친 ‘事故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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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4-17 21:08:15 수정 : 2014-04-18 01: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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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이 가라앉은 것 같다. 수백의 생목숨이 대형 여객선 세월호와 함께 진도 앞바다에 잠긴 지 이틀이 지났는데도 도무지 믿기질 않는다.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민·관·군이 수색에 사력을 다하고 있지만 애타게 기다리는 생존자 구조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승객 몇 명만 한 가닥 기대와 희망을 저버린 채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을 뿐이다. 검은 바다와 사투를 벌이며 선체 수색과 인양 준비에 여념 없는 잠수부들의 움직임이 더디게만 보이는 것은 안타까움이 크기 때문일 터이다.

이번 사고에는 ‘희망의 새시대’를 꿈꾸는 세계 10위권 경제대국, 대한민국의 참담한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각국 정부가 애도와 위로의 뜻을 보내고 구조 지원 의사를 전해오고 있다. 고맙기는 하지만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할 판이다. 침몰된 배 주변으로 구조대를 실은 함정과 비행기가 분주히 오가는 참혹한 사고 현장에서 안전과는 거리가 먼 우리 현실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사고예방은커녕 사고를 수습하면서도 허둥댔다. 안전불감증, 작동하지 않는 재난대응시스템, 책임 회피의 추한 몰골이 바다 위를 떠다니고 있다.

사고는 천재(天災)가 아닌 인재(人災)였음이 분명해지고 있다. 바닷길의 커브길인 변침(變針) 구간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아 균형을 잃고 한쪽으로 쏠리면서 침몰한 것이라고 한다. 경찰 조사 결과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이다. 사고 직전 항로가 갑자기 바뀐 흔적도 발견됐다. 배가 바닷물에 잠기기 시작해 조난 신고를 한 뒤에도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있으라”고 10차례나 안내방송을 내보냈다고 한다. 세월호의 안이한 상황 판단이 긴급대피를 막아 피해를 키웠음을 짐작할 수 있다.

승객을 외면하고 먼저 탈출한 선장과 승무원들의 직무유기는 더 어처구니없다. 선장은 자신의 안위보다 승객의 안전을 먼저 도모해야 할 본분을 내팽개친 것도 모자라 배에서 탈출한 뒤 병원에서 물에 젖은 돈을 말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가 선장으로서 배의 구조를 제대로 파악이나 하고 있었는지 의심된다. 선체에 묶여 있던 구명보트도 40여개 중 1개만 펼쳐졌다. 바닷길을 오가는 정원 900여명의 세월호에 ‘승객의 안전’은 없었다.

재난 당국의 초동 대응 실패도 여전했다. 구조자와 실종자 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정정하는 소동을 몇 번이나 벌였다. 경기도 교육청은 ‘학생 전원 구조’ 발표까지 했다. 초기 상황을 오판하면 대응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사고를 과소평가한 나머지 구조대 출동이 늦은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총체적인 부실 대응 속에 수백명이 배에 갇혀 절규하는 아비규환의 상황이 계속됐다. 구조작업을 거들기 위해 사고 현장으로 몰려든 민간 어선의 접근을 해경이 “방해된다”며 막았다는 증언도 나왔다.

어민들의 활약이 컸다. 인근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어선 40여척, 어민 100여명이 긴급구조 요청 메시지를 받고 출동해 60여명의 생명을 구했다고 한다. 어민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더 큰 피해를 냈을 수 있다. 북한 무인기도 시민에게 발견됐다. 안보에 이어 국민의 생명을 구하는 일까지 정부보다 민간이 앞장섰다. 정부보다 시민이 낫다는 얘기를 들어도 할 말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정치인들의 현장 방문조차 부질없어 보일 정도다. 사회 곳곳에 고질처럼 뿌리를 내린 안전불감증을 재확인하는 것이지만 그 대가가 너무 크다. 국가 재난관리 체계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실종자 가족이 충격과 슬픔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의 가슴에 못박는 못난이들의 행동이 어김없이 등장했다. “선체 안에 시신이 너무 많다”, “지금 배 안에서 살아 있다”는 정체불명 메시지가 SNS에 떠돌고 있다. 오매불망 무사귀환을 염원하는 가족의 상처를 헤집는 짓은 삼가야 한다. 지금은 우리 모두 한마음 한 뜻으로 실종자의 안전을 기원할 때다.

배가 바닷속에 가라앉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학생들이 가족에게 보낸 문자메시지가 가슴을 저미게 한다. 평소에는 잘 보지도 않던 하늘을 자꾸 올려다보게 된다. 기적처럼, 거짓말처럼 환한 미소를 지으며 가족 품으로 돌아오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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