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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노예들의 恨… 서러운 노래로, 춤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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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4-17 21:37:10 수정 : 2014-12-22 17: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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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미의 올라 카리베] <12> 발길 붙잡은 아프리카 공연

쿠바 트리니다드 지도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아주 작게 표시된 ‘디스코 아얄라(disco ayala)’란 글자를 발견했다. 디스코라는 말과 동굴 표시가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동굴을 디스코장으로 만든 곳이라고 했다. 지도에서 보물섬이라도 발견한 듯 재미있는 일이 될 거라 확신하며 그곳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인위적으로 만든 동굴이 아니라 자연 동굴이라서 산 중턱은 가야 한다. 밤 11시에 문을 연다는 그곳을 가기 위해 10시 반에 준비를 하고 나섰다. 걸어가기에는 골목이 어둡고 산까지 가야 하니 걱정이 돼서 택시를 탔다. 산길 반대편에 호텔을 통해 가는 길이 있어 그곳에서 내렸다. 호텔에서 일하는 직원의 퇴근길을 같이했다. 그가 친절하게 동굴을 안내해줬다.


새벽 1시가 넘어 돌아오는 길. 노란 가로등 빛과 거의 다 차오른 달빛에 의존해 조심스레 걷는다.
동굴 앞에 도착하니 사람들 몇몇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다가오자 사람들이 꽤 몰려들었다. 동굴로 가는 길 입구는 창살로 문이 닫혀 있었고, 사람들은 기다렸다. 제일 먼저 그곳을 들어간 건 사람이 아닌 개 한 마리였다. 개 한 마리가 창살 사이로 몸을 비집고 결국엔 들어갔다. 시간이 되자 문은 열렸고, 사람들이 줄 서서 들어가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산 중턱에 있는 동굴 앞에서 디스코장 복장을 하고는 사람들이 줄지어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에 웃음만 나왔다. 맥주가 포함된 입장료를 내고 안으로 들어가니 별천지였다. 진짜 동굴에 조명만 몇 개 달아놓고 스테이지를 만들어놨다. 입구부터 스테이지까지 가는 길은 꽤나 깊숙했다. 조명이 어두컴컴한 동굴을 비춘다. 스테이지 근처로 가니 술을 파는 바가 있고, 디제이박스까지 갖춰져 있었다. 천장이 높은 이 동굴은 음악이 울리자 진가를 발휘했다. 울려퍼지는 음악은 스피커가 필요 없었다. 동굴 천장에서 윙윙 돌면서 울려퍼지는 음악 소리가 좋았다.

2층 계단으로 올라가니 좁은 통로에 높은 천장을 가진 작은 공간이 나왔다. 농담으로 “이곳은 박쥐도 날아다니겠다”고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정말 박쥐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박쥐가 레이저 조명을 쏜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냥 날아다니고만 있었다. 디스코장으로는 동굴이 안성맞춤인 것을 그제야 알았다.

12시가 넘으니 본 공연을 시작했다.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이 노동을 춤으로 형상화한 움직임이다. 힘이 넘쳐났다. 아프리카 흑인들이 직접 보여주는 공연인데, 차력 쇼로 이어지면서 공연 성격이 점점 변질되었다. 그들은 무섭고 끔찍한 차력 쇼를 감행해 나갔다. 유리를 먹는다든가 몸에 칼을 대는 등 절로 인상이 찌푸려지는 공연이였다. 차력 쇼가 끝나니 또 한 판의 살사춤이 이어졌다. 모든 사람이 어우러져 살사를 추면서 한참 땀을 흘렸다.

동굴 디스코장에서 벌어진 흑인들의 차력 쇼. 다소 엽기적이라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어느 새 1시가 넘었다. 너무 늦었나 싶어 서둘러 나왔다. 이번에는 사람들이 올라온 길로 내려갔다. 택시를 타지 않아도 충분히 걸어갈 만한 거리라 안전했다. 적막이 흐르는 조용한 마을을 지나 노란 가로등 빛과 거의 차오른 달빛에 의지해 걸어가고 있었다. 조용히 들려오는 음악 소리가 발걸음을 그곳으로 끌어들였다. 마요르 광장 한쪽에서 몇몇 사람이 모여 노래를 부르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돌아가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한 명이 부르면 다른 사람들은 그에 맞는 즉흥 연주를 시작해 하모니를 이뤄냈다. 선율이 너무 아름답다. 조용한 음악이 마음을 울렸다. 시끄러웠던 동굴 디스코 음악보다 이 작은 소리가 오히려 마음을 울린다. 젊은 사람도 있지만 연세가 지긋하신 할아버지의 기타 음이 너무 좋았다. 나처럼 동굴 디스코에서 내려오는 사람들 모두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선율이다. 돌아오는 길의 작은 선물과도 같았다.

트리니다드의 아침은 일찍 시작된다. 부지런한 쿠바인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움직이기 시작한다. 집주인은 내가 늦게 일어나면 아침을 차려놓은 채 그냥 나가 버리기도 한다. 주인은 아이가 아파 병원 때문에 돈이 많이 들어가서 걱정이 태산이다. 정작 병원비는 없지만, 병원까지 가는 데 드는 택시요금이며 그 밖의 비용이 많이 필요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부부의 주요 수입원은 나 같은 여행객에게 받는 숙박료와 저녁식사 값이 전부였다. 이런 말에 약해져 또 저녁을 먹기도 했다.

부지런한 쿠바인들은 아침 일찍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트리니다드에서 유명한 것 중 하나가 ‘칸찬차라(Canchanchara)’다. 칸찬차라는 이곳에서 흔히 먹는 술로 꿀과 사탕수수 즙, 레몬 탄산수를 넣은 칵테일이다. 물론 기본은 론(럼)이다. 작은 항아리로 만든 잔에 나오는데, 무척이나 단 칵테일이다. 사탕수수 즙을 넣어 시원한 청량감이 있다. 칸찬차라는 예전에 사탕수수와 꿀, 럼을 넣어서 먹은 것에서 유래해 만들어진 칵테일로 이곳에만 있는 술이다. 사탕수수 농장이 활발하던 시대에 만들었던 술이다. ‘칸찬차라’라는 이름으로 된 술집에 가면 명칭의 유래 등을 전시해놓아 누구나 칸찬차라에 대해 알고서 마실 수 있다. 이곳에서 칸찬차라를 마시면 계속 리필을 해줘 많이 마실 수 있다. 항상 그런 건 아니고 가게 주인 기분에 따라 “더 줄까?”라고 먼저 물어오기도 한다. 이곳에서는 공연도 같이 볼 수 있다. 공연은 9시부터 한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는데 시작을 하지 않는다. 연주하는 친구가 아직 안 왔단다. 그래서 그는 테이블에 앉아 혼자 노래를 시작했다. “콘미고 돈데 바스”(conmigo donde vas: 나와 함께 그곳으로 가요)라는 가사가 지금 상황과 잘 어울렸다.

쿠바인들이 좋아하는 칵테일 ‘칸찬차라’를 파는 술집. 전시된 물건들을 통해 깐찬차라의 유래를 확인할 수 있다.
돌아오는 길, 마요르 광장에 있는 ‘카사 데 뮤지카’에서는 아프리카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흑인 노예의 춤과 노래가 서럽게 들려왔다. 노동요와 사랑에 관한 이야기들이 그 시절의 아픔을 말해준다. 저 머나먼 땅에서 처음 내디딘 이 땅에서 노동만이 그들에게 주어진 운명이었다. 쿠바의 처음 독립운동은 이들 노동자들이 주도했다. 그때 중국인들이 많이 도와줘 지금도 중국인에 대한 인식이 좋다. 그래서 그런지 아시아인에 대해 무척이나 호의적이다. 노동요에는 서러움도 있지만 해학적인 부분이 많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 이야기도 함께해 그 당시 그들의 삶을 보여준다.

한 흑인 여자가 선창으로 시작하면 남자들의 코러스가 이어지고 타악기들이 두들겨진다. 우리나라 마당놀이처럼 연희 비슷하게 이뤄진 공연은 훌륭했다. 이들의 공연을 지금은 유럽인의 후손들이 와서 돈을 내고 보고 있다. 아이로니컬한 장면이면서도 이들의 역사가 슬프다. 이 음악에서 나만 한(恨)을 느끼는지 모르겠다. 아직도 모두 동등한 입장은 아닐 것이다. 모두 함께하는 이 공간만큼은 모두 동등한 입장이길 바란다.

강주미 여행작가 grimi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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