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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홀로 외딴섬… 일어나 손 내밀라

입력 : 2014-04-17 21:55:30 수정 : 2014-04-17 21:5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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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선의 한 주의 시] 섬

문 덕 수

만나면 문득 빛나는 그대 이마
물속에서 잠시 솟은 새벽 섬이다.
버스 안에서 흔들리고 있는 꽃봉오리들도
구두를 닦고 있는 별들의 땀방울도
저마다 외딴 섬이다.
한둘이나 두셋씩 반짝이다 사라지는
그 뒤에는 무덤 같은 빈 거리만 남고
늘어선 겨울 가로수만 유령처럼 남는다.
눈과 눈이 반짝하고 마주칠 때
입김과 입김이 엇갈려 아지랑이처럼 피고
잔잔한 마음의 물살이 퍼져나가나
물속에서 잠시 솟았다 잠기는 바위 끝.


장 그르니에의 ‘섬’을 비롯해서 섬을 노래한 시인들이 많다. 그중에서 문덕수 시인은 ‘잠시 솟았다 잠기는 바위 끝’으로, 결코 다가갈 수도, 몸 포개어 하나가 될 수도 없는 섬을 노래한다.

‘그대 이마’는 만나면 문득 빛나기는 하지만, 해뜰 무렵 눈부신 햇살 속에 희여스름 솟아나는 희망 같은 ‘새벽 섬’이기는 하지만 돌아서면 ‘무덤 같은 빈 거리만 남’는 공허이며 절망이다. ‘버스 안에서 흔들리고 있는’ 사람은 모두 저마다 꽃송이를 안고 있는 꽃봉오리이고, 거리에서 저마다 생업에 종사하느라 땀 흘리고 있는 사람들도 모두 별처럼 빛나는 자아(自我)의 개체성을 지니고 있지만 그들이 반짝이다 사라진 뒤에는 ‘늘어선 겨울 가로수만 유령처럼 남는다.’

그림=화가 박종성
현대인들은 모두 저마다 자존(自尊)을 자기 안에 간직한 채 망망한 바다의 섬처럼 각기 외따로이 떨어져서 흔들리며 걸어가는 고독한 존재이다. 때로 누군가를 만나서 ‘눈과 눈이 반짝하고 마주칠 때’도 있지만, 순간의 위로나 쾌락을 위해 손 마주 잡을 때도 있지만 자기 안의 성으로 돌아가면 문을 걸어 잠그고 동굴의 자유를 즐기는 존재이다. 그것이 지나쳐서 요즘은 자폐증과 우울증에 시달리다 심하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슬픈 현상이 나타난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2004년 이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지키고 있다.)

우리 모두 벌레집 같은 아파트의 문을 열고 저마다 골방에서 나와 밝은 햇살 아래서 손을 내밀어 보자. 작은 꽃 이백 개가 모여 큰 꽃 한 송이를 피우는 민들레처럼, 꽃이 진 자리에 이어서 쉬지 않고 꽃을 피우는 무궁화처럼, 손에 손을 잡으면 서로의 따스한 체온이 얼어붙은 섬들의 핏줄기를 녹이리라. 그러면 ‘입김과 입김이’ 아지랑이처럼 피어나고 ‘잔잔한 마음의 물살이 퍼져나가’ 온 세상 사람이 서로 손잡는 큰 꽃을 피우고, 그 꽃향기 바다를 건너 하늘까지 닿아 제각기 홀로인 섬들도 모두 일어나 손을 내밀리라.

이혜선 시인·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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