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탐욕의 광기에 빠진 사회, 성찰을 끌어내다

입력 : 2014-04-17 20:23:20 수정 : 2014-04-17 20:23:20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7년 만에 장편소설 ‘누가 개를 쏘았나’ 펴낸 김영현씨 참담하다. 참담하다는 말조차 참담하다. 차가운 바닷속 ‘세월호’에 아들 딸을 남겨둔 부모의 심정을 어떤 언어로 형용할까. 소설가 김영현은 ‘누가 개를 쏘았나’의 ‘작가의 말’에서 “분노는 불의한 세상에 맞서 싸워나가는 힘이며 인간다움을 지켜주는 힘”이고 “슬픔은 그런 분노를 넘어서 남과 자신을 용서하고 안아주는 힘”이라고 썼다. 슬퍼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분노가 앞설 따름이다.

‘누가 개를 쏘았나’(시간여행)는 실천문학사 대표로 일하다 경기 양평으로 들어가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는 김영현(59)이 7년만에 펴낸 장편소설이다. 탐욕과 광기에 사로잡힌 작금 우리 사회에 대한 사색을 녹여낸 작품이다. 논술학원 강사를 하던 시인 장하림은 백수가 된 상황에서 한 여인으로부터 제안을 받는다. ‘바람골’이라는 시골에 내려가 자신의 화실에 거주하면서 글을 쓰되 동네 동태를 전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바람골에서는 개들이 총에 맞아 죽어나갔다. 그곳에 가서 범인을 찾아내는 한편 동네 돌아가는 분위기를 전해 달라는 게 그 여인의 청탁이었다. 하림은 그곳에서 만화 대본 ‘전쟁이 종(種)의 진화에 미치는 영향’을 집필한다. 청동기시대 평화를 구현했던 ‘모헨조다로’ 문명을 거론하며 이후 철기시대로 넘어간 이래 인류가 전쟁으로 얼마나 야만의 행진을 거듭해왔는지 말한다. 김영현은 소설에서 1980년대 초반 학번인 대학 선배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피력한다.

“역사는 발전하는 것이며, 끊임없이 진화한다는 그들의, 아니 우리의 믿음은, 그러나 불행히도 인간의 내부 깊숙이 잠들어 있던 어둠의 힘, 사악한 짐승의 힘을 과소평가하고 있었어. 자연진화론으로 볼 때도 아직 채 진화되지 않은 탐욕스러운, 검은원숭이가 각자의 내부에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거야.”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심각한 내상을 입은 노인네가 개를 쏘아죽인 범인이라고 마을 사람들은 몰고 간다. 이는 노인을 마을에서 추방하려는 여러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빚어낸 광기였다. 노인의 딸이 계곡에 사둔 땅에 기도원을 지으려는 것을 막기 위해 위락단지 개발업자가 마을 사람들을 끼고 벌인 음모였다. 지극히 비세속적인 기도원과 지극히 세속적인 위락단지의 대결이 상징적이다. 김영현은 이 과정에 자신이 바라보는 이 즈음 사회의 암울한 현실에 대한 감상을 곳곳에 에세이처럼 드러낸다.

경기 양평에 칩거하며 장편소설을 집필한 김영현. 그는 “세상은 만화와 똑같다, 아니 어떤 때는 만화보다 더 만화스럽다”고 ‘누가 개를 쏘았나’에 썼다.
사진 ‘시간여행’ 제공
마을 이장인 ‘운학’은 “아닌 말로 썩고 미친 짐승들의 세상”이라고 분노하거니와 그리 과장된 언설처럼 들리지 않는 게 문제다. 개발업자 편에 서서 태연하게 생명을 죽이고 땅값이 올라 누리게 될 돈에 대한 탐욕으로 마을 사람들까지 합세하는 이 소설의 서사는 특정 공간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거나 무시할 따름이지, 기실 우리는 알면서도 탐욕에 편승해 묵살하고 넘어가는 게 많다. 지난 시절 학생운동의 전선에서 끌려가 고문까지 받았던 작가이기에 작중인물의 이런 대사는 더 쓸쓸하다.

“별은 사라졌어. 누구나 꿈꾸었던 그런 별은 처음부터 없었는지 몰라. ‘혁명’이나 ‘해방’ 이라는 말에 가슴 뛰던 시대는 갔지. 대신, 이제 펩시나 코카콜라를 빨며,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는 월드컵 경기를 보며, 작은 축구공 하나에 열광을 하지. 지구가 들썩거릴 정도로 말이야. 붉은 악마……? 흐흐, 그게 어쨌다는 거야? 굶주린 가난뱅이들이 넘치는 지구에서 벌어지는 이 광란의 정체는 도대체 뭘까? 잔디에서 뛰는 수억달러짜리 몸값의 선수에게 환호하는 우리와 황제가 베풀어놓은 글래디에이터의 피의 제전을 보며 소리를 지르는 로마인이 다른 점이 뭐지?”

김영현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순하다고 했는데 어느 순간 그런 기운이 사라지고 요즘 너무 많은 문제들이 돌출되는 것 같다”면서 “사람들이 어딘지 모르게 피폐하고 광기에 젖은 모습까지 보인다”고 했다. 새로운 세상으로 망명하고 싶어도 아직 누구도 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소설 속 여인의 말을 빌려 “이 세상에 탐욕을 이길 힘은 없다”고 고백한다. 희망은 어디로 갔을까. 희미하지만 역시 사랑에 방점을 찍어놓기는 했다. 볼품없고 소박한 ‘작은 사랑’이라도 그나마 그 사랑만이 이 세상을 조금씩 변화시킬 유일한 희망이라고.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