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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홍칼럼] 괴물이 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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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4-14 21:40:59 수정 : 2014-04-14 21:5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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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과 속이 다른 벼락부자의 몰골
따뜻한 세상 만들려는 각성과 성찰 있어야
얼굴을 들 수가 없다. 어린아이들을 고통 속에서 저세상으로 먼저 떠나보내게 하고도 그 죄를 다 묻지 못한다. 제정신이라면 차마 할 수 없는 짓으로 자식의 목숨을 앗아간 비정한 부모는 마땅히 죗값을 치르겠지만, 잠깐 고개만 돌렸어도 막을 수 있었는데도 눈과 귀를 닫은 채 비극을 방조하고 묵인한 다른 어른들의 죄는 어떻게 물을 것인가.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했는데 어른들이 휘두른 폭력에 목숨을 잃고 몸과 정신을 상한 아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제야 끔찍한 일을 처음 겪은 것인 양 호들갑을 떤다. 일말의 죄책감이라도 덜어보려는 이기심일 것이다. 아이들이 비빌 언덕이 되어주고 아이들을 지켜주는 울타리가 되어야 할 가족이 흉기로 돌변하고, 그 지경을 뒷짐지고 지켜보는 우리가 사는 세상. 동물의 세계만도 못하다.

아이들뿐인가. 곳곳에서 목불인견의 참상이 벌어지고 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유서를 남겨놓고 반지하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서울 송파구 세 모녀. 장애인 딸과 함께 세상을 등진 아버지. 네 살배기 아들을 끌어안고 몸을 던진 주부. 장애인 학대를 일삼는 ‘도가니’ 사건들, 염전 노예…. 무관심 속에 버려지고, 발길에 치여 스러지고, 불의와 횡포에 저항하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힘없는 약자들이다. 궁지에 몰려 한 가닥 희망의 끈마저 놓아버린 채 극단적인 선택도 마다하지 않는 처참한 현실이 지독한 가난 때문인가, 고장난 복지 때문인가.

김기홍 수석논설위원
가난 탈출에 매달린 지 50년이 넘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먹고살 정도가 됐다. 60여년 전 민주주의를 들여와 우리 것으로 만드는 데도 그럭저럭 성공한 ‘민주공화국’이다. 전쟁 참화를 반세기 만에 딛고 일어서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나라, 피나는 민주화 투쟁으로 민주주의를 쟁취한 나라, ‘한류’라는 문화적 꽃을 피우며 세계인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 나라. 긴 세월 앞만 보고 내달리느라 미처 챙기지 못해 뒤처진 구석이 많다. 9년 연속 자살률 1위, 이혼율 1위, 저출산율 1위, 노인 빈곤율 1위, 사교육비 1위…. 1인당 국민총소득 2만6000달러·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으나 압축·고속 성장의 뒤안길에 드리워진 그늘이 걷히기는커녕 점점 더 짙어지고 있다. 겉은 화려한 명품으로 치장했으나 속살은 50년쯤 목욕을 안 한 천박한 벼락부자 같다. 정상이 아니다. 괴물의 형상이다.

지난 대선 이후 경제민주화와 복지가 화두가 됐다. 선거가 끝나고 후퇴했을지언정 ‘삶의 양’이 아닌 ‘삶의 질’을 따져보는 공론화의 물꼬를 텄다. 곪은 상처가 터져 냄새가 코를 찌르고서야 화들짝 정신을 차린 것이겠으나 아직은 행동보다 말이 앞선다. 허겁지겁 대책이라고 내놓고 있으나 쏟아진 물이나 주워 담으려는 뒷북이고 미봉이다. 의붓딸을 때려 숨지게 한 울산과 칠곡의 나쁜 엄마들에게 각각 15년, 10년을 선고한 것을 놓고 ‘솜방망이 판결’이라는 비난이 빗발치고 있으나 그게 지금의 현실이다. 법원 판결이 국민의 법 감정과 상식을 따라가지 못하듯이 법과 제도, 사고, 관습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총과 칼로 땅과 바다, 하늘을 지키는 것만이 국가 안보가 아니다. 이웃이 소외된 채 어깨를 두드려주는 따뜻한 손길 한 번 잡아보지도 못한 채 막다른 골목에 이르지 않도록 보살피고 잡아주어 사람을 살리고 생명을 지키는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국가 안보다. 법과 제도만으로 촘촘한 사회안전망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배려를 나누기 위한 사회 구성원의 각성과 성찰이 있어야 한다. 관심과 배려는 강가에서 물수제비나 뜨는 돌팔매질이 아니다. 눈은 현실을 외면하지 말고 똑바로 보고 있어야 한다. 귀는 활짝 열어 들어야 한다. 코는 고약한 냄새를 피하지 말아야 한다. 입 또한 주저 없이 열어 할 말을 해야 한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힘없는 그들에게 양분이 되고 온기를 함께 나누는 따뜻한 양지가 되어야 한다. 그때야 비로소 이 사회는 그들에게도 충분히 살 만한 세상이 된다.

김기홍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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