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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준모의세계시선] 대학살, 카틴과 난징의 상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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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4-07 20:53:22 수정 : 2014-04-07 21:4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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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10일 폴란드 대통령 전용기가 러시아 서부도시 스몰렌스크 공항 인근에서 추락했다. 레흐 카친스키 대통령 부부를 비롯한 탑승자 96명 전원이 사망한 충격적인 비보였다. 카친스키 대통령 일행은 카틴 숲 대학살 70주기 추모행사를 위해 러시아를 방문하려다 사고를 당한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9년 8월 소련의 스탈린은 나치 독일의 히틀러와 상호 불가침 조약을 체결하고 폴란드를 분할했다. 스탈린은 의심이 많은 인물이었다. 그는 히틀러가 서유럽 침략을 끝내면 소련을 향해 진격해 올 것을 예견했다. 스탈린은 점령 중이던 동부 폴란드 지역에서 군 장교, 경찰관, 공무원, 지식인, 의사, 예술가, 성직자, 지역유지 등 2만2000명 이상의 폴란드인을 카틴 숲으로 끌고 와 학살했다. 희생자들은 소련 당국에 의해 사회 지도층 인사로 분류된 사람들로 훗날 소련에 대적할 세력을 규합할 수 있다는 이유로 처형된 것이다.

필자는 카친스키 대통령 전용기 추락사고가 나기 불과 두 달 전 카틴 숲 대학살 현장을 답사했다. 한겨울의 카틴 숲은 살을 에는 추위와 많은 눈에 갇혀 적막했다. 수십 미터 키의 침엽수로 빼곡한 숲은 원혼의 비통함과 절규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나는 숲 깊숙한 곳에 설치된 희생자 위령제단과 위패가 아로새겨진 벽 앞에서 고인들을 위로했다. 참혹한 역사의 현장에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역설한 이유를 새삼 절감했다. 

우준모 선문대 교수·국제 정치학
최근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한 것에 대해 필자는 몇몇 러시아 학자에게 견해를 물어봤다. 예상했던 대로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심지어 법적으로까지 정당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런데 일부 학자들은 크림합병은 이해할 수 있으나 푸틴의 러시아가 제국의 길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지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나는 ‘제국화’라는 말에 카틴 대학살의 희생자들을 떠올렸다. 러시아의 제국화는 있을 수 없는 역사의 퇴행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1937년 겨울 일본이 자행한 난징(南京) 대학살은 카틴 숲 대학살보다 더 잔혹하고 끔찍한 경우이다. 중일전쟁 당시 일본제국은 중화민국의 수도 난징을 침탈하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자비한 방식으로 무고한 시민을 30만명 이상 도륙했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과장된 것이라며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급기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30일 독일 방문 중 난징 대학살에 대해 직접 거론하며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을 비난했다.

소연방 말기부터 러시아는 카틴 대학살의 실체 규명과 사과를 분명히 해왔다. 카친스키 대통령 전용기가 추락했을 때 러시아는 국가 애도의 날을 선포하고 폴란드인들을 위로했다. 카틴 대학살의 깊은 상흔에 현직 대통령까지 잃었던 폴란드가 적어도 이 문제를 가지고는 러시아와 더 이상 갈등하지 않는다.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은 아베정부의 퇴행적인 역사행보가 빚어내는 어처구니없는 갈등의 골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우준모 선문대 교수·국제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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