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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철의나명들명] 생활의 발견, 교육의 출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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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4-04 20:53:07 수정 : 2014-04-04 21:4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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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강기 문이 닫히려는 순간. ‘잠깐만요’ 하고 승강기를 멈춰 세우곤 뒤의 일행에게 ‘어서 와요’ 하고 고함까지 지르며 승강기의 움직임을 저지한다. 아파트에서 다른 층의 기다리는 이는 생각지 않고 온 식구가 다 탈 때까지 엘리베이터를 붙들어 두는 후안무치.

자동차 접촉 사고 현장에서 자주 들리는 ‘양보 좀 하시죠’ 라는 어이없는 악다구니. 양보는 내가 타인에게 요구하는 권유나 명령이 아니다. 그렇건만 나는 양보할 수 없으니 당신이 양보하라는 일방통행 식 사고가 횡행한다.

배려의 미덕을 상찬하는 서적. 배려는 성공의 지름길이요, 행운의 반전을 불러오는 요술 램프라고 거품을 문다. 배려했는데 성공 못했다가는 자동차로 들이받을 기세다. 이건 약과다. 지성을 자처하는 명문대학 교수들이 유명세를 빌려 돈벌이에 눈이 벌겋다. 인생의 출발선상에 선 젊은이들의 불안과 공포, 긴장과 초조를 등쳐먹고 있는 것이다. 인생의 진실을 알리는 채찍질보다는 당의정으로 대신하는 거짓 멘토들의 콘서트. 건전한 영혼을 갉아먹는 궤변가들의 싸구려 인생훈이 넘쳐난다.

저들이 진정 인간일까. 인간의 탈을 쓴 사이비 인간. 심하게 말해서 인간 아닌 인간―비인(非人)―군상의 작태다. 우리 사회에서 왜 이런 비인들이 양산케 됐는가. 나는 교육 부재―배우지 못한 것이 제1원인이라고 본다.

본능으로 알고 있는, 갓 태어난 아기의 젖 빠는 행위조차 교육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사회학, 교육학의 기초이론이 된 지 오래다. 엘리베이터의 예절, 교통질서 교육, 서푼어치의 싸구려 상식으로 양심의 덕목을 궤변으로 탈바꿈시키는 지적 아부군, 지식인의 비양심과 부도덕. 이 모든 것은 수원지는 교육 부재였다. 

조병철 객원논설위원
과거 시간이 많았던 시절, 경쟁이 좀 덜 치열했던 시절 이 모든 것은 교육의 중요한 주제요 소재가 되었다. 밥상머리 교육 또는 가정교육이라고 일컬어진 것이다.

작금의 경쟁사회에서 ‘먹고살기 위해서’라며 밥상머리 교육을 포기했다. 맞벌이가 자연적 풍경인 오늘날 일상에 지친 아버지, 어머니에게 집은 잠자는 공간에 불과하다. 부모는 자녀의 인성, 예절 교육에 신경 쓸 여지와 능력이 없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교육은 학교에 일임됐다. 입시 교육에만도 힘이 부치는 학교로서는 밥상머리 교육은 꿈조차 꿀 수 없는 것이 교육의 현주소다. 이제라도 영어, 수학, 국어, 사회, 과학의 입시 교과목 위주의 학교 교육 과정에 대수술을 단행해야 할 때다. 미술, 체육 교과목 강화로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 또한 입시 교과목으로 편입되면 소묘, 달리기 학원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학교가 엘리베이터 타는 법, 교통법규 준수를 교과과정으로 편성해야 한다. 강을 건너면 산이 나오고, 산을 넘으면 사막이 고개를 내밀고, 사막을 지나면 호수가 앞을 가로막는다는 차갑고 엄혹한 인생의 참모습에 눈뜨게 해야 한다. 인생 도처가 가시밭길이요, 지뢰밭이라는 정공법을 가르쳐야 한다.

우리 사회가 비인이 양산되는 괴물공화국이 되지 않으려면 가정교육, 생활교육이 공교육으로 자리 잡는 방향 전환이 절박하다.

조병철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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