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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환 성남FC 감독 "화끈한 공격축구로 명가 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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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4-01 21:51:30 수정 : 2014-04-01 23: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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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초대석] K리그 최고령 박종환 성남FC 감독
“화끈한 공격축구로 명가 재건, 팬들 다시 찾아오도록 만들 것”
올해 국내 프로축구의 최대 화두는 ‘올드보이’의 귀환이다. 40대 감독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프로축구 K리그 클래식(1부 리그)에 60대 감독뿐 아니라 심지어 70대 사령탑이 탄생했다. 예전 같았으면 깜짝 놀랄 일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노병’의 관록과 경험을 높이 평가한 때문이다. 올드보이들이 녹색 그라운드에 돌아오면서 관중도 늘어나고 있다.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1980∼9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승부사’ 박종환(76) 감독이 시민구단으로 새로 출범한 성남 FC의 지휘봉을 잡고 나서 그라운드에 볼거리와 함께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변함없이 공격 축구를 구사하기 때문이다. 그라운드를 잠시 벗어나 있는 동안 아쉬움과 느낀 점이 많아서 일 게다. 기업구단이던 성남 일화 창단 감독을 맡으며 프로축구 최초로 3연패(1993∼95년)의 금자탑을 쌓은 박 감독을 최근 경기 성남 탄천종합운동장에서 만났다. 세월에는 장사 없다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쩌렁쩌렁했다.

ㅡ오랜만에 그라운드에 돌아왔다. 감회가 어떠신지.


“7년간 그라운드를 떠나 있었다. 비록 현장에는 없었지만 늘 축구를 옆에 두고 살았다. 60년 넘게 축구를 해온 사람이 축구를 떠난 삶은 있을 수 없지 않은가. 다시 K리그로 돌아온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나이가 있어 엄두를 내지 않았다. 지도자를 하겠다는 생각을 안 했다. 몇 곳에서 팀을 새로 만들면서 요청이 있었지만 아마추어 팀이라 고사했다. 과거 성남 일화에서 업적을 쌓은 공로 때문에 이재명 성남시장이 수차례 찾아와 간곡히 부탁하길래 받아들였다. 평생에 마지막 사령탑으로 여기고 견마지로를 다하겠다.”

ㅡ고령이라 주위에서 걱정도 없지 않다.

“아직까지 20대 선수들과 대등하게 1시간 정도는 풀로 뛸 자신이 있다. 그래야만 선수들에게 전술적인 부분을 가르칠 것 아닌가. 지병도 없고 신체 모든 게 정상이다. 복을 받았다고나 할까. 성남 개막전 때에는 지난해 평균 관중의 5배가 넘는 1만2000여명이 찾는 등 관중이 많이 늘어 고무적이라 생각한다. 팬클럽이 다시 구성됐다고 들었다.”

ㅡ프로축구 최고령 감독으로서 모범적으로 잘해야 된다는 책임감이 작지 않을 텐데.

“프로 감독 및 코칭스태프 대부분이 제자들이다. 나잇값을 제대로 해야 하는데 걱정이 앞선다. 제자들이 경기 전에 찾아와 인사할 때 어깨를 두드리며 열심히 잘하라는 격려의 말을 빼놓지 않는다. 그라운드 밖에서는 사제지간일지라도 경기는 경기이고, 팀은 팀이다. 지든 이기든 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하고 있다. 좋은 경기, 깨끗한 모습을 보여주면 다른 팀 감독인 제자들도 나중에 그걸 전수해 줄 것으로 믿는다.”

ㅡK리그에 대해 객관적인 평가를 한다면.

“작년에 프로축구가 출범 30년을 맞았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어 안타깝다. 매끄러운 축구가 없고 내용이 시시해서 아쉬웠다. 감독생활을 오래 한 만큼 나 또한 책임이 적지 않다. 관중이 경기장을 찾을 수 있도록 지도자들과 선수들이 보다 흥미있는 축구를 구사하도록 머리를 맞대고 노력해야 한다. 나부터가 바꿀 것임을 약속한다. 프로축구 감독의 연령대가 갑작스럽게 낮아져서 젊은 감독이 팀 운영에 적지 않은 부담을 느꼈을 것이다. 지지 않으려는 축구를 추구한 결과 관중은 그라운드를 외면할 수밖에 없다. 소신 있는 축구가 아쉽다.”

ㅡ성남 FC의 지휘봉을 잡고 난 뒤 어떤 목표를 잡았는가.

“선수들을 보지 않았을 때 기대를 크게 가졌던게 사실이다. 실제로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고 보니깐 답이 보이지 않고 앞이 깜깜하더라. 선수들의 기량이 생각과 크게 달랐다. 싫은 소리하면 선수들의 사기가 떨어지는 걸 알기에 칭찬으로 기를 살려주려 하고 있다. 과거와 달리 싫은 소리는 안 한다. 성남에는 따로 주전이 없다. 경쟁해서 이기면 베스트다. 남들은 우리를 보고 강등권이라 평가하지만 얼마든지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 중위권까지 오를 자신 있다. 선수들에게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지도 말고, 내 명예에 먹칠도 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더 나이 먹기 전에 여기서 우승을 이루겠다. 얼마든지 할 수 있다.”

ㅡ현재 성남의 성적은 하위권이다. 언제쯤에나 본궤도에 오를 것으로 보는가.

“선수 파악도 못한 채 팀을 맡았다. 핑계거리 같지만 훈련 기간이 짧았다. 두 달 가량 지나면 박종환식 축구를 낼 것으로 본다. 선수들의 기량이 아직 부족하다. 과거처럼 스파르타식으로 호되게 몰아치지는 않는다. 욕심을 부리지 않고 차근차근 색깔을 입혀가는 중이다. 6월 브라질 월드컵 기간을 전후로 있을 7주간의 휴식기에 특별훈련을 통해 팀을 달라지게 만들겠다.”

ㅡ추구하는 파도축구는 무엇인가.

“파도가 아름다운 것은 갈 수록 파문과 위력이 커진다는 것이다. 파도는 1차 파도에 이어 2, 3차 파도가 밀어닥친다. 늘 흐름이 있기 마련이다. 흐름 있는 공격축구를 하겠다는 뜻이다. 내 사전에 잠그기 또는 수비축구는 단연코 없다. 이렇게 해야만 경기장에 관중이 몰려든다. 어려운 시간을 내 경기장을 찾은 팬들에게 최소 본전을 돌려줘야 할 것 아닌가.”

ㅡ구단의 지원은 어떤가.


“작년에 성남 일화 구단은 200억원가량 쓴 걸로 알고 있다. 그중에는 100만달러짜리 선수도 있다. 구단 재정이 성남 일화 시절과 같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시민구단이 어렵긴 다 마찬가지다. 함께 고생하며 성남의 3연패를 이룬 주역인 이상윤, 이영진 등 옛날 제자들이 다시 뭉친 게 그나마 다행이다. 일단 좋은 성적을 내면 구단에서도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주리라 생각한다. 창단 감독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앞만 보고 달릴 뿐이다.”

ㅡ걸어온 축구 인생을 설명해달라.

“이북 출신으로 춘천에 내려와 살았다. 춘천중학 2학년 때 축구를 시작했으니까 쉰 기간을 빼더라도 60년 가까이 축구공과 함께 한 셈이다. 석탄공사 축구팀 선수(센터포드)로 활약했고, 국제심판으로도 휘슬을 불었다. 수원 유신고 체육교사로 창단 감독을 맡았고, 전남기계공고와 서울시청 감독을 지냈다. 프로에 와서도 성남 일화, 대구 FC 감독을 맡았다. 내가 맡은 팀은 모두 다 창단 감독이다. ‘창단 전문’이다. 그냥 내 팔자려니 하고 여긴다. 창단 팀을 이끌다보면 힘이 많이 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백지상태의 팀을 맡아서 성적를 내니까 ‘무에서 유의 창조’라고나 할까 큰 보람을 느낀다.1984년 LA올림픽 대표팀 감독과 96년엔 A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월드컵 대표팀 감독만 못해 봤다.”

ㅡ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는다면.

“박종환 하면 아무래도 1983년 멕시코 청소년 축구 4강이다. 공기가 희박한 해발 2000m가 넘는 멕시코에서의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방독면을 쓰고 훈련했다. 14만 관중이 몰리고 낮 기온이 37도나 되는 경기장에서 홈팀인 멕시코를 2-1로 꺾고 4강에 가리라고는 꿈에도 상상조차 못했다. 더구나 국제축구연맹(FIFA)도 경기장을 임의로 바꿔 우리에게 불리하도록 편법을 쓰기도 했다. 우리는 이에 굴하지 않고 선수와 코칭스태프가 혼연일체가 되어 정말 열심히 뛰었다. 얼마나 악바리같이 뛰어다녔으면 ‘붉은 악마’라는 별명이 붙었겠는가. 30년이 지난 당시의 감격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뛴다.”

ㅡ가족관계는.

“평생 축구공만 쫓아다니는 바람에 집사람이 애들(1남1녀)을 책임지고 키웠다. 자식농사는 잘 지었다고 자부한다. 몸이 아픈데도 불구하고 애들을 잘 키워줘 늘 고맙고 미안하게 여긴다. 딸은 평범한 주부로, 아들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신경외과 의사로 일하고 있다. 손녀가 벌써 시집갈 나이 25살이다.”

사진=이재문 기자

성남=박병헌 선임기자, 사진=이범준 기자

◆박종환 감독은…

▲1936년 2월 황해도 옹진 출생 ▲강원 춘천고-경희대 졸업▲대한석탄공사에서 선수 은퇴(1966년) ▲축구 국제심판 ▲수원 유신고·단국공고 감독 ▲서울시청 감독(1975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대표팀 감독(1983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 축구대표팀 감독(1984년) ▲프로축구 일화 천마축구단 감독(1989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대표팀 감독(1990년) ▲프로축구 최초 3년 연속 우승(1993∼95년) ▲아시안컵 축구 A대표팀 감독(1996년) ▲대구 FC 감독(2003년) ▲아시아축구연맹 공로상(2010년) ▲성남 FC 감독(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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