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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상봉 등 통일정책 전반에도 문화·관광 접목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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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3-25 19:56:08 수정 : 2014-03-25 20: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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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초대석] 박광무 한국문화관광연구원장
박광무(60·사진) 한국문화관광연구원장은 관가에서 ‘입지전적’ 인물로 꼽힌다. 9급 공무원으로 처음 공직에 발을 내디뎠다가 다시 7급 시험을 쳤고 이어 행정고시에도 도전, 합격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근무하는 동안 틈틈이 공부해 행정학 박사학위를 땄고, 2011년에는 한 문예지를 통해 정식 시인으로 등단했다. 새누리당 정책위원회 수석전문위원(1급 상당)을 끝으로 관가를 떠나 2012년 2월부터 문체부 산하 기관인 한국문화관광연구원(KCTI)을 책임지고 있다. 평소 “문화 융성 시대를 맞아 이제는 KDI(한국개발연구원)보다 KCTI의 비중이 더욱 커져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강조하는 박 원장과 25일 만나 문화 융성 방안 등을 주제로 얘기를 나눴다. 그의 직책을 감안해 일부러 우리나라 ‘문화’와 ‘관광’의 1번지라 할 광화문광장을 만남 장소로 택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달변가인 박 원장은 원래 예정한 시간을 훨씬 넘겨가며 2시간 가까이 문화와 관광정책에 대한 소신을 쏟아냈다. 오랜 공직생활에서 우러난 현실 감각과 시인 특유의 문화적 감수성이 느껴졌다.

―정부가 올해 들어 ‘통일 준비’란 화두를 꺼내들었다. 문화와 관광 분야도 통일에 앞서 준비할 게 많을 듯하다.

“그동안 문화·관광 분야에서 통일 하면 남북 예술단의 합동공연이나 금강산 관광 정도만 떠올렸다. 앞으론 통일정책 전반에 문화예술을 접목해야 한다. 이산가족 상봉을 보면 처음엔 반가워 울다가 나중엔 헤어지는 게 슬퍼 또 운다. 너무 만남 자체에만 초점을 맞춰 그렇다. 이젠 이산가족 상봉에도 문화적 접근이 필요하다. 울기만 하는 만남을 ‘문화로 승화된 만남’으로 바꿔야 한다. 이산가족의 아픔은 한국에만 있는 고통이다. 이것을 토대로 새로운 문화예술을 꽃피울 수 있다. 원통함을 푸는 ‘해원의 예술’이란 색다른 장르 탄생도 가능하다.”

―마침 박근혜 대통령이 독일 방문에 나섰는데, 독일 통일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있을까.

“통일 전 서독과 동독은 충분한 교류 과정을 거쳤다. 그래야만 자연스러운 통합이 가능하다. 정치적·군사적 교류에 앞서 문화 등 민간 차원의 교류가 선행돼야 나중에 통일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문화·관광·스포츠 분야의 교류가 특히 중요하다. 문화적 동질감을 회복하기도 전에 급박하게 통일이 이뤄지면 통일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치솟는다. 얼마 전 남북관계가 극도로 악화했지만, 개성공단만큼은 그대로 운영하기로 사실상 합의가 이뤄졌다. 문화 교류도 개성공단처럼 공고해져야 한다.”

―통일에 앞서 관광 분야는 뭘 준비해야 하나.

“먼저 북한의 모든 산과 강 등 자연환경을 새롭게 발견해야 한다. 그러려면 기회가 될 때 현장을 직접 방문해야 한다. 또 북한과 인접한 중국과 러시아 두 나라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최근 러시아와 비자 면제 협정을 체결한 것처럼 관광 분야에서 중·러 양국과의 교류를 더욱 활성화해야 한다. 둘은 북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나라다. 그들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우리도 북한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

마침 KCTI는 26일 문체부와 공동으로 ‘통일문화정책포럼’을 연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리는 이번 포럼 주제는 ‘유네스코 등재 세계유산을 통한 남북 문화교류 협력 방안’이다. 북한에 소재한 문화유산의 세계유산 등재 추진을 위한 남북 간 공조, 이미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고구려 고분군과 개성 역사유적지구의 보존·활용 대책 등을 논의한다. 박 원장은 “3월을 시작으로 연말까지 총 5차례의 포럼을 개최할 것”이라며 “통일에 앞서 남북 문화교류의 장을 여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문화 융성을 공언한 뒤 1년이 지났다. 문화 융성이란 무엇인가.

“일단 ‘문화대국’이란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그건 너무 정부 주도적이고 경쟁적인 개념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 융성’은 절묘한 선택이다. 국민 전체가 문화를 누리고 창조하는 주체가 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먼저, 지역 균형 발전 없이는 국가 발전이 없다고 생각한다. 독일을 예로 들면 대도시는 물론 평범한 농촌도 문화의 여유와 향기가 가득하다. 어디를 가도 ‘문화도시’의 품격이 넘쳐난다. 우리도 지역에 상관없이 문화적 인프라가 갖춰지고, 전국 어디에서나 문화적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정부가 올해부터 시행하는 ‘문화영향평가’는 어떤 제도인가.

“2013년 제정한 ‘문화기본법’에 따라 도입된 제도다. 환경영향평가처럼 ‘규제’가 목표인 게 아니고 문화의 ‘진흥’, ‘조장’, 그리고 ‘컨설팅’에 초점을 맞춘다. 주택단지 조성 같은 도시계획이나 국토개발계획을 짤 때 해당 분야 전문가와 문화 전문가가 나란히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하면 좀 더 문화적인 공간, 문화에 친숙한 환경으로 만들 수 있을까’ 연구하자는 것이다.”

―‘문화가 있는 날’의 운영 내실화를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가.

“국민들에게 ‘공짜’에 대한 기대감을 너무 주는 부분은 개선해야 한다. 할인 혜택은 가능해도 100% 무료는 안 된다. 우리 1인당 국민소득이 2만5000달러를 바라보고 있다. 언제까지 공짜를 바랄 수 없다. 문화가 발전하려면 ‘문화 향유’의 주체와 ‘비용 지불’의 주체가 같아져야 한다. 내가 좋아서 내 돈 들여가며 공연을 보는 게 진짜 문화의 향유다.”

KCTI가 올해 가장 역점을 두는 사업은 관광 분야의 ‘빅데이터’ 활용이다. 국내 명소를 찾는 관광객들의 국적·성별·연령 같은 기본적 정보와 옮겨다니는 동선이 어떻게 되는지, 돈은 얼마나 쓰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유의미한 통계자료로 만드는 것이다. 박 원장은 “통계를 잘만 활용하면 예를 들어 올여름 어느 해수욕장이 전국에서 가장 붐빌 것인지도 찾아낼 수 있다”며 “우리 관광산업에 예측 능력을 도입해 좀 더 과학화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국회에 계류된 ‘국민여가활성화기본법안’ 통과가 미뤄지고 있다.

“여가를 누리는 것은 문화와 관광을 함께 즐기는 행위다. 여가야말로 복지의 완성이다. 가끔은 머리를 쉬게 해줘야 창조적인 생각도 나온다. 잠시 머리를 식힐 때 떠오르는 기막힌 영감이나 통찰력을 바탕으로 그동안 끙끙 앓던 문제를 전혀 다른 각도에서 해결하기도 한다. 국회가 법안을 신속히 처리하길 희망한다.”

―1991년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의 비서를 지냈다. 기억나는 일화가 있으면 소개해 달라.

“장관님이 관용차에 타면 수행비서가 차문을 닫는다. 하루는 장관님이 차에 올라 앉긴 했는데 아직 한쪽 발이 채 들어가기 전에 그만 실수로 문을 닫아버렸다. 발이 낀 장관님이 ‘앗’ 하고 비명을 질렀다. ‘죄송하다’고 사과하자 ‘괜찮다’며 아무 말씀도 안 하셨다. 그 뒤 비서로서 차문 닫는 법부터 배우기로 결심했다. 반드시 장관님 발이 차에 다 들어가는 것까지 보고 나서 문을 살짝 닫았다.(웃음) 또 장관님은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기는 걸 좋아하신다. 당신의 활동 내역을 전부 캠코더로 찍으라고 해서 비서인 내가 그 업무를 담당했다. 큰형님이 시골에서 사진관을 운영해 카메라에 감이 있긴 하지만 ‘고시 합격자인 내가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즐거운 마음으로 하자고 마음 먹었다. 장관님과는 지금도 교류가 이어진다. 그분을 보면 ‘영원한 소년’이란 말이 떠오른다. 지적 탐구를 끊임없이 하시고, 뭔가 새로운 것을 흡수하는 능력도 참 대단하시다.”

박 원장은 올해 안에 첫 시집을 낼 작정이다. 시상이 떠오를 때마다 종이에 끄적인 짧은 글들이 모여 어느덧 책 한 권 분량이 됐다. 관료 출신이면서도 멋과 풍류를 아는 그가 우리나라 문화·관광 분야 정책연구 책임자 자리에 제법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담=박태해 문화부장, 정리=김태훈, 사진=이제원 기자 af103@segye.com

■박광무 한국문화관광연구원장은…

▲1954년 경북 울진 출생 ▲성균관대 행정학과·서울대 행정대학원·성대 국정관리대학원 졸업, 행정학 박사 ▲제30회 행정고시 합격(1986)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예술국장, 국립중앙도서관 기획연수부장, 새누리당 정책위원회 수석전문위원 등 역임 ▲저서 ‘한국문화정책론’(2013), ‘가출 아빠의 사랑 스케치’(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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