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송영애의 영화이야기] 영화에서 국적이 갖는 의미

관련이슈 송영애의 영화이야기

입력 : 2014-03-22 08:55:00 수정 : 2014-04-09 11:27:35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얼마 전 폐막한 소치동계올림픽 중계방송을 보면서 ‘국적(國籍, nationality)’이란 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대한민국이 아닌 러시아 국기를 달고 쇼트트랙 경기에 출전한 안현수 선수와 우리 국가대표 선수들 중 누구를 응원해야할지 고민이 됐다. 

‘한 나라의 구성원이 되는 기준’(국립국어원 참고)을 뜻하는 국적은 국가마다 정해진 기준이 다르다고 한다. 국적은 여러 개일 수도 있고, 바뀔 수도 있다. 

그렇다면 영화에 있어 국적은 어떻게 정해질까. 영화에도 국적이 있다. 개봉은 물론, 판권, 수출입, 영화제 출품 등을 위해 국적은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국가에 따라 자국영화에 혜택을 주거나, 외국영화에 규제를 가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제작사나 수입사 입장에서 영화의 국적은 수익 확보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관객의 입장에서 보면 국적은 영화 선택의 주요 기준은 아니다. 사실 일반 관객이 사전 정보 없이 특정 영화를 보면서 그 영화의 국적을 인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제작사나 수입사의 필요에 의해 특정 기준에 맞춰 선택됐을 서류상의 국적과 관객이 영화를 보면서 심리적으로 느끼는 국적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 홍보 마케팅 과정에서 특정 국적의 영화라는 점이 강조되지 않았다면 더더욱 그렇다.

필자는 영화 교양 과목을 수강하는 학생들에게 이따금씩 특정 영화의 국적을 학생들에게 맞춰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2006년 밸런타인데이 시즌에 맞춰 개봉된 ‘게이샤의 추억’(감독 롭 마샬)의 경우 대부분의 학생들이 ‘일본영화’라고 답했던 기억이 난다. 제목이나 내용 자체가 일본의 게이샤를 다루었기에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사실, 영화의 국적을 하나하나 따지고 들어가 보면 꽤나 복잡한 문제라는 걸 알게 된다. ‘게이샤의 추억’ 제작사는 콜롬비아와 드림웍스 등 미국 회사들이고, 제작자인 스티븐 스필버그, 원작자인 아서 골든, 감독인 롭 마샬 등은 모두 미국인이다. 하지만 출연진은 대부분 아시아인들이다. 주연인 장쯔이, 공리, 양자경 등은 중국인, 그 외 와타나베 켄, 야큐쇼 코지 등은 일본인이었다. 간혹 일본어가 사용되기도 했으나 주로 영어가 사용된 영화였다.

영화의 공식적 국적이 선택되는 과정에서 가장 일반적인 기준인 제작사와 투자사의 국적, 주요 참여 인력의 국적 등 제작과정의 기여도 따르자면 이 영화는 ‘미국영화’임이 분명하다. 실제로 국내 포털사이트나 KMDb, IMDB 등에서 검색해보면 이 영화의 국적은 미국으로 나와 있다. 하지만 대부분 일반 관객들이 느끼는 국적은 일본이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어느 나라 사람의 이야기인가’를 통해 국적을 인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설국열차’(감독 봉준호)로 옮겨가면 이야기는 더 복잡해진다. 작년에 개봉된 이 영화는 일반 관객이 느끼기에는 ‘미국영화’일 가능성이 많다. 미래를 배경으로 어느 나라 사람들의 이야기로 봐야하는지 불분명하기는 하지만, 이런 종류의 공상과학 영화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또 한편의 미국영화로 인지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원작 만화 작가는 프랑스인들이고, 주사용 언어는 대부분 영어였다. 크리스 에반스(미국)와 틸다 스윈튼(스코틀랜드) 등 다국적 배우들이 주연급으로 출연하고 있다. 대부분의 촬영은 체코의 프라하에서 진행됐다.

일반적 기준을 따르자면 ‘한국영화’라 해야 맞다. 제작사는 한국의 오퍼스픽처스와 모호필름이고, 제작자는 제작사 대표인 이태헌과 박찬욱이다. 감독은 봉준호이고 주연진 중에는 한국 배우 송강호와 고아성도 포함돼 있다.

‘설국열차’가 지난해 8월 국내 개봉 당시 영상물등급위원회에 제출한 서류와 국내 포털사이트, 그리고 KMDb에는 ‘한국영화’ 표기돼있다. 하지만 IMDB에는 한국, 미국, 프랑스, 체코 영화로 표기돼 있기도 하다.

영화에 있어 국적이란 최종적으로 관객이 느끼는 게 아닐까란 생각을 해봤다. 서류상으로는 한국영화이거나 한미 합작영화라고 구분돼 있을지 몰라도, 이게 맞는지 틀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라마다 기준이 일정치 않으니 일일이 확인하는 것도 쉽지 않고, 더욱이 요즘처럼 다국적 인력과 제작비가 투입되는 합작영화들이 많이 나오는 현실에서 영화의 국적을 따지는 일은 오히려 관객의 영화 관람 중 몰입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 

관객들의 영화 관람은 서류 심사가 아니다. 제작사, 감독, 배우 등에 대한 사전 정보를 반드시 조사할 필요도 없다. 영화 관람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정서적인 차원의 행위이다. 어떤 영화를 보면서 특정 국가의 정체성이 느껴진다면 그걸로 충분한 것이다. 

만약 영화를 보면서 어떤 사건, 캐릭터, 직업, 배우, 감독, 혹은 국가에 호기심이나 관심이 생긴다면 관객들은 그 영화를 계기로 세상에 대한 지식이나 교감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국가나 민족, 인종, 성적취향, 계층 등의 경계가 허물어질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천차만별 생각을 가진 다양한 관객들의 개인적 차원의 일들이다. 이는 한국 관객들이 외국영화들을 볼 때도 그렇고, 외국 관객들이 한국영화를 볼 때에도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필자는 ‘한국영화의 쾌거’, ‘한국영화의 미국 공략’, ‘한류 재점화’ 등의 헤드라인이 불편하다. 그보다는 우리나라 관객이 영화를 보면서 어떤 느낌을 받고, 생각을 했는지가 더 중요한 게 아닌가 싶다. 외국 관객들도 이 영화를 보고 그 내용을 이해하고, 감동을 느낄 수 있을지가 궁금하다. 

국가대항 운동경기마저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에 따라 특정 국가 혹은 개인 선수를 응원하는 세상인데, 최종적으로는 관객들의 개인적 경험이 될 영화에 ‘한국’, ‘한류’ 등의 단어들로 일반화시켜 마치 국가대표인 것처럼 표현할 필요가 있을까.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일부 장면이 3월말부터 국내에서 촬영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파급효과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감지되고 있다. 세계적인 대규모 개봉이 예상되지만, 대부분의 관객들은 영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공간에 일일이 집중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촬영된 장면인지도 모르고 지나갈 위험성도 없지 않다. 지나친 기대보다는 나중에 그 영화를 볼 때 한국 관객들에게 재미 요소가 하나쯤 더 추가됐다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마음 편할지도 모른다. 적어도 한국 관객 개인의 입장에서는 말이다.   

서일대 영화방송과 외래교수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