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때 되면 얼마나 극성일까 올해 또 한 차례 선거가 다가오는 모양이다. 집에서 신문을 볼 때도 느끼고 밖에 나가 이런저런 행사에 참석해서도 느낀다.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으레 선거와 관련한 사람이 이런저런 구실로 얼굴을 비추고 다닌다.
서울에 있다가 모처럼 고향에 갔을 때도 그렇다. 내가 태어난 고향은 강원도 대관령 아래 깊숙이 자리잡은 농촌마을이다. 우리나라에 아직도 옛날 풍습과 예법을 지키고 사는 마을이 있을까 싶게 조선시대부터 이어오고 있는 촌장제의 전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설날이면 자기 집 어른에게만 세배하는 것이 아니라 온 마을 사람들이 촌장을 찾아가 합동세배를 올린다. 조선시대 중기부터 내려온 마을 대동계가 430년의 역사 속에 이어져 오고 있다.
합동세배가 있는 날이면 마을의 성년 남자 모두 두루마기 차림에 갓을 쓰고 참여한다. 나도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마을 촌장에 대한 합동세배만은 옛날 선비처럼 제대로 의관을 갖추고 참석한다. 원래는 마을사람만 이 합동세배에 참석했는데 언제부턴가 마을 바깥 사람도 하나둘 모여들고 있다. 같은 면내의 면장과 조합장도 오고 또 이런 전통을 살려나가는 데 음으로 양으로 앞장서는 문화원장도 촌장 어른께 인사를 온다.
이순원 소설가 |
행사를 할 때 내외빈을 소개하는 모습도 그렇다. 어떤 문화행사든, 체육행사든 행사장 단상과 앞자리엔 실제 그 행사와는 크게 상관 없는 지역 정계 사람이 마치 그들 내부에 암암리 정해진 서열 순으로 앉아 있는 듯한 모습이다. 본행사에 앞서 그들을 소개하는 순서 역시 짐작과 다르지 않다. 스스로는 행사를 축하하러 왔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보는 사람의 눈엔 표를 찾아온 불청객들이다.
행사가 치러지는 동안 행사장 안에서도 행사장 바깥 로비에서도 선거판에 나올 사람의 명함 돌리기가 계속된다. 명함도 천편일률적이다. 앞면엔 자신의 사진과 이름을 새기고 뒷면엔 열 몇 줄씩 정당 내의 이력과 ‘무슨 연합회 회장과 고문’ ‘무슨 운영위원회 위원장과 특별위원’ ‘무슨 사회단체 상임대표와 이사장’ 같은, 실제 그런 단체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이력이 그야말로 잡다하고도 빼곡하게 적혀 있다.
그런저런 행사장에 나가지 않는다고 앞으로 있을 선거 명함 홍수를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집에서 일하다 보면 하루에도 몇 차례 선거 전화홍보가 걸려온다. 하나같이 여론조사를 가장한 후보 알리기 전화다. 전화를 받는 당신이 10대냐, 20대냐, 30대냐, 거기에 맞춰 번호를 누르게 하고, 지지 정당을 묻는 등 대략적인 질문 몇 가지를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 이번에 그 지역 선거에 나올 어느 당의 어떤 직책을 가진 누구를 아느냐 묻고, 다시 반복해 어느 당의 어떤 직책을 가진 누구가 입후보한다면 지지를 하겠느냐 안 하겠느냐를 묻는 식으로 예비후보의 이름을 주입시킨다.
6월4일 선거는 아직 멀었는데, 벌써부터 이런 식이면 막상 선거 때가 되면 또 얼마나 많은 선거 공해에 시달릴지 그것도 짜증스러운 일이다.
이순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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